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들

딸기21 2004. 12. 19.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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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올로 코엘료의 소설 중에 가장 먼저 읽은 것은 '연금술사'였다. 


어떻게 그 책을 고르게 되었을까? 당시 나는 코엘료라는 작가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고, 듣고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알라딘을 돌아다니다가 정말로 우연히 책의 표지를 보게 됐다. '연금술사', 매혹적인 제목, 예쁜 표지, 라틴스러운 이름. 그런 것들에 이끌려 충동적으로 책을 샀고, 그다지 두껍지 않은 저 소설을 아주 오랜시간에 걸쳐 읽어내려갔다. 


'아주 오랜시간'이 되어버린 것은 내 게으름탓도 있지만, 저 책을 읽기시작한 뒤 잠깐의 여행을 다녀와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여행지에서 미처 읽지 못한 결말 부분을 이리저리 예상해보고, 저 책이 '지금 내게' 무슨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인지 골똘히 생각해봤다. 생각의 내용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그저 잡념에 불과한 것이지만, 한 소설이 내게 부과해버린 '생각의 과정' 혹은 '생각의 필요성'은 생생히 기억에 남아있다. 

다소 신비주의적이고 몽환적이기까지 한 '연금술사'라는 책의 마력에 끌려 코엘료의 다른 소설들을 읽어봐야겠거니, 하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7일째...'라는 시리즈 세 권을 모두 읽기까지는, '연금술사'로부터 다시 2년이 걸렸다. 그 사이 코엘료 소설을 읽는 친구들이 많이 생겼고, 드문드문 친구들의 입을 통해 '독후감'을 들을 수 있었다. '연금술사'가 내게 보여줬던 매혹적인 세계와는 달리, 코엘료 소설들에 대한 평가는 사실 그리 후한 것만은 아니었다.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라는 기나긴 제목의 소설은 '사랑과 은혜'라는 기독교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여러 종류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신에 대한 사랑, 만인을 향한 박애주의적 사랑, 연인을 향한 사랑과 소유욕, 더 큰 사랑을 위한 '도구'로서의 사랑, 사랑이 야기하는 불안감들. 이런 사랑들을 다루는 방법은 -전형적인 '코엘료식 신비주의'라 할까. 
 

그런데 소설이라기보다는 잠언류에 가깝다 할 소설들, 신과 선악과 사랑의 이야기들이 읽는 이에게 마력을 발휘하는 일이 늘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런 심오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일수록, 마력을 발휘하는 기회는 적다. 독자의 상태와 책의 메시지가 용케도 맞아떨어졌을 때, 그러니까 '기적을 원하는 이에게 기적이 나타난다'고 해야 할까.
'연금술사'는 기적을 원했던 내게 마력을 보여줬던 소설이었고, 이 '피에트라...'는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에 매달려있을 뿐인 내게는 너무나 종교적이다못해 뜬구름 잡는 듯한 얘기였다.



 
'피에트라...'가 사랑의 문제를 다룬다면,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는 정신병원이라는 특별한 공간을 배경으로 '죽음'의 압박감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그린 소설이다. '피에트라...'에 비하면 플롯이 있고 재미도 더 있다. '악마와 미스프랭'은 선악의 문제를 다루지만 줄거리가 재미있는 듯하면서도 결말이 뻔한 것이어서 좀 김이 빠졌다.

 
파울로 코엘료가 훌륭한 이야기꾼인 것은 틀림없다. 저렇게 원초적이고 심오한 주제들을 잠언동화식으로 꾸며내면서도 책장이 술술 넘어가게 만드는 것을 보면. 적어도 세 권의 소설을 읽으면서 이 작가의 능력에 대해 실망을 하지는 않았다. 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반감을 느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역시나 책에는, 읽는 사람에 따라 '읽을 때'가 따로 있는 것 같다. 코엘료의 소설은, 이제 이것으로--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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