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내 마음의 팜파스

딸기21 2004. 12. 22.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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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팜파스 Far Away and Long Ago a history of my early life
윌리엄 헨리 허드슨 (지은이) | 이한음 (옮긴이) | 그린비 | 2003-09-05



1850년 무렵, 아르헨티나 팜파스.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저 시기에, 아르헨티나의 팜파스라니! 그곳에서 어린시절을 보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1970년대,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같은 사람한테는 상상조차 힘들다. '내 마음의 팜파스'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팜파스에서 자라난 영국의 조류학자 윌리엄 허드슨이 어린시절을 돌아보는 회고담을 담고 있다. 

아름답다. 상상도 할 수 없는 19세기 중엽의 팜파스를, 허드슨은 할아버지 옛날이야기같은 어조로 차분히 그려내 보인다. 그곳의 나무들, 새들, 짐승들, 그리고 사람들. 가우초들과 함께 보낸 어린 날, 대평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다섯살에서 열다섯살 사이, 소년의 눈에 비친 세상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그저 기쁘고 낙락한 일들로만 가득차 있기 때문은 아니다. 소년의 눈에 비친 팜파스는 때로는 격정적이고, 때로는 두렵고, 때로는 아름다운 그런 세상이다. 그 곳에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따뜻하기도 하고, 촌스럽기도 하고, 격정적이고 폭력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드슨이 되돌아보는 팜파스는 아름답다. 자연도 사람도 빗장을 닫아걸지 않았던 시절, 훗날 조류학자가 된 어린 소년은 새들의 지저귐과 나무들 속에서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배우고 사랑과 행복을 배운다. 열살 무렵부터 총을 들고 오리사냥을 다녔던 '초원의 소년'은 멧돼지와 뱀, 들짐승들, 가우초들 사이에서 세상을 본다. 아르마딜로의 꼬리를 붙잡으면 이 짐승이 엄청난 힘으로 땅을 파고 들어가 사람이 빨려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 들판의 주머니쥐는 성질 사나운 독사까지도 나긋나긋하게 복종시키는 사나운 육식동물이라는 것, 야생화된 멧돼지의 위험성, 뿔이 서로 얽혀 굶어죽고 마는 성마른 숫사슴들. 소년은 그렇게 초원에서 태어나 자란다. 

"사람들이 이 세상과 인생이란 행복하게 살 수 있을만큼 그렇게 즐겁거나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고, 마지막까지 평정을 유지하면서 지켜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때마다, 나는 그들이 제대로 살아본 적도 없고, 그들이 그렇게 부족하다고 보는 세상이나 그 속의 어떤 것도 명확하게 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풀잎조차도 말이다." 

병상에서 어린시절을 돌아보는 노인은 팜파스에서 보고듣고 배운 인생의 이야기를 잔잔하고 감동적으로 들려준다. Far away and long ago, 책의 원제처럼 이미 너무 오래전의 일이, 너무 먼 곳의 일이 되어버린 이야기를. 허드슨은 1922년에 죽었고, 그가 이 책을 쓴 뒤로도 제법 긴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정말이지 오래되고 먼 이야기가 되어버린, 150년전 팜파스. 그래서 잔잔한 옛이야기의 감동이 더욱 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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