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이란 대선

딸기21 2005. 6. 16.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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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7일(이하 현지시간) 이란에서 대선이 실시된다. 세계의 환호 속에 화려하게 등장했던 무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의 개혁파 정권은 `미완의 개혁'이라는 의미만을 남긴 채 후임자에게 과제를 넘기게 됐다. 대선을 앞두고 이란에서는 개혁 공과를 따지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14일 "이란 유권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투표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하는 점"이라고 보도했다. 8년 전 희망에 들떠 투표소로 달려갔던 이란인들의 `개혁 실망감'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1997년 하타미 대통령의 당선은 이란은 물론 세계를 놀라게 한 사건이었다. 아야툴라 호메이니의 이슬람혁명을 다시 뒤집는 벨벳 혁명을 통해 하타미 대통령은 보수파들이 내세운 후보를 가볍게 제치고 70%가 넘는 지지율로 당선됐다. 막강한 결집력을 보인 여성들과 젊은 유권자들은 보수파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하타미 대통령은 집권 뒤 대미관계 개선 조치들을 잇달아 내놓는가 하면 시아파 근본주의가 확산될까 우려해 이란을 적대했던 아랍진영에도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당선된 그 해 이슬람회의기구(OIC) 회의를 주최, 이슬람권 외교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한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왕세자와 포옹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아랍권을 놀라게 했다. 독일 유학파 출신의 `지적인 대통령'으로도 유명한 그는 98년 유엔총회 연설에서는 `문명의 충돌'이 아닌 `문명 간 대화'를 설파했다. 이 연설은 책으로 만들어져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팔려나갔다.


그러나 `호메이니의 벽'은 너무 높았다. 보수파 집결체인 `혁명수호위원회'는 대통령 이상의 권한을 갖고 있고 최고종교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호메이니의 후계자로서 명실상부한 `최고권력자'로 군림하고 있다. 이슬람 샤리아(성법)체제에 따라 성직자들로 구성된 사법부는 하타미 개혁노선을 따르는 마즐리스(의회) 의원들과 사사건건 대립했다. 행정-입법부 대 사법부의 대립구도 속에서 개혁법안들은 잇따라 좌초됐다. 공화국군은 계속 보수파에 장악돼 있고, 개혁파 시위대와 보수적인 이슬람 민병대가 충돌하는 상황도 빚어졌다.

1기 집권 뒤 보수파와의 싸움에 지쳤다며 재출마하지 않겠다고 물러섰던 하타미 대통령은 `국민들의 뜻'에 따라 다시 출마, 2001년 집권 2기를 맞았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대미관계 개선도 벽에 부딪쳤다. 이란과 대화하려 했던 미국의 빌 클린턴 정권 대신 조지 W 부시 정권이 들어서자 양국간 갈등은 오히려 두드러졌다. 최근 이란 핵문제는 사실상 하타미 대통령의 손을 떠난 듯한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외세 개입 없는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시도했던 하타미 정권의 `민주화 실험'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자 하나로 뭉쳤던 개혁파들 사이에서도 노선 분열이 나타나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14일 이란 개혁파 안에서 `이슬람 공화국'의 이상을 유지하면서 점진적인 개혁을 원하는 진영과 `레짐 체인지' 수준의 혁명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진영이 나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개혁의 속도를 둘러싼 논란인 것 같지만 실은 개혁의 본질 자체에 대한 전혀 다른 접근인 셈이다.



이번 대선에는 8명이 후보로 나섰지만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무스타파 모인 두 후보의 경쟁으로 압축되고 있다. 둘 다 과반수 득표에는 역부족이어서 사상 최초의 결선투표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라프산자니는 1989년부터 8년간 두 차례 대통령을 역임한 바 있는 거물 정치인. 보수-개혁 사이를 오가며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는 실용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대미관계 개선 등에 그만한 적임자는 없다는 것이 외신들의 평이다. 그러나 이란 내에서는 부패 혐의로 지지 못잖게 많은 비판을 받아 온 인물이기도 하다.

