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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대흥사] 구경 잘 하고 천벌 받을뻔함.

딸기21 2002. 9. 2.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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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7일. 별볼일 없는 산채비빔밥을 먹고 대둔사(大屯寺)로 올라갔다. 
91년 학과 답사 때 두륜산 대둔사를 '구경' 왔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절 이름이 대흥사(大興寺)였는데 92년에 대둔사로 바뀌었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도 이름이 '정리'되지 않은 듯, <대흥사>와 <대둔사>라는 이름이 표지판마다 혼용돼 있었다.

위치는 한반도 남쪽 끝자락이지만 이름만은 스케일 크다. 백두산의 두(頭)자와 곤륜의 륜(崙)자를 따서 두륜산이다. 원대한 이름과 달리 높이는 703m에 불과하다. 
두륜산을 옛날 사람들은 <큰 언덕>이란 뜻의 <대듬> <한듬>으로 불렀는데 여기서 절 이름이 나와서 <대둔사>, <한듬절>이라고도 했단다. 서산대사 유물이 보관돼 있다는 것이 이 절의 제일 큰 자랑거리인 모양이었다.
우리나라의 좋다는 어느 곳이건 가면 무슨무슨 8경이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데, 두륜산에는 <대흥팔경>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또 굽이굽이 계곡에 다리를 놓아서 9곡9교(九曲九橋)를 만들어놨다는 말도 들었는데 정작 <겉핥기 여행>이라는 모토에 충실하느라 절 주변 경치는 하나도 보지 못했다.

잘 모르지만 절의 배치는 고전적인 양식과는 좀 다른 것 같았다. 피안교 건너 일주문 지나 부도전에서 사진 한방 박고 해탈문을 들어섰다. 이 절의 해탈문에는 사천왕상이 없다더니 정말 그랬다. 동서남북으로 영암 월출산, 송지 달마산, 장흥 천관산, 화산 선은산이 감싸고 있어 터의 기운이 너무 세기 때문에 사천왕상을 세울 수 없다고 하는데 풍수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대둔사에서 받은 느낌은 '강하다'기보다는 '포근하다'는 쪽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지나온 길 왼편으로 돌아서 다리를 건너 들어가면 대웅전. <심진교>라는 이 다리는 돌로 된 오래된 다리로 작고 예뻤는데, 대체 언놈이 이 다리를 <둥근 아치형의 홍교>라고 설명해놓은 것이야...

대둔사에서는 현판을 눈여겨보라고 해서, 눈여겨봤다. 대웅보전의 현판 글씨는 혹자에 따르면 <용틀임을 하고 있는 듯한>, <한눈에 봐도 명필임을 알 수 있는> 힘찬 서체라고 하는데, 조선 정조 때 명필인 원교 이광사의 글씨라는 설명이 있었다. 
옆의 무량수각 현판은 유명한 추사 김정희의 글씨이고, 서산대사를 기리는 본전 옆 표충사(表忠祠)의 현판은 정조대왕의 글씨란다.

대웅보전의 현판글씨에는 유명한 일화가 전한다. 추사는 1840년(헌종6) 제주도 귀양 길에 초의선사를 만나기 위해 대둔사에 들렀다. 이광사가 쓴 현판을 보고 조선의 필체를 망가뜨리는 글씨라며 직접 자신이 현판을 써주고 갔다. 그후 추사는 유배지에서 깨우침을 얻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들러 자신의 아집을 사과드리며 대신 대웅전 왼편 무량수각의 현판을 써주었다. 

대웅전 옆에는 천불전이 있는데,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꽃창살이 아름답다>고 했던 것이 바로 이 건물이다. 옥(玉) 불상이 있다더니, 내 눈으로는 옥인지 목석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사실 천불전을 좋아하지는 않는데, 천(千)개의 불상 중 내 얼굴을 찾아낸 적이 한번도 없다. 불상들이 너무 작아서...여튼 이 건물의 꽃창살,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양산 통도사의 (눈오는 날 보았던 그 환상적인) 꽃창살보다는 오히려 못한 듯했다. 실은, 내 심사가 꼬여서-어느 절을 가든, 혹은 꽃창살이든 무슨 창살이든 이쁘게 보면 다 이쁘다. 그런데 유홍준씨가 이쁘다고 칭찬했다는 이유 만으로 <어느 절의 꽃창살>이 마치 가장 예쁜 꽃창살인 것처럼, 그 시대 장식을 대표하는 것처럼 인식된다는 것은 정말 우스운 일이다...

대웅보전 오른편에 응진전이 있고 그 앞에 신라말에 조성됐다는 삼층석탑이 섰는데 자장율사가 가져온 석가여래의 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이라고 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드는 생각-대체 석가여래에게서는 얼마나 많은 양의 사리가 나왔길래...국수 뽑는 기계도 아니고.

그런데 부처님 노할 일이 벌어졌으니...아지님이 어느 전(殿)의 부처님을 가리키면서 "야 저거 부처 아니지?" 허걱, 이게 무슨 소리..."아니 우째 그런 말을...부처님한테 손가락질 하면서 부처 아니라니, 그러다 천벌 받어". 잠시 뒤, 절마당에 갑자기 회오리바람같은 세찬 바람이 몰아치면서 나뭇잎이 날고 비가 후두둑 거리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침 날씨가 괜찮은 것 같아서 절 밑 주차장에 차 두고 올때 우산을 안 꺼내왔는데...부처님의 분노는 즉각적이고 영험하다...

연못 무염지(無染池)를 지나 표충사로 들어갔다. 바로 이 사당이 만들어지고 정조의 사액이 내려오면서 인근 선암사나 송광사와 당당히 겨룰만큼 대둔사의 기세가 피었다고 한다. 표충사 본전에는 서산, 사명, 처영의 영정이 봉안돼 있고 서산대사의 유물인 금란가사, 발우와 정조가 하사한 금병풍 따위가 표충사 아래 유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하는데 유물관 건물을 크고 번듯하게 지어놔서 외려 절 모양을 망친 듯한 느낌. 

두륜산 노승봉 아래에 북미륵암과 남미륵암이 있어서 각각 마애불이 조성돼 있는데 거기에는 하늘에서 쫓겨난 천동과 천녀의 전설이 얽혀 있다고 했다. 그치만 가보지 못하고, 또 와인 좋아하고 오디오에 관심 많은 여연 스님이 있다는 일지암도 못 올라와보고 바로 땅끝마을로 향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려오는 길에 유선여관 새 건물 발견하고, 전날 <낙원장>에서의 비참한 하룻밤이 생각나 두 여행객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는 얘기는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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