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버티고 American Vertigo (2006)
베르나르 앙리 레비 (지은이) | 김병욱 (옮긴이) | 황금부엉이 | 2006-12-25
1831년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미국 여행을 좇아 베르나르 앙리 레비가 애틀랜틱 먼슬리 후원으로 미국을 돌아다닌 뒤 생각나는 것들을 적었다. ‘유럽에서 태어나 유럽을 내리누르고 그러면서도 유럽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집나간 자식 미국’을 바라보는 유럽인의 시선이 책 전체에 깔려 있다.
저자 스스로 밝힌대로 책은 유럽인과 미국인 사이의 이야기이고, 양쪽의 차이와 관계와 변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모티브나 저자나, 구색 잘 갖춘, 명품지향 브랜드지향 기행문이다. 프랑스식 말장난 겸 말꼬기로 우아한 척 한껏 폼을 잡았다.
바락 오바마, 워렌 비티 등에 대한 인물평이라든가 촌철살인하는 맛이 있어서 읽는 동안 재미는 있었다. 미국식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프랑스인의 관점이랄까, 크리스토퍼 히친스(이 책에선 ‘히첸스’)나 무브온 시민운동 같은 것들에 대한 감각 같은 것들도 눈에 띄었다. 빌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이 과연 그렇게 중요했을까? 진보운동을 하는 사람이 대통령의 혼외 성관계를 놓고 도덕성을 운운하다니! ‘무브온’ 같은 웹 기반 시민운동에 대한 앙리 레비의 비판은 주로 그런 것에 맞춰져 있다.
크리스토퍼 히친스에 대한 부분이 나오길래, 히첸스에 대한 아주 약간의 관심 때문에 눈여겨 보았는데 딱 떨어지는 내용은 없었다. ‘키신저 재판’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히친스는 키신저를 늘 따라다니면서 다리를 거는 모양인데, 한때 미국 좌파 지식인의 대표 중 하나였지만 이라크전에 참전하면서 지탄을 받았다고 들었다.
정작 히첸스에 대해 아는척하던 앙리 레비는 히첸스의 ‘이라크전 찬성 논란’에 대해서는 뭉개고 넘어간다. 레비는 처음부터 중간부분까지 이라크전에 대해서 은근히 비판적인 양, 그렇지만 뭐를 비판하는 것인지 하나도 알 수 없게 말을 비비꼬더니(글 쓰면서 몸도 비비꼬았는지도 모르겠다) 뒤에 가서는 “사악한 후세인 그냥 내버려두는 놈들보다 부시가 더 나쁘다고 볼게 뭐 있어” “그래도 백악관은 도덕적인거야” 궤변을 늘어놓는다. 오만 잘난척은 다 해놓고는 뒷부분에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 예찬하는 꼴을 보니 참으로 재수가 없어서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더욱이 한두 마디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부분이 거의 결론 전체를 이루고 있다. 헌팅턴은 이게 틀렸네, 후쿠야마는 이게 틀렸네 하더니 이 자의 논리는 후쿠야마(이 사람은 ‘정통’‘자유주의’‘보수파’로서 이라크전에 반대했다)만 못하다. 이슬람 테러집단 욕하는 걸 보면 문명충돌론 그대로인데 스타일은 ‘프랑스식’이니 더 밥맛없다.
게다가 글 중간중간 드러나는 (유대계 지식인들이 쓴 다른 글들에선 찾아보기 힘들었던) 노골적인 ‘불쌍한 유대인’ 시늉은 꼴불견이었다. 토크빌 따라한다고 여기저기 미국 감옥(관타나모까지 추가해서) 돌아다니며 미국의 모지락스러움을 비판하더니 전쟁 예찬이 웬말이래? 잘난척 하면서 못된 놈들 싫다.
* 존 케리를 띄우기 위한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버락 오바마의 부상을 ‘눈으로 보고’ 생생하게 묘사한 부분은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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