막판 돌풍으로 투표율이 높아진다면 하타미 대통령의 정치적 후계자로 불리는 모인 후보에게도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 의사 출신으로 정계에 뛰어든 모인 후보는 2003년 문화-고등교육장관 재직 당시 보수파가 테헤란 대학생들의 개혁요구 시위를 강경진압한데 반발, 사임함으로써 젊은이들의 지지를 얻었다. 모인 후보가 당선된다면 개혁노선은 그대로 유지되겠지만, 보수파의 반격이 더욱 거세지리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





내가 이란을 지켜보는 이유


 

내일 이란 대선이 실시된다. 여담이지만 나는 1997년에도, 2001년에도 이란 담당이었다. 이란 대선을 멀리서 지켜보는 것이 이번이 세번째인 셈이다. 하타미 대통령이 1997년 처음 당선될 때 그야말로 '세계가 환호했던' 것을 나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나테크 누리라는 경쟁상대는 국회의장으로 보수파의 총체적인 지원을 받았고, 그가 이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좋아하고 남녀평등주의자인 것으로 알려진 하타미라는 인물은 엄청난 지지율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그의 뒤에는 아이러니하지만 이번에 출마한 라프산자니 전대통령(당시 대통령)과 그 딸들이 있었다. "내 딸들이 연애결혼을 해도 상관없다"던 하타미를, 라프산자니는 물밑에서 사실상 지원해줬었다. 취임 직후 하타미가 여성부통령을 임명하면서 보수세력을 통렬히 비웃고 자신을 밀어준 여성들에게 기꺼이 보답했을 때에는 꼭 내 일처럼 기뻤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세계 영화계의 별로 떠오를 수 있었던 뒤에는 하타미가 있었다. 독일 유학파 출신인 하타미가 문화부 장관 시절 영화진흥정책을 펼친 것이 오늘날 이란영화 붐의 바탕이 됐던 것이다.
하타미가 이란에서 OIC 회의를 열고 사우디의 압둘라와 손을 맞잡는 모습은 이슬람권 전역에 신선한 쇼크를 안겨줬더랬다. 아랍은 이란을 극도로 미워해왔다. 이란의 시아파들이 일으킨 호메이니 혁명은 미-소 양극체제에 폭탄을 날린 사건이었다. 그러나 미국 못지 않게 아랍 이슬람국들도 그 폭탄의 여파를 두려워했다. 모든 독재정권은 '민중의 힘'을 두려워한다. 사우디를 비롯한 아라비아 반도의 독재정권들은 시아파 혁명이 자국 내에 '수입'될까 전전긍긍했다. 미국과 아랍국들은 한데 뭉쳐 이란을 봉쇄하는데에 20년을 보냈다. 사담 후세인이 이란을 공격했을 때 미국이 후세인을 밀어줬던 것은 이란이 그만큼 두렵기 때문이었다. 자잘한 시빗거리라면 몰라도, 세계체제 자체에 폭탄을 던지는 세력을 미국이 용납할 수 있었겠는가.
더우기 이란은 이슬람권에서 아주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아랍과는 언어도, 민족도, 역사도 다르다. 역사적 연원을 따져보자면 7세기 예언자 무함마드(마호메트)가 이슬람교를 일으킨 뒤 무슬림 세력이 가장 먼저 맞서 싸운 상대가 바로 페르시아 제국이었다. 아랍은 동쪽으로는 페르시아, 서쪽으로는 비잔틴과 싸워 세력을 넓혔다. 이후 페르시아는 이슬람화됐지만 아랍권의 시선은 껄쩍지근할 수 밖에 없다. 무시하기엔 너무 크고, 너무 센 상대가 곁에 있으니 왕따시키거나 운신 못하도록 묶어두는 수밖에 없었다고나 할까.

