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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에서 화순으로] 오지여행+답사여행

딸기21 2002. 9. 2.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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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의 산들은 지리산 노고단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노고단의 산 기운이 서쪽으로 치달려 영암의 월출산을 일으키고(해남에서 화순으로 옮겨가는 길에 월출산을 멀리서 바라봤는데 아주 멋있었다) 해남반도에 들어서서 대둔산, 달마산, 두륜산 같은 산들을 세운 뒤 송지면 갈두리(땅끝마을)에서 제주 한라산을 바라보며 바다로 들어가 자취를 감춘단다.
대둔사에서 땅끝마을까지 가는 2시간 가까운 드라이브는 아주 기분좋은 여정이었다. <땅끝>이라는 말이 주는 뾰족하면서도 삭막한 느낌과는 전혀 다른, 따뜻한 들판과 아담한 산들. 가는 길에 송호해수욕장에 들러 잠깐이나마 몸을 담그기까지 했다. 여름휴가 동안 어쨌든 물놀이 한번은 해본 셈이다.

정작 땅끝마을은 실망스러웠다. 그렇겠거니 생각은 했지만 횟집과 식당들, '별볼일 없는' 바다. 전망대가 있었지만 언덕배기에 높다랗게 세워진 시멘트 건물에 올라가고픈 마음이 없어 가게에서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화순으로 향했다.

해남에서 화순까지 가는 길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가게 아주머니에게 물었더니 광주 거쳐 가라는데 내가 갖고 있던 지도책에는 더 가까운 길이 나와 있었다. 작은 지방도로인 것 같아 지도책 보고 어찌어찌 찾아가려니 해서 길을 나섰는데.

헤구구...내 평생 그런 오지(奧地)는 처음 가봤다. 시골, 시골 하지만 이런 시골이 어디 있을까 싶은 외진 곳. 해남에서 영암으로, 다시 화순으로 가는데 영암-화순-장흥 3개 군이 만나는 언저리에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꼬불꼬불 굽이굽이 올라가는데 능선이 높지는 않았다. 문제는 내려오는 길. 내리막이다 싶었는데, 포장도로가 끊기고 자갈덮인 길이 나타났다. 
길은 하나뿐, 조금 있으면 좋은 길이 나오겠거니 하면서 따라같는데...길은 점점 험악해지더니 아예 흔적만 남은 정도로 좁혀져 있었다.

군과 군 사이의 산을 타넘는 길이라 현지 주민들도 다니지 않아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는데 어째 도로지도에는 그 길이 나와있었는지. 우거진 수풀을 차 머리로 헤치면서 가는데 시속 몇 km 밖에 안 되는 속도로 지나갔으니 사람 걷는 것보다도 느렸던 것 같다. 가는 길에 차 앞유리창 위에서는 메뚜기인지 머시긴지 벌레 두 마리가 꼭 껴안고 앉아 놀기까지. 아, 여기서 차가 고장나면 우리는 끝장이다...포장도로로 나오기까지 2시간 넘게 공포 속을 헤매고 다녔다.

해남-화순을 가본 것이 91년. 비교하자면 대둔사는 "아, 이렇게 변했구나"였고 운주사는 "아, 그대로구나"였다. 고즈넉하다못해 스산한 기운까지 감도는 절 입구. 큰 문을 세우긴 했지만 낮은 산들 사이에 끼인 계곡의 신비스런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문에서 절까지 가는 길 옆에 황무지 느낌 나는 풀밭이 있고, 풀밭 가운데에 탑과 불상들. 절 건물들은 최근에 만든 것처럼 보였지만 건물 수가 적고 크기도 적어 별로 절을 '망쳐놓지' 않았다. 

산기슭까지 올라가 탑 구경, 불상 구경. 그리고 <와불>을 찾았다. 안타깝게도 위치상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이 곳 부처님들은 굳이 '민중불교'라는 말을 붙이지 않아도, 호칭부터 다른 곳 부처님들과는 다르다. 머슴부처, 거지부처.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대로> 붙여진 이름들. 

좀더 꼼꼼히 보면서 다녔으면 좋았겠지만 <휴가 2기>의 계획이 남아있기에 운주사를 나와 밤늦도록 달려(물론 아지님이 혼자 운전했지요) 서울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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