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헤르에서의 회식
미셸 투르니에, <짧은 글 긴 침묵> 중에서.
우리들 주위로 백악질의 야산에 층층이 쌓아올려진 도시 탕헤르가 그 수많은 창문에 불을 켰다. 지평선 저쪽에는 지브랄타르 바위 위로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의 오른쪽에는 지중해의 고요한 물 위로 달이 떠올랐다. 왼쪽에는 마지막 석양빛이 잠겨드는 대서양의 거친 물결. 에드몽 샤를로가 알제리아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 그가 겪은 그 수많은 지진들, 특히 그 자신은 기억도 할 수 없지만, 그의 부모가 정원에서 져녁식사를 하고 있을 때 집이 무너져 어린 그의 요람을 덮쳤던 첫번째 지진 이야기를 막 들려주었다. 그는 또한 구름 떼처럼 몰려들던 마지막 메뚜기떼들의 재난도 경험했다. 기이하게도 그의 기억에 깊이 아로새겨진 것은 그 두 가지 재난의 무서운 소리였다. 지진은 동굴 속에서 울리는 듯한, 대지 전체를 뒤흔드는 저 근원적인 소리로 노호했고 굵은 메뚜기떼들은 나무를 잎사귀 하나 없이 발가벗기면서 무수히 성난 듯 달려들어 어지럽게 탁탁 튀는 소리를 냈다.
...그는 또한 말하기를, 탕헤르에서는 이상하게도 서쪽으로 강제 이주당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자신의 근원에 고집스레 충실하기 위하여 자꾸만 대서양 쪽으로는 등을 돌리려고 애를 쓴다고 했다. 이미 율리시즈는 6일 동안 사나운 태풍 속에서 표류하며 '세상 끝으로 떠내려가다가' 마침내 칼립소의 동굴에 이르렀었다. 빅토르 베라르는 그 동굴이 바로 여기서 지척인 세우타 근처임을 밝혀낸 바 있다. 세우타의 민물은 '오디세이'에 언급된 네 줄기 샘에서 나오는 것이다. 순수한 지중해 사람들에게 이 서쪽의 머나먼 끝은 불길한 구석이 없지 않은 곳이다. 헤라클레스가 그의 열두가지 영웅적인 사업을 완수한 헤스페리데스 정원 역시 이 곳에서 멀지 않은 릭수스-나중에 라라슈가 된-에 있다고 샤를로는 우리에게 상기시켜준다. 그리고 끝으로 그는 이 땅의 마지막 수수께끼 하나를 소개해주었다. 이번에는 산악지방에서 잇었던 신비로운 일이다. 지금부터 몇년 전 우아르자자트 남쪽 드라아 골짜기에 자리잡고 살던 작은 유태인 공동체가 있었는데 그 마을이 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종교서적 필사본들이 가득찬 도서관과 함께 그야말로 고스란히 증발해버린 것이 그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모로코 하면 무엇보다도 마라케슈다. 열에 들떠있고 사향 냄새가 풍기는 광란하는 도시, 여행자의 어깨를 부여잡고 놓지 않는 시니컬한 도시. 너무나도 유명한 제마 엘 프나 광장은 마치 거대한 상설 곡마단같이 군고기 장수들, 광대, 곡예사, 점쟁이, 이야기꾼, 이 봅는 사람, 대마초장수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나의 시야는 내 옆에 있는 천재적인 미국 사진작가 아더 트레스 덕분에 더욱 밝고 깊어졌다. 그는 가는 곳마다 우리들의 발 아래서 온갖 형상들과 장면들을 불쑥 솟아오르게 만들었다. 그것들은 사진작가의 부름에 응하고 있었으므로 잔혹하고 광적인 양식에 있어 서로 닮은 것이었다. 마라케슈의 메디나에서 그는 마치 본능에 이끌린듯 온갖 그림들이 가득한 어떤 이상한 가게로 직행했다. 그러나 그 가게의 전면은 맹수 우리같은 몰골이었다. 우리를 맞아들이는 가게 주인은 자신도 아더 트레스와 마찬가지로 사진작가라고 소개한다. 그의 전문은 꿈을 사진찍는 것이라고 했다. 고객이 찾아오면 그는 우선 자기 식으로 그 고객의 정신분석부터 한다. 그러고 나서 작업을 시작한다. 그는 정밀묘사 방식으로 무대를 그리고 소도구를 준비하고 의상을 만든 다음 분장을 시킨다. 이리하여 고객은 그의 은밀한 꿈인 알 카포네와 일치하도록 보르살리노 모자를 눈 밑까지 깊숙이 눌러쓰고 두아니에 루소의 그림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만 같은 시카고의 뒷골목에서 기관총을 겨누고 있는 모습으로 차린다. 그렇지 않으면 인조 표범 가죽으로 기운 원시인 치마를 두르고 칡넝쿨과 고사리가 우거진 무대를 배경으로 박제 사자와 마분지로 만든 표범 사이에서 가슴을 내밀고 으스대는 타잔이 된다. 그것도 아니라면 천일야화의 왕자가 되어 비단과 보석으로 몸을 감싼 채 요염한 여인들 가득한 특석 한가운데서 군림한다. 이런 모든 것이 여간 진지하고 심각하고 엄격한 것이 아니다. 