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공감] 머리 위에 B-2가 날고 F-22가 난다

딸기21 2013. 4. 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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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라는 이름을 들은 것은 10여년 전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면서 이 전투기를 동원했다고 했다. 이 전투기는 그 때도 화제였다. 축구장 절반에 이르는 엄청난 크기와 가격이 압도적이었다. 관리비용과 공간 문제 등등의 이유로 주기장을 설치하기 쉽지 않아 미국에서 아프간까지 ‘도시락 출퇴근’을 하며 폭격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어떤 신문은 그걸 재미난 화제 기사로 썼다. 아무튼 사진으로 본 B-2는 근사했다. 내가 좋아하는 큰 가오리 ‘만타레이’를 닮은 검은 삼각형에, 빛과 전파를 흡수한다는 무광택의 위압적인 외양.

 

이라크전 때 미군은 사상 최초로 B-2를 미국 밖으로 빼내 인도양의 디에고 가르시아 섬에 배치했다. 제공능력도 없는 탈레반이나 사담 후세인을 상대로 저 비싼 무기가 왜 필요했을까. 레이시온의 토마호크 미사일이 힌트를 던져줬다. 미국은 이라크에 열흘 동안에만 토마호크 700여기를 투하했다. 당시 이 미사일 연간 생산량이 100기 정도였다. 열흘새 7년치 재고를 턴 셈이다. 미군이 갖고 있던 토마호크의 3분의1을 이 때 썼다.



무기에 크게 관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남의 나라 전쟁 기사를 쓰느라 뉴스를 많이 접했다. U2 정찰기가 왜 이렇게 떨어지나 싶어 그 영욕의 역사를 찾아본 적도 있고, 소말리아 ‘블랙호크 다운’이 이라크에서 재연되는 걸 보며 블랙호크를 서핑해본 적도 있다. '아프리카의 뿔'에서 블랙호크를 떨어뜨린 RPG(롤플레잉게임이 아니라 로켓추진수류탄을 가리킨다)가 이라크 저항세력의 무기가 되고, 아프간에선 탈레반 반군들이 미군의 프레데터(무인 폭격기)에 맞서 IED(급조폭발물)을 만들어내는 걸 보며 '남을 해치기 위해 인간은 얼마나 많은 걸 고안해내는가' 씁쓸해했던 기억도 난다.


그런 무기들 중 가장 섬찟했던 것은 영화 <아바타>의 대사에 나오는 BLU-82 폭탄, 일명 데이지커터였다. 영화에는 전직 미군이 ‘나비족’에게 데이지커터를 쓰자 했다가 반대에 부딪치는 장면이 나온다. 한글 자막에는 ‘폭탄’이라 번역됐지만 데이지커터는 단순한 폭탄이 아니다. 폭탄 속 암모늄 질산염이 공기와 결합, 폭발하면서 반경 550m를 무산소 상태로 만드는 무기다. 


미국은 이라크전을 앞두고 이걸 개량해 모아브라는 걸 만들었다. 폭탄 이름은 'GBU-43 공중폭발대형폭탄'인데 ‘모든 폭탄의 어머니’라 해서 모아브(MOAB)라 불린다. 이라크들이 모아브의 버섯구름을 보고 놀라 핵폭탄인줄 알았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미국은 이 폭탄을 한번도 쓴 적 없다고 부인했다. 뒤에 러시아는 ‘모든 폭탄의 아버지(FOAB)’를 만들었다. 폭탄에 어머니 아버지를 붙이는 건 누구의 상상력일까.

 

B-2가 한반도 상공에서 훈련을 했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강력한 대응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한다. B-52, F-22도 한반도에서 훈련을 한단다. 누구 편이든 저런 무기가 오가는 건 두렵다. 토마호크를 실은 미국 핵잠수함을 언급한 시나리오도 있던데, 정말 전쟁이라도 난다면 레이시온의 10년치 재고가 한반도에 날아들려나. 미국 언론들은 백악관이 한반도 위협을 저평가하고 있다고 보도하는데 미국 무기들은 계속 이리로 온다. 


B-2는 일본 오키나와 카데나에서 날아왔다. F22도 오키나와에서 왔다.아프간·이라크전 때도 오키나와에서 미군 전투기가 출발했다. 오키나와 평화운동가들은 “우리 땅과 주민들을 죽이는 미군 기지가 남의 나라 무고한 이들을 죽이는 데에도 쓰이고 있다”며 분노한다. 영국령인 디에고 가르시아도 비슷하다. 호주 저널리스트 존 필저는 1960년대 영국이 이 섬을 미군 기지로 내주려고 흑인 주민들을 아프리카로 내쫓은 사실을 폭로한 바 있다. 타향에서 비참히 살아가던 섬 주민들은 “왜 남을 죽이는 데에 우리 고향을 이용하느냐”고 절규했다.

 

10년 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무렵 나는 이라크와 요르단을 방문했다. 내가 만난 아랍인들은 “미국이 북한도 폭격하면 어떡하느냐”며 남한의 나를 오히려 걱정해줬고, 한반도에서도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 보느냐고 물었다. 요즘 몇몇 신문들을 보면 남북한이 당장 전쟁을 치를 것 같다. 아니, 전쟁이 나기도 전부터 어마어마한 무기들이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데 우린 왜 보험이라도 든 것처럼 떠드는 걸까. 이 곳에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저런 무기들이 두렵고 혐오스럽다. 


무기 보도는 늘 선정적이어서, 언론은 경쟁하듯 더 센 걸 들먹이고 더 큰 공포를 조장한다. 이것이 본래 의미의 테러(공포)이고 테러의 정치학이다. 남북한과 미국이 모두 공모해 일종의 '공포정치'를 하고 있다고 하면 지나칠까. 물론 두려움을 퍼뜨리는 언론들도, 정부도 정작 전쟁이 날 것이라고는 믿지 않을 것이다. 다만 대중을 겁에 질리게 하면 되는 것일 뿐. 첨단무기로 도배된 신문의 뒷장을 넘기면 세금을 줄여줄테니 집을 사라는 뉴스가 나온다. 그로테스크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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