딸기가 보는 세상/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인도 '카스트 조사' 논란

딸기21 2010. 9. 1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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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가 인구센서스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통상적인 다른 나라들의 인구조사와 달리 악명 높은 ‘카스트 제도’에 기반을 둔 센서스가 덧붙여질 예정이어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고 ‘더타임스오브인디아’ 등 현지 언론들이 9일 보도했다.


인도 정부는 전날 ‘카스트 조사’라 불리며 시행 여부가 정해지기도 전부터 국민들 사이에서 격론을 불러일으켰던 인구센서스를 당초 계획대로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인도에서 카스트 별 인구조사가 이뤄진 것은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던 1931년 단 한번 뿐이었다. 내년에 조사가 이뤄지면 80년 만에 처음이 되는 셈이다.


팔라니아판 치담바람 내무장관은 8일 델리에서 각료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전국 인구조사가 끝난 뒤 내년 6~9월 카스트별 가구 수를 조사할 방침”이라면서 “여러 정당들의 의견을 토대로 고려사항들을 반영해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카스트 조사에 대해서는, 조사를 받는 주민들이 답변을 할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PTI통신은 인구센서스와 별도로 카스트 조사에만 6억5000만~8억5000만 달러가 소요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인도는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에 공식적으로 카스트에 따른 차별을 전면 금지시켰다. 2005년 말 타계한 코체릴 라만 나라야난 전 대통령 등 최하위 카스트인 ‘달리트(불가촉 천민)’ 계급 대통령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카스트의 뿌리 깊은 영향력과 차별 구조는 여전히 건재하다.

카스트는 잘 알려진 대로 힌두교도들의 계급 제도다. 약 12만명에 이르는 인도 전체 인구 중 9억6000만명 가량이 힌두교도인데, 이들은 브라만(성직자)·크샤트리아(무사)·바이샤(농민과 상인)·수드라(노동자)의 네 카스트로 크게 나뉜다.
하지만 이들 네 카스트 안에도 수백~수천개의 하위카스트와 직업별, 부족별 카스트가 있다. 계급 간 혼인금지 같은 금기를 어겼거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천대받는 직업에 종사하는 달리트는 ‘카스트 이외의 계층’으로서 최하위에 위치하고 있다.


카스트별 인구조사를 해야 한다고 하는 쪽은 실질적인 이유를 든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의 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도 정부는 카스트에 따른 차별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차별을 인정해 하층 카스트에 사회보장의 혜택을 주는 이중적인 정책을 취하고 있다. 사회보장법에 따라 ‘지정카스트(SC)’나 ‘지정부족(ST)’, ‘기타 하층민(OBC)’ 등으로 분류되면 생활보조금을 받거나 대학 입시·공무원 채용 과정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SC·ST·OBC의 틀이 집힌 것은 1935년이었다. 당시 영국은 ‘인도 정부법’을 만들면서 이처럼 인구를 구분했다. 1943년 영국 식민정부는 SC·ST·OBC를 위한 고용할당 제도를 만들었다.
인도는 독립 3년 뒤인 1950년 헌법에서 공공부문에 하층 카스트를 일정 비율로 진입시키는 ‘강제할당’ 제도를 명문화했다. 당초엔 ‘향후 10년 동안’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으나 이것이 계속 연장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1980년에는 ‘만달 위원회’라는 것이 만들어져 OBC에 대한 혜택이 논의됐고, 1989년 OBC에 대해서도 강제할당 혜택이 제도화됐다.

이 제도에 따라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OBC는 최소한 공공부문 고용·교육의 27%를 차지할 수 있는 일종의 ‘어퍼머티브’ 혜택을 받는다. SC·ST·OBC 전체로 보면 전체 공공부문의 50%를 할당받는다.
2007년에는 서부 라자스탄 주의 자이푸르에서 지정카스트를 탈피, 더 높은 카스트로 분류된 ‘구자르(양치기)’들이 다시 지정카스트로 내려달라며 거세게 반발하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졌다. 이들은 한때 뉴델리 도심까지 점거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자료: 위클리경향


카스트별 인구조사를 해야한다는 쪽에선 사회보장 제도가 부패에 악용되거나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복지를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조사를 강행하기로 한 것도, 현실적으로 인도 사회의 기반이 되고 있는 카스트의 실태를 인정하고 파악하는 것이 정책방향을 정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회보장 대상인 지정카스트나 OBC 집단이 수를 부풀려 보조금을 더 받아가거나 강제할당 비율을 높이고 있기 때문에 전수조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OBC 조직들은 공공부문 쿼터를 늘리기 위해 정부를 상대로 로비를 벌여왔다.

인도는 자본주의 국가이지만 사실상 계획경제에 가까운 비대한 공공부문을 갖고 있다. 1990년대 만모한 싱 현 총리가 재무장관을 지내면서 민영화 개혁을 추진,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성과를 거뒀으나 여전히 공공부문이 고용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따라서 강제할당 비율은 OBC 등 혜택을 입는 대상에겐 엄청난 무기다.
반면 빌라스라오 데슈무크 산업장관은 더타임스오브인디아 인터뷰에서 “카스트별 인구가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OBC는 카스트 조사에 거세게 저항하고 있다. 좌파·인권단체들도 반대 입장이다. 이들은 “카스트에 기반을 둔 정당들이 자기네들 권익을 강화하는 데에 조사결과를 악용할 것”, “뿌리 뽑아야 할 카스트의 차별적인 제도를 고착화시키는 데에 정부가 일조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내각 안에서도 찬반이 엇갈렸다. 아자이 마켄 내무담당장관은 “카스트별 조사를 하면 계급 문제가 정치이슈가 될 것이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를 놓고 계급 간 갈등이 높아질 수 있다”며 반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층 카스트에 대한 강제할당 비율은 주마다 다르기 때문에 주별로 입장도 다 다르다. 데칸크로니클은 독자적으로라도 카스트별 인구조사를 추진하려 했던 타밀나두 주 정부가 이번 각료회의 결정으로 힘을 받게 됐다고 보도했다.
타밀나두 주 정부는 그동안 취약계층으로 분류된 집단에 공공부문의 69%를 할당해왔다. 주 정부는 쿼터를 조정하기 위해 조사를 추진했으나, 대법원에 소송이 제기되는 등 일각의 반발에 부딪쳤다.

인도 당국은 지난 4월 인구센서스를 시작했다. 인구 규모가 워낙 커서 조사요원으로만 250만 명이 투입됐다. 이들은 1년 동안 인도 인구를 성별, 종교별, 직업별, 교육수준별로 조사한다.
15세 이상 모든 주민들의 사진을 찍고 지문을 채취하는 작업까지 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다. 정부는 센서스 자료로 전국적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뒤 모든 국민들에게 신분증을 지급할 계획이다. 센서스 결과는 내년 중반에야 발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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