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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

딸기21 2007. 7. 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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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 그리고 숨겨진 치매. Brain Trust.
폴 켈러허. 김상윤·안성수 옮김. 고려원북스. 5/7




틈 날 때마다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한다. 책의 원제는 brain trust 인데 한국어판 책 표지에는 대문짝만하게 ‘광우병’이라고 쓰여 있는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부제까지 합치면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 그리고 숨겨진 치매’. 책 표지 왼쪽 윗부분엔 ‘광우병에 관한 최신 연구보고서! 켈러허 박사가 최근 8년간 추적, 새롭게 밝혀지는 광우병의 진실 그리고 또다른 의혹들!’ 느낌표를 두 개 씩이나 받아가며 ('브레인 트러스트'라는 애매모호한 제목으로는 도저히 안 팔릴 것임을 예감했는지) 설명을 붙여놨다.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한! 이라고 하면 상투적으로 들리겠지만, 웬만한 소설보다는 훨씬 재미있고 말 그대로 흥미진진하며 긴박감 넘치고 스릴과 미스터리까지 구색을 갖췄다. 거기에 저널리스틱한 포맷과 문체 하며 과학·의학 분야의 전문성까지 겸비했으니 이런 책은 좀 잘 팔려나가 주는 것이 좋은데 말이다.

책은 '광우병'으로 알려진 신종 질병이 어떻게 미국과 영국을 덮쳤는지를 추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책에 대해서는 줄거리 소개가 좀 필요할 것 같다.

반세기 전 뉴기니에서 일군의 학자들이 식인 풍습을 가진 원주민들 사이에 퍼져나가던 질병, 인간의 뇌에 스펀지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죽음으로 이르게 만드는 질병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얼굴 없는 공포’의 막이 올랐다. 용감하고 의로운 학자들의 잘못은, 연구 재료로 쓰기 위해 지구를 반바퀴 돌아 미국의 어느 실험실로 스펀지가 돼버린 인간 뇌조직들을 가져온 것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저자의 취재와 가설이 뒤섞여 있다. 연구자들은 오늘날 광우병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 이 병의 희한한 병원균, 박테리아도 아니고 바이러스도 아닌 변종 프리온 단백질에 오염된 물질을 미국의 어느 농촌마을에서 연구했다. 그러나 ‘보안’은 그리 철저하지 못했고, 따라서 이 못된 단백질 병균(병균이라 부를 수 있다면)이 주변 지역으로 새어나갔으리라는 것이 저자의 추측이다.

이런 단백질에 오염된 ‘뇌 구멍 병’은 소 양 사슴 사람 밍크 등의 포유류에서 널리 나타났다. 이 모든 질병들은 다 똑같은 양상으로 나타났지만 그 연관관계는 농업 이익단체들의 로비와 압력에 밀려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심지어 같은 증상의 질병 이름들조차 사람, 소, 양, 사슴 등 종류에 따라 다르게 불린다(사람의 경우 변형크로이츠펠트야곱병, 소는 광우병, 양은 스크래피 등등).

그리고 1980년대 영국의 광우병 파동이 시작된다. 쉬쉬 하면서 마구잡이로 소를 죽여 버리던 영국 정부는 호된 시련을 겪고 나서 대국민 사과까지 했지만 이 이미 인간에게까지 퍼져나간 뒤였다. 


더 무서운 일은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 양, 사슴, 밍크 같은 동물들이 우르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질병에 걸린다는 것은 어쩌면 프리온 단백질이 생태계 곳곳으로 빠져나갔을수 있음을 보여주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더, 더, 무서운 일은 미국에서 알츠하이머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광우병과 증상이 비슷하다. (광우병 걸린 쇠고기 뇌처럼 구멍 숭숭 뚫린 검역망 때문에 팔려나가고 있는지도 모를) 오염된 쇠고기를 먹은 이들이 대량으로 광우병에 걸리고 있다면? 그런데 그 질병들이 알츠하이머라는 이름으로 애매하게 통용되어 진실을 가리고 있다면? (변형크로이츠펠트야곱병, 즉 ‘인간광우병’은 시신의 뇌를 부검하지 않고는 확인할 수가 없다) 


더, 더, 더 무서운 일은, 이 책 앞부분에서 서울대 의대 교수님이 친절하고 상세하게 도움말을 붙여주셨는데, 한국인들의 경우 서양인들과 유전적으로 달라 프리온 단백질에 트리플 곱빼기로 취약하다는 점이다! 


곰탕 설렁탕 기타등등 각종 ‘탕’자 들어가는 메뉴에 환장하는 나같은 사람은 그저 떨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미국산이 됐건 호주산이 됐건 한국산이 됐건, 어차피 쇠고기는 이제는 전지구적 환경 스트레스를 감안하더라도 ‘지탱하기 힘든(unsustainable)’ 음식이 된 것 같다. 이참에 쇠고기를 포기해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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