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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 없는 원숭이야, 겸손해져라

딸기21 2008. 10. 21.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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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 없는 원숭이 The Naked Ape

데즈먼드 모리스. 김석희. 문예춘추사



이상하게 모리스하고는 크게 인연이 없었는데, 이 책은 정말 <우연하게> 읽었다. 며칠 전 교보문고에 가서 꼼꼼이 책 읽는 동안 나도 뭐 하나 뒤적여봐야겠다, 하다가 어린이도서 근처에 있는 것이 하필 생물학 책이어서 이걸 손에 쥐게 됐다. 워낙 책 읽을 때 밑줄 쫙쫙 쳐가며 지저분하게 읽는지라 역시나 이 책에도 볼펜 줄을 그었다. 그러니 돈을 내는 수밖에. 여러 가지 번역으로 나와 있는데 모두 번역자가 쟁쟁하다(김석희, 김동광, 이충호). 나는 그 중에서 김석희 선생 번역으로 읽었다. 물론 번역은 깔끔했다. 문예춘추사에서 나온 것이어서 편집은 좀 구닥다리 같았지만.


저자는 현생 인류가 원숭이 종류에서 그저 조금 밖에 달라진 게 없다면서, 아마도 외계인이 우리를 본다면 우리가 동물들에 이름 붙이듯 우리의 외모를 보고 ‘털 없는 원숭이’라는 학명을 붙일 것이라고 말한다. 책은 ‘동물학적 관점에서 본 인간론’이다. 섹스/육아(교육)/창의성/싸움/먹기/치장/인간관계 등을 놓고 털 있는 원숭이와 털 없는 원숭이의 차이점, 같은 점을 분석한다. 모리스가 동물 전문가라서 ‘동물학적 관점’이라고 스스로 설명을 하긴 했는데 요즘 식으로 쓴다면 ‘진화심리학으로 본 인간’이라 할 수도 있겠다.


요는, 인간은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을 동물학적으로 분석했다는 것 때문에 처음 출간됐던 당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시대가 바뀐 탓인지 별로 충격적이진 않았다. 얼마 전 재러드 다이아몬드 <제3의 침팬지>를 읽었기 때문에 내게는 참신성이 떨어졌다는 이유도 있고. 그러나 이 책이 무려 1960년대에 나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모든 게 용서가 된다.


시대가 시대였던지라 모리스는 맬서스적 인구론 차원에서 지구적 위기에 접근했는데, 만일 요즘에 쓴 책이라면 기후변화 얘기가 바탕에 깔린 담론이 되지 않았을까. 그럼 역으로, 앞으로 40년 지나면 기후변화 담론도 ‘옛날 얘기’가 되려나? 제발 그럴 수 있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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