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말 나온 김에, 사담의 가족 이야기

딸기21 2002. 10. 15.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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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가족들에 대해 말하는 것은 커다란 금기인 듯했다. 사담 후세인의 두 아들 우다이와 쿠사이가 국가의 권력을 나눠 갖고 아버지의 대를 이을 준비를 하고 있지만, 이들 두 아들의 관계나 후세인의 가족 문제를 얘기하는 것은 철저하게 터부시되고 있었다. 특히 후세인의 '버림받은' 부인 사지다의 이야기를 꺼내면 화제를 돌리거나 입을 다물기 일쑤였다.

후세인은 8명의 부인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첫째 부인은 1958년 후세인과 결혼한 사지다 타르파다. 생후 9개월에 고아가 된 후세인은 외삼촌인 카이랄르 타르파 슬하에서 자랐는데, 카이랄르는 영국 식민지 시절 반영(反英) 투쟁을 벌였던 인물로 후세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사지다는 바로 카이랄르의 딸로, 학교 교사 출신이다.

후세인은 사지다와의 사이에서 우다이, 쿠사이 두 아들과 세 딸을 낳았지만 80년대 국영기업 간부 부인이던 사미라 샤반다르를 두번째 부인으로 맞으면서 사지다와 멀어졌다. 사지다와의 갈등은 88년 우다이가 아버지와 사미라를 연결시켜준 비서를 때려죽이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세간에 알려져 국제적인 뉴스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후 후세인은 97년에는 사지다를 가택연금시킬 정도로 사이가 벌어졌다. 사지다는 공개석상이나 언론에 등장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국민들 사이에 비교적 평판이 좋았기 때문에 많은 동정을 받고 있다고 한다.

'친족정치' 체제가 굳어져 있는 후세인 정권의 특성 때문에 두 아들 우다이와 쿠사이의 관계는 커다란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한때 아버지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여겨졌던 우다이가 96년 괴한의 피습으로 반신불수가 된 이후 둘의 관계는 역전돼 현재는 쿠사이가 권력을 물려받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우다이는 강간, 고문 등 온갖 악행으로 이름이 높은 반면, 아버지에게서 군 통수권을 상당부분 이양받은 쿠사이는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치밀하고 냉철한 인물이라는 평이 많다. 쿠사이는 공식적으로는 정보부 고문 직책만을 갖고 있지만 정권의 핵심인 6인 혁명위원회의 일원이다.

외부에서는 우다이와 쿠사이의 갈등이 곧 가시화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지만 이라크 내에서는 이같은 전망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고 있다고 현지인들은 전한다. 현재 우다이는 이라크의 언론을 쥐고 있는 것을 비롯해 체육, 문화, 교육 등의 분야를 장악하고 있고 쿠사이는 군과 정보 분야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등 권력의 '배분'이 이미 이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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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인 가족들과 그 재산?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65) 대통령의 개인적인 면모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미국 언론들이 대대적으로 후세인 대통령의 가족과 재산 등에 대해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소문만 무성했던 스토리들이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

후세인은 8명의 부인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첫째 부인은 1958년 후세인과 결혼한 사지다 타르파. 생후 9개월에 고아가 된 후세인은 외삼촌인 카이랄르 타르파 슬하에서 자랐는데, 카이랄르는 영국 식민지 시절 독립투쟁을 벌였던 인물로 후세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사지다는 바로 카이랄르의 딸로, 학교 교사 출신이다.
후세인은 사지다와의 사이에서 우다이, 쿠사이 두 아들과 세 딸을 낳았지만 80년대 국영항공사 간부 부인이던 사미라 샤반다르를 두번째 부인으로 맞으면서 사지다와 멀어졌다. 사지다와의 갈등은 88년 우다이가 아버지와 사미라를 연결시켜준 비서를 때려죽이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세간에 알려져 국제적인 뉴스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후 후세인은 97년에는 사지다를 가택연금시킬 정도로 사이가 벌어졌다. 사지다는 공개석상이나 언론에 등장하는 일은 거의 없고, 사지다와 사미라의 갈등관계를 언급하는 것도 금기시되어 있다. 하지만 사미라는 퍼스트레이디 시절 국민들 사이에 비교적 평판이 좋았기 때문에 많은 동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족정치' 체제가 굳어져 있는 후세인 정권의 특성 때문에 두 아들 우다이와 쿠사이의 관계는 커다란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1990-91년 북부 쿠르드족 학살의 주범으로 알려진 우다이는 한때 후세인의 권력승계자로 꼽혔으나, 난폭한 성격과 돌출행동으로 인해 쿠사이에게 밀려난 처지. 특히 우다이가 96년 반후세인세력으로 보이는 괴한의 공격을 받아 불구가 된 이후로 둘의 관계는 완전히 역전됐다. 미국의 ABC방송은 최근 후세인 대통령의 장남 우다이가 후세인 본인에 이어 전범 '1순위'로 지목되고 있다면서, 우다이와 관련된 비화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우다이는 강간·고문 등 온갖 악행으로 이름이 높은 반면, 아버지에게서 군 통수권을 상당부분 이양받은 쿠사이는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치밀하고 냉철한 인물이라는 평이 많다. 쿠사이는 공식적으로는 정보부 고문 직책만을 갖고 있지만 정권의 핵심인 6인 혁명위원회의 일원이다. 외부에서는 우다이와 쿠사이의 갈등이 곧 가시화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지만 이라크 내에서는 이같은 전망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한다. 현재 우다이는 이라크의 언론을 쥐고 있는 것을 비롯해 체육, 문화, 교육 등의 분야를 장악하고 있고 쿠사이는 군과 정보 분야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등 권력의 '배분'이 이미 이뤄져 있다.

한편 경제전문지인 포브스는 1일 인터넷판에서 세계의 억만장자들을 소개하면서 후세인 대통령의 재산이 20억달러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지난 1979년 대통령에 취임한 그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라크의 막대한 석유수입을 자신을 위해 축적, 전국 곳곳에 화려한 왕궁을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