이란은 이미 몇년째 내 머리 속을 메우고 있는 나라다. 이란에 가본 적은 없지만 반드시 찾아가보리라는 꿈을 갖고 있다. 이란이 하타미 개혁을 통해 제대로 된 민주국가로 섰으면 좋겠다, 하는 바램. 미국이 중동을 민주화하겠다고 개지랄발광을 하고 있는데, 이슬람 국가들 중에 개판인 나라들은 다 친미국가들이다. 사우디, 이집트, 요르단, 이런 나라들. 부시가 민주주의를 확산시킨다고?
이란의 개혁파들은 아래로부터의 무혈혁명을 통해 민주화를 이루려 했다. 그것이 어찌 쉽겠는가. 자원은 힘이다. 아직 이란에겐 잠재력일 뿐이지만, 힘이 있는데 평화롭고 행복하게 낮은데로 임하려 할 자들은 별로 없다. 그러니 이란의 보수파들은 핵무기를 만들겠다고 설쳐대는 것이다. 이 나라가 핵무기와 자원민족주의 대신 평화의 길로 나아간다면, 석유 팔아 기득권층 잘먹고 잘사는 대신 국민을 위한 경제발전을 이뤄낸다면 인류 역사의 승리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이란 대선은. (2005.6.20)


이란 대통령선거는 결국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결선투표로 가게 됐다. 중도파와 보수파 후보가 나란히 오는 24일(현지시간) 결선에 진출하게 된 가운데, 개혁파와 보수파는 각기 결선에 오른 두 후보를 중심으로 연대 움직임을 보이며 이합집산을 벌이고 있다. 탈락한 후보들은 부정선거 의혹을 강하게 제기, 정국이 혼돈 상태를 맞고 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이란 내무부는 지난 17일 실시된 대선에서 중도 혹은 온건보수로 분류되는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지니와 강경보수파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가 각각 21.0%와 19.5%를 득표, 결선에 진출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총투표율은 당초 예상보다는 높은 62%에 이르렀지만 지난 1997년과 2001년 두 차례 대선에는 못 미쳐 무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의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을 반영했다.
라프산자니는 여론조사와 거의 같은 득표율을 보였지만 당초 결선 진출이 예상됐던 개혁파 무스타파 모인은 지지율이 떨어져 5위에 그쳤다. 최대 이변은 테헤란 시장 출신으로 강경보수파인 아흐마디네자드가 2위를 기록한 것. 그는 이슬람 원리로의 복귀와 대미관계 신중론을 펼쳐온 인물이다.
지난 8년간 애써 얻어낸 권리와 자유를 잃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개혁세력은 라프산자니를 중심으로 뭉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라프산자니는 19일 자신에게 지지를 모아줄 것을 호소하면서 “지금은 극단주의에 맞서 싸울 때”라고 주장했다. 모인 후보를 밀었던 개혁정당 이슬람이란참여전선(IIPF)은 19일 상대적으로 개혁파와 친밀한 라프산자니에 힘을 모아줄 것을 국민들에 호소했다. 보수파 유력후보였던 모하마드 바케르 칼리바프도 라프산자니 지지를 선언했다.

개혁파들은 또한 지방 투표소에서 보수세력들이 여성 투표를 막는 등 부정선거가 자행됐다고 주장했다. 3위 득표자인 개혁파 이슬람학자 메흐디 카루비는 보수파가 혁명수비대(군대)와 이슬람민병대를 동원, 조직적인 부정선거를 저질렀다며 최고종교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에게 "선거부정을 조사하라"고 공식 요구했다.
개혁파는 무효표가 120만표 이상 나온 점, 보수파 집결체인 혁명수호위원회가 내무부 선거결과 발표 전에 아흐마디네자드의 승리를 발표한 점 등에 대해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내무부는 18일 오전 잠정집계결과 라프산자니가 1위, 카루비가 2위라고 발표했으나 혁명수호위는 아흐마디네자드가 1위라고 발표했었다. 이에 내무부가 항의하는 소동까지 빚어졌다. 2003년 노벨평화상을 수상자인 시린 에바디도 투표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며 결선투표 불참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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