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아침을 열며] 죽는 10대, 죽이는 10대... 올 것이 왔을 뿐이다

딸기21 2011. 12. 19.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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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중학생 아들의 책상을 톱으로 썰었다고 했다. 성적이 좋지 않다고. 어떤 아이는 “아이팟과 함께 묻어달라”며 목숨을 끊었다. 넉 달 전 청주에서는 한 남학생이 차마 인용하기도 힘든 충격적인 행위를 했다. 

지난해에는 동남아의 국제학교에 다니던 한국 학생들이 귀국해 행인을 폭행, 살해했다. 그리고, 가혹한 폭행을 당하던 남학생이 친엄마를 살해했다. 언론에선 우리 사회의 성적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이 이어진다. 끔찍하긴 하지만, 충격적이라기보다는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다.
 
패륜 존속살해사건의 효시 격인 ‘박한상 사건’이 떠올랐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었다. 부유층 집안에서 자라 미국에 유학했던 학생이 도박에 빠져 집으로 다시 끌려온 뒤 부모를 살해했다. 부잣집 유학파 아들이 저지른 경악스러운 사건에 전국이 떠들썩했다. 그 몇 해 전부터 한참 회자된 것이 ‘오렌지족’이라는 말이었다. 

언론은 돈에 눈멀어 부모마저 죽인 패륜아를 탓했지만, 어른들이 쌓아올린 배금주의의 결과였다. 부모·자식 간 소통이 사라지고 성적과 압박만이 존재하는 현실을 마치 몰랐다는 듯 떠들지만, 최근의 사건들도 실은 올 것이 온 것뿐이다. 


Reviews of The red model II 1939 by Rene Magritte
 

 
아들에게 살해당한 엄마는 너무 극단적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닐지언정 비슷한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사람은 많다. 요즘엔 너나없이 이러니 새삼 이상하다 하는 게 더 희한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영어를 가르치려고 아이를 멀리 외국으로 떠나보내는 부모도 내 눈엔 이상하다.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분에게 전해들은 이야기인데, 아프리카의 소국 잠비아에도 한국 학생들이 있단다. 미국·유럽 대학에 들어갈 때 ‘스펙’이 되기 때문이란다. 

좀 무섭다. 그 아이들은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 단지 경제력이 우리보다 떨어진다는 이유로, 남의 나라를 ‘내 아이 스펙의 도구’로 보는 사람들이라니. 명문대에 보내겠다며 어린 아이를 지구 저편으로 떼어보내는 그 용감함이라니.
 
어떤 엄마는 초등학교 4학년 딸과 ‘학군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갔다. 그런 사람이 많다기에 그런가보다 하고 듣고 넘겼는데, 그 아이에겐 벌써 2번째 전학이었다. 초등학생을 놓고 학군 따지는 것도 우습지만, 아이의 친구관계 따위는 상관없다 생각하는 게 더 이상하다. 엄마는 아이에게 “친구들과 헤어지는 건 중요하지 않아”라고 했을까, 아니면 “친구들과 헤어지긴 싫겠지만, 학군이 더 중요해”라고 했을까. 

미국 대학에 다닐 수 있다는 이유로 아들을 미군에 집어넣는 부모들도 보았다.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이 없다고 비난하는 게 아니다. 미군이 ‘비영주권자 모병프로그램’까지 만들어 외국인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내보낼 군인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좋은 대학에 보낼 수 있다면 내 자식이 전쟁터에서 남을 죽여도 좋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초등학생 딸을 키우는 엄마다. “학원 안 보내요, 과외 안 시켜요” 하면 반응은 양갈래다. “아이가 좀 커봐라, 그런 소리 나오나.” “그래 너 잘났다, 혼자 소신 있어 좋겠다.” 돈 내고 줄넘기 배우는 학원이 등장한 지 10년이 넘었다는데 지금껏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 어떤 분은 충고한다. “그러다 나중에 아이가 공부 못하면 엄마 탓할 텐데, 어떻게 책임지려고.”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전선에 내몰리는 기분이다. 그냥 내 아이와 함께 우리 사회를 떠나 도망치고 싶어진다.


Rosa Blanca, Roberto Innocenti and Christophe Gallaz
 
 
경향신문 기획 ‘10대가 아프다’에 아이들의 목소리가 실렸다. 다들 ‘평범’하다. 학교 다니고 학원 다니는 ‘건전한’ 아이들인데도 엄마하고는 “밥 줘, 추워”란 말밖에 안 한다고 한다. 

신촌 골목에 모여든 가출 청소년들도 비슷하다. “돈이 없어요. 아빠가 다 도박으로 써버려서. 그래도 전 친구보다 아빠가 소중해요. 아빠한테 ‘철 좀 들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고 싶어요.” “엄마한테 소리치며 말 걸지 말라고 했지만 솔직히 엄마가 말을 많이 걸어줬으면 좋겠어요. 시비조로 말하지 말고요.” 

충격적인 얘기가 있을 줄 알았는데 읽다가 눈물만 났다. 괴물이 아니라 그냥 아이들일 뿐이다. 경쟁에 치여 말하는 법, 생각을 나누는 법, 애정을 표시하는 법을 잊어버린 어른들이 아이들을 괴롭히며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든다.
 
부모의 끔찍한 폭력이나 무책임한 방치가 아이를 내몬다고 생각하지만, 정도만 다를 뿐 이해하기 힘든 부모의 행위는 너무 많다. 그 행동들이 모여 엽기 사건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그런 일들을 ‘나와 상관없다’며 넘겨버릴 수 없는 건 어른들 스스로도 지금 아이들에게 저지르고 있는 짓을 알기 때문 아닐까. 

“어떤 엄마가 아들을 골프채로 때리며 성적을 올리라고 했대. 그래서 아들이 엄마를 죽였대. 넌 어떻게 생각하니?” 혹은 “너도 죽으면서 엄마, 아빠보다는 mp3 플레이어 생각할 거니?” 

부모가 되어서 자식에게 결코 물을 수 없는 질문들이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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