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이라크]산티아고와 함께 한 여행

딸기21 2002. 10. 15.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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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몇일인지, 지금 서울은 몇일인지 선뜻 계산이 되지 않는다. 서울을 떠나온지 며칠되지도 않았는데 나는 그새 날짜에 대한 감각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엿새전 나는 서울에 있었고, 오후 4시에 요르단의 암만에서 온 이메일을 받았었다. 이라크에 오려면 빨리 암만으로 오라는. 이라크 정부 초청으로 대선 참관인단을 바그다드에 불러들이는데 거기 한숟가락 얹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에 부랴부랴 출장 신고를 했고, 겨우 2시간만에 정말 ‘번개불에 콩궈먹듯’ 결재를 받고 비행기표를 구입했다. 다음날 나는 암스테르담의 스키폴공항을 거쳐 19시간 동안 비행을 했고, 10일 새벽에 어느새 나의 존재는 암만으로 이전돼 있었다.


이번 여행(업무가 아닌 나의 개인적인 감상의 측면에서, 이렇게 표현하기로 한다)을 떠나기 전 나는 서울에서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읽고 있었다. 

안달루시아의 목동 산티아고는 자신만의 보물을 찾기 위해 이집트로 떠난다. 신이 그에게 선물해준 <표지>를 벗삼아. 안주하고픈 욕망과 떠나고 싶은 욕망, 현재의 소유에 대한 집착과 미래의 소유에 대한 갈망 사이에서 번민하면서도 산티아고는 발걸음을 늦추지 않는다. 끝까지 다 읽지 못했기 때문에, 산티아고가 보물을 찾았는지 못 찾았는지 나는 아직 모른다.

산티아고의 보물이 이집트에 있다면 나의 그것은 바그다드에 있을 거라고, 며칠 동안 생각했었다. 어릴적 나의 꿈은 이집트에 가 있었고 최근 들어서는 이란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업무> 때문에 이라크 문제에 몰두하게 되면서, 나의 뇌파는 바그다드를 향하게 됐다. 회사에서 집으로 가는 동안 나는 바그다드를 생각했고, 하루에도 몇 번씩 그 곳에 가 있는 나를 상상했었다. 알리바바의 도시 바그다드, 그리고 바빌론. 어쩌면 <연금술사>는 나에게 건네진 <표지>였는지도 모른다.


서울을 떠난 뒤 나는 요르단에서 이라크 입국비자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암만에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제라시에 갔었다. 기원 전후의 로마 유적과, 기원전 3세기의 아르테미스 신전에 들렀다가 오후에는 사해를 찾았다. 시간이 모자라 짠물에 발을 담그지는 못했지만 사해에 바로 면해있는 근사한 리조트 호텔의 식당에서 케밥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 하루 뒤, 나는 이라크 서부 아르단주와 요르단에 걸쳐져 있는 서부사막을 달리는 밴 안에 있었다. 이번 여행은 산티아고와 함께 한 여행이 될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12시간 동안 사막을 달렸다. 
 

산티아고, 난 언제나 지평선을 보고 싶었어. 아주 오래전부터. 가슴 떨리게 하는 그런 말 있잖아. 나는 <지평>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두근거려. 그 앞에서 나는 수동적이 되지. 인생은 스스로 개척해 가는 것이라지만 <지평>이라는 것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우연과 필연, 운명과 자유의지, 나의 모든 이성과 감성이 합쳐져서 내게 던져지는 것이니까.


나는 마치 우스개소리에 나오는 <동물원의 낙타>처럼 갈피를 못 잡고, <현실의 나>의 존재에 치어 허덕이고 있었거든. 스스로도 그걸 알고 있으면서 꿈도 꾸지 못하는 나를 딜레탕트라며 합리화하곤 했지. 산티아고는 그런 나에게 표지를 전해준 거야.


사막의 해는, 뉘엿뉘엿 지는 것이 아니었다. 저녁 6시가 되자 해는 지평선 너머로 넘어가버렸다. 그리고는, 밤이었다. 불빛이라고는 띄엄띄엄 보이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외에는 없었고 창밖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흙같은 어둠이었다. 나는 <완전한 어둠>을 처음으로 보았다.
바그다드에 도착해 티그리스 강변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사담 후세인의 대형 초상화가 걸린 낡고 허름한 호텔에서 잠이 들었다. 그날 나는 갈망했던대로 바그다드에 와 있었다. 나를 이곳에 옮겨놓은 힘은 바로 나 자신의 갈망이었다고 나는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