여긴 시장바닥이 아니며 꿈을 가지고 장난치는 법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나 내가 다시 접한 모로코에서 잊지 못할 인상으로 기억 속에 새겨두게 된 것은 마라케슈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카사블랑카였다. 모로코의 모든 도시들 가운데서도 가장 기상천외의 도시인 동시에 볼거리가 가장 적으며 사랑받지 못한 카사. 날은 흐리고 써늘했다. 무시무시한 파도가 일어서 천둥치듯 으르렁거리며 해안 언덕의 바위 위로 창백한 물살을 몰아쳤다. 축축한 바람에 서민아파트같이 생긴 세 채의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을 물보라가 뒤덮으면서 발코니마다 널린 검고 흰 누더기 빨래들을 흔들고 있었다. 조무래기 아이들이 목쉰 소리로 왁자지껄 떠들어대면서 어떤 건물의 벽으로 공을 날리자 주먹질하는 듯한 소리가 탕탕 울리곤 했다. 거기에는 사람의 가슴을 쓰리게 하면서도 부풀게 하는 거친, 절망, 그리고 에너지가 함께 있었다. 산맥과 대양과 거친 기후, 그러나 또한 이베리아적 친화력과 말(馬)을 좋아하는 취향을 갖춘 모로코는 시원스럽게 미소지을 줄은 모르지만 그 나라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사람들의 키를 크게 해주고 가슴을 넓혀준다.
좌중의 사람들 중 하나가 에드몽 샤를로의 추억담과 내가 느낀 인상들에 대한 이야기에 말없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신학자 같은 학구적인 안경에도 불구하고 사막의 바람과 정치적 활동의 불에 단련된 그의 금욕적인 얼굴은 조금도 부드러워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 무하마드 아사드가 살아온 전설적인 모험을 알고 있었기에 그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그 모험의 메아리가 담겨 있는 느낌이었다. 세기 초에 동부 갈리시아의 르보브에서 태어난 이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태인은 베를린 언론사의 특파원 자격으로 팔레스타인에서 처음으로 중동지역을 접하여 알게 되었다. 그는 빠른 속도로 변신했다. 그는 이슬람과 아랍어와 새 이름과 사막, 그 사막의 자연스러운 용법인 유랑생활(연못의 물이 흐르지 않고 고여 있으면 악취를 풍기지만 흐르면 맑다. 여행하는 인간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양 식민지 지배자들에게 항거하는 아랍 제국의 대의를 자기의 것으로 선택했다. 이리하여 그의 모험은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성공한 모험이 된다. 그는 가당치도 않은 타협을 구하는 대신 자신의 서구적인 모든 뿌리를 뽑아버리는 힘과 용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는 이탈리아에 대항하여 키레나이카에서 싸웠고 입든 사우드의 정치자문관으로 활동했으며 메카 순례의 종교적 도취감을 맛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극동과 허드슨강 하구 어디쯤에 위치하게 될 거창한 그의 사업의 한 준비에 불과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인도대륙 북부에 하나의 위대한 이슬람 국가를 건설한다고 역설해왔다. 1947년8월 파키스탄이 건국했을 때 아사드는 그 신생국가를 세례반에 올려놓고 역사상 최초의 파키스탄 여권을 발급받았다. 파리, 그리고 뉴욕 주재 유엔 전권대사로서 그 나라를 대표한 사람도 그였다.
지금은 탕헤르의 헤라클레스 기둥 아래에 은퇴하여 물러앉은 아사드는 코란의 영역과 주석달기에 마지막 정열을 쏟고 있다. 이 성스러운 과업을 완수하도록 운명이 그에게 점지해준 이 은퇴생활은 의미심장하다. 지브랄타르는 균형 잡히고 절도 있고 투명하고 한계를 아는 지중해 세계가 안개에 덮인 채 사납게 일어나는 저 가없는 대양을 바라보는 열쇠 구멍이 아니고 무엇인가?
파울로의 연금술사도 탕헤르에서 머뭇거리더니.
탕헤르는 ‘마법의 도시’인가보다.
낯선 도시들의 이야기를, 투르니에만큼 매력적으로 전해주는 사람을 아직 못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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