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동유럽 상상 여행

3. 문화권으로 본 동유럽

딸기21 2012. 5. 3.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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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문화권으로 본 동유럽


동유럽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이 지역을 움직인 문화권들을 이해해야겠지요. 문화는 여러 사회들과 그 사회들 간의 관계에 영향을 미칩니다. 모든 문명 안에는 수많은 사회들이 있고, 그들 각각의 문화가 있겠지요. 문명 안에서 이 사회들을 하나로 통합해주는 요인으로는 종교적 신념 혹은 보편적인 철학(때로는 이 두 가지의 결합) 등을 들 수 있습니다.


폴그레이브 동유럽사의 저자들은 지금 동유럽에서 세 가지 문명의 상호작용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가톨릭/신교로 구성된 서유럽 문명, 또 하나는 정교의 영향을 받아온 동유럽 문명, 나머지 하나는 이슬람 문명입니다. 


쉽게 이해하려면, 지질학에 나오는 판구조론을 떠올려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모든 문명에는 지정학적 핵심부가 있습니다. 이 핵심부는 그 문명의 본바탕을 굳건히 지키면서, 세계관을 다듬고 발전시켜 내부의 사회들을 유기적으로 결속시킵니다. 각 문명의 핵심부는 말하자면 세계 지도에 겹겹이 덧칠된 거대한 지각판인 셈입니다. 


문화의 지각판들이 만나는 '단층지대' 동유럽


동유럽에 초점을 맞추면 정교의 지각판이 서쪽·북서쪽의 서유럽 판과 남쪽·남동쪽의 이슬람 판 사이에 샌드위치가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각판들이 만나는 단층에서 지진이 일어나는 것처럼 문명의 판들이 만나는 단층에서도 비슷한 충돌이 일어납니다.



동유럽의 종교지도. http://blacksamcashinterestingthigs.blogspot.jp 에서 퍼왔는데, 어디에서 인용한 것인지 원래의 출처는 못 찾겠네요...


지도에서는 저렇게 나라별로, 색깔별로 칠하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인간 사회의 단층은 지질학 단층들처럼 지도에 말끔하게 표시할 수가 없는 법입니다. 수백 년에 걸쳐 사람들 사이에 상호작용이 일어나고, 그러면서 미시 문화들이 다른 문명권에 속한 지역들로 침투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위 지도에서 보이는 색깔들, 즉 인간 사회의 단층들은 넓은 지역과 긴 역사에 걸쳐 변하고 움직여 왔습니다. 땅 속의 단층들처럼 이 단층에서도 문명 판들의 충돌에 의한 격변과 동요가 일어나거나, 혹은 장차 일어날 가능성을 배태하게 되는 겁니다.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의 바냐 바시 Banya Bashi 모스크.

세르비아 산마르코스(San Marcos)에 있는 St. Petka 정교 교회당.


역사적으로 서유럽과 동유럽의 문명의 단층선은 발트 해에서 아드리아 해를 잇는 선이었습니다. 이 선은 폴란드·슬로바키아·헝가리·(서유럽권)와 벨라루스·우크라이나·루마니아의 트란실바니아 지방(동유럽권) 사이를 가르고 지나갑니다. 이 단층대는 남으로 내려가면서 크로아티아의 세르비아계 거주지역과 보스니아-헤르체고비아 전역, 몬테네그로와 세르비아 달마티아 지방을 덮습니다. 


세 문명권의 단층이 만나는 보스니아


그런데 동유럽과 이슬람 사이에는 발칸을 둘로 가로지르는 또 다른 단층선이 있습니다. 터키와 불가리아·그리스를 가르는 이 단층선은 얼핏 그리 길지 않아 보이지만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수 세기에 걸쳐 형성된 것입니다. 북서쪽으로 불가리아, 그리스, 마케도니아, 알바니아, 그리고 코소보를 덮고 있는 긴 낫처럼 생긴 이 단층선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이르러 동·서 유럽의 단층선과 겹쳐집니다. 동유럽의 세 문명권의 단층들이 이 지역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대충 단층선을 그려봤습니다. ^^;;


저 단층선을 따라 형성된 주민들 간의 갈등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때때로 격렬한 폭발로 이어졌습니다. 9세기 이래 트란실바니아와 바나트, 보이보디나, 슬라보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폴란드 동부 등지에서는 지진에 버금가는 충돌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단층선 중 가로로 보이는, 동유럽과 이슬람 사이의 두 번째 단층선은 14세기에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오스만 제국 시절 북쪽으로 이동해가는 경향을 보이다가(즉 오스만 세력의 팽창에 따라) 17세기 쯤 북상을 멈췄습니다. 그리고 20세기 초반에는 현재의 위치로 굳어졌습니다. 최근 충돌이 빚어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마케도니아, 코소보, 불가리아 사례에서 보이듯 발칸에서는 모든 지역에서 적어도 한번씩은 문화적 충돌로 인한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니 발칸을 '화약고'라고들 하는 거겠지요...


여러 문명권의 주변부들이 겹치는 곳, 그리하여... '화약고'


제가 미워하면서도(!) 꼭꼭 책을 찾아 읽게 되는 미국 우파 저널리스트 로버트 카플란은 <타타르로 가는 길>이라는 책을 통해 동유럽 여행을 펼쳐 보입니다. 카플란은 동유럽 옛소련권 국가들에서 출발해 중앙아시아로 가면서, '이슬람 단층의 주변부'를 조명합니다. 이 카플란이라는 인물은 조지 W 부시의 외교정책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_- 알려져 있는데요.


카플란의 주장은 이겁니다. 공산주의(과거)-이슬람(현재) 국가들이 찌질이로 남은 반면, 자본주의-기독교 국가들은 팍스아메리카나 시대를 맞아 새로 태어나고 있다는 것... 

"일찌감치 사회주의 글러먹었다는 사실 알아차리고 산업화에 매진한 헝가리는 지금 잘나가는 반면 루마니아는 지금도 지지리 못난 열등생이다" "기독교 아르메니아가 열심히 자본주의 적응 훈련을 하면서 나라를 가꾸고 다듬은 반면 그 동네 각종 '~스탄'들, 이슬람 나라들은 개판이다"


가서 제 눈으로 보지 않았으니... 정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세상 일이 그렇게 단순하고 단선적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것이겠지요. ㅎㅎㅎ


아무리 전쟁이 일어나고 끔찍한 인종학살이 펼쳐졌어도... 사진으로만 보면 참 고풍스럽고 알흠다운 보스니아. 여기는 모스타르.

여기는 보스니아의 모스타르 다리. 해마다 7월 마지막주에 다리에서 강으로 다이빙하는 다이빙 대회가 열리는데, 수백년 전통의 유서깊은 행사라고 합니다.



지리적으로는 동유럽에 있으면서 서유럽 문명권에 속한 민족으로는 알바니아의 일부 소수 집단, 크로아티아계, 체코계, 헝가리아계, 폴란드계, 슬로바키아계, 슬로베니아계를 들 수 있습니다. 알바니아의 또 다른 일부 집단, 불가리아계, 그리스계, 마케도니아계, 루마니아계, 세르비아계, 집시들과 블라흐족은 동유럽권에 해당됩니다.


이슬람 민족은 알바니아의 나머지 대부분, 보스니아계, 터키계, 포마크족(불가리아·그리스·마케도니아·세르비아 일대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 일부 집시와 블라흐족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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