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이라크의 작은 다리를 건너서

딸기21 2003. 6. 3.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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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의 작은 다리를 건너서 

이케자와 나츠키 (지은이) | 모토하시 세이이치 (사진) | 달궁 | 2003-05-07


아주 가까운 시절의 일인데도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어쩌면 '기억의 조작' 내지는 '강요된 망각'인지도 모를, 그런 일들. 일본의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이케자와 나츠키(글)와 모토하시 세이이치(사진)가 전해주는 이라크의 풍경은, 불과 몇달전의 모습인데도 마치 오래 지난 옛날처럼 느껴진다. 


아무래도 나의 감상은 그냥 책장을 넘기는 다른 독자들과는 조금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내게는 더더욱 멀게만 느껴지는 것 같다. 티그리스강에서 배를 띄워놓고 노는 아이들, 고대유적을 지키는 아버지와 아들, 시장통 사람들, 아주 일상적인 스케치들. 지금도 이라크에서는 어쩌면, 똑같은 풍경이 살아있을지 모른다. 


이번 전쟁은 미국이 처음부터 끝까지 압도적인 화력과 전술을 과시했던 전쟁이었고, 민간인 피해나 오폭은 예상보다 훨씬 적었으며, 이라크인들의 '물리적인' 피해가 있기는 했지만 또한 어디에서든 사람은 살게 마련이므로. 그런데도 책 속의 '사람 사는' 모습은 오래된 과거처럼만 보인다. 


"나 역시 석유를 대량으로 소비하는 나라에서 안락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리고 나는 세계경제시스템의 은혜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몸이다. 빈부의 격차를 확대시켜 나가기만 하는 글로벌리즘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논하기는 하면서도, 그 시스템에서 벗어나 무인도에서 자급자족의 생활을 하려하지는 않는다. 무력을 배경으로 하는 미국의 정치경제적 패권을 비판하는 문장을 쓰기만 할뿐, 그 이상의 일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몸이다. 그래도 나에게는 상상력이 있다. 2001년 늦가을에, 만일 내가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났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때 내가 상정한 나의 모습은, 군벌의 지도자도 아니고 탈레반의 간부도 아닌 보통의 시민이라는 신분, 즉 폭탄을 맞아야 하는 몸이었다. 이라크에서 만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떤 사람들의 머리 위에 폭탄이 떨어질지 알고 싶었다." 


바로 그런 마음이 생생히 전달되어오기 때문에, 바그다드와 바스라, 모술에 사는 이라크 사람들의 얼굴은 이케자와의 책 속에서 되살아난다. 그의 말을 빌자면 미국은 '건조물 3347HG' '교량 4490BB' 따위를 공격할 뿐이지만, 죽어가는 사람은 밀리암이라는 아낙네와 세 명의 아들, 그녀의 사촌인 젊은 병사 유세프, 유세프의 아버지인 농부 압둘인 것이다. 아주 구체적으로 '죽어갈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볼 수 있을 때에만 우리는 전쟁의 참혹함을 머리 속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상상할 수 있다. 한 이라크소녀가 전쟁을 일으키려는 사람들에게 "나의 얼굴을 떠올리라"고 외쳤던 것, 그리고 그 호소가 우리 마음에 절절이 와닿았던 것도 모두 같은 이유에서다. 구체적으로, 아주 구체적으로 죽어갈지 모르는 그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라는 것. 


작가가 이라크를 방문한 것은 지난해 10월 무렵이었기 때문에 전쟁과는 시간차이가 좀 난다(사담 후세인 체제 하의 이라크를 겉에서만 보고 너무 긍정적으로 묘사했다는 느낌도 있다). 하지만 아주 적은- 불과 몇달의 차이일 뿐인데 책은 이라크의 과거가 되어버렸다. 희망이 있다면 그 과거는 어느 부분에서는 과거일지라도 큰 흐름에서는 결국 현재진행형이고, 또한 미래를 담은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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