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고 차베스라는 인물, 보수적인 신문들에 나오는 것처럼 정말 ‘또라이’인가. 그렇게 또라이라면 영국의 ‘내놓은 좌파’ 켄 리빙스턴 런던 시장은 왜 차베스가 런던에 찾아오자 버선발로 환영하면서 차베스의 에너지 공급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던 걸까. 왜 남미에서는 차베스의 말발이 여기저기 먹히는 걸까. 볼리비아, 니카라과 등의 ‘좌파 대통령’들이 차베스와 나란히 어깨걸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그쪽 동네에서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보이는데 말이다.
차베스라는 사람에 대한 반응은, 요즘 들어선, 거의 카스트로 못잖게 갈리는 것 같다. 스스로 “예수와 카스트로가 나의 모델”이라 말하는 차베스, “이제는 21세기 새로운 사회주의 혁명의 시대”라면서 시간의 흐름을 거꾸로 돌리려는 듯 좌충우돌하는 이단아. 차베스를 둘러싼 ‘진실’은 무엇이며, 베네수엘라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어떤 것이고, 어떤 ‘역사적인 의미’를 띤 것일까. 아니, 대체 남미 산유국에서 벌어지는 소동들이 ‘역사적인 의미’를 띤 사건들이 맞기나 한 것일까.
어느 틈에 차베스에 대한 책들이 국내에도 알음알음 나와 있었다. 얼마전 두 권을 주문해 살 때만 해도 딱 그 두개였는데 그새 더 나온 것을 보니 차베스에 대한 관심이 한국에서도 높아지긴 한 모양이다. 한때는 맑스-레닌주의가, 한때는 주체사상이, 한때는 룰라의 노동자운동이, 한때는 리비아의 녹색혁명론이 ‘대안’이라는 이름을 걸치고 사람들을 혹하게 한 적 있었다.
차베스의 사회주의 혁명론을 비롯해 앞서 언급한 무슨무슨 주의-사상-론(論)들이 모두 같은 등급에 속하는 것들이라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차베스라는 인물, 생각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베네수엘라가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산유국이라는 사실을 보태고뺀다 해도 말이다.
차베스와 베네수엘라 그리고 21세기 혁명.
조지프 추나라. 이수현 옮김. 다함께. 2/9
책은 책인데... 알라딘에서 주문하면서 정가가 2000원 밖에 안 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받아보니 예상대로 책이라기보다는 팜플렛이다. 내 손바닥 2.5배 작은 크기에 60쪽 분량. 책의 거품이 너무 심하다보니, 이런 팜플렛도 하나의 방식이고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박노해 선생님네 나눔문화에서 요새 ‘팜플렛 운동’ 하던데 다시 팜플렛이 유행이런가.
한국 언론들이 앞다퉈가며 차베스라는 인물을 별종으로 만들어 희화화하는데 과연 그렇게 볼 일인가. 이 팜플렛은 너무 예찬 위주여서 오히려 신뢰도가 떨어지는 면이 없지 않지만, 차베스라는 인물이 갖고 있는 나름의 확신과 ‘21세기 사회주의 실험’을 간단명료하게 정리해 놓았다는 장점이 있다.
신문에 많이 나오는 차베스가 어떤 인물인지, 뭐하는 사람인지, 미국 놈들이 욕하듯이 진짜 형편없는 인간인지 궁금하긴 한데 그렇다고 아주 자세히 알 필요는 없겠다 싶은, 그저 신문기사보다 조금 더 알고싶은 정도인 사람들에게는 딱 알맞은 책.
차베스, 미국과 맞짱 뜨다.
베네수엘라혁명 연구모임 엮음. 시대의 창. 2/10
앞서 읽은 ‘차베스와 베네수엘라 그리고 21세기 혁명’을 좀 길게 늘여 쓴 책 같은 느낌이 든다. 우고 차베스라는 논란 많은 인물을 ‘21세기 새로운 사회주의 혁명가’로 칭송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찬양 일변도로 쓰고 있는데, 그 부분은 사실 좀 놀랍다. 한국에서 베네수엘라의 ‘혁명적 상황’에 관심을 갖고 여러 가지 자료를 분석해 이런 책을 내놓은 것은 훌륭한데, 이렇게 ‘무비판적’으로 마치 예전 1980년대 대학생들이 북한 칭찬했듯 차베스 칭찬해놓은 것은 좀 뜻밖이다. 이러다가 베네수엘라 잘못되면 어떻게 책임지려고...
차베스의 ‘실험’은 분명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신사회주의 혁명’이라는 말을 붙일만한 구석도 있다. 석유를 바탕으로 국민들 잘살게 하고 매판자본가들 몰아내고 미국에 맞서고... 아무튼 차베스라는 사람을 어떤 의미에서든 재평가하게 해준 것은 분명하다.
그동안에 외신들 보면서 차베스가 하는 일들, 기간산업 국유화를 비롯한 반자본주의적인 행보들과 사회주의 선언, 반미 발언 같은 것들이 너무 돌출적이고 쇼(show) 같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차베스의 ‘진심’이란 것이 의심스러웠다는 얘기다. 이 책에 나온 차베스의 모습은, 적어도 어떤 진심을 가지고 일관되게 일을 추진해가는 그런 사람의 모습이다. 그런 점을 ‘혁명가’라고 부르려면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군부 쿠데타 문제나 포퓰리즘적인 측면, 오로지 자원에 기댄 오지랖 넓은 외교와 ‘민주적 독재’ 같은 것들이 마음에 걸린다. 저자들은 차베스가 군부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던 것과 이후 군부를 끌어들이기 위한 행동들에 대해서도 ‘똑똑한 행동이었다’는 식으로 칭찬하고 심지어 “베네수엘라 군부는 원래 애국적인 전통이 있다”고 얘기를 하는데 이 부분은 좀 섬찟하다. 얼마전 차베스는 대통령 권한을 엄청나게 강화하는 법안들을 통과시켰는데 ‘고이면 썩는다’고 하는 이치가 베네수엘라에서만은 비껴가기를 바래야 하는 것인지.
그래도 아무튼,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시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기뻤다. 책 읽으면서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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