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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과 육식- 내용도 번역도 엉망인 책

딸기21 2012. 5. 13.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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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과 육식 : 사육동물과 인간의 불편한 동거

리처드 W.불리엣 저 | 임옥희 역 | 알마



딱 내 취향 아닐까 생각했는데... 영 내용이 엄떠여. 


상업적 대량사육시대(저자는 이걸 '후기사육시대'라고 마치 대단한 시대구분이나 되듯이 '후기' 붙여 이름지었다)가 되면서 동물의 생식과 도축 같은 원초적이고 피튀기는 장면을 사람들 눈 앞에서 사라진 뒤로, 오히려 사람들은 폭력이나 폭력적 섹스에 탐닉하게 되었다? 그런데 상식선에서의 추론 정도- 즉 저자의 '상상'에 머물 뿐, 근거 자료라고 할 만한 게 없다. 


저자는 미국의 역사가이자 작가라고 한다. 문제의식은 재미있으나 그로 인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인지, 그 사회문화적 함의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뭐가 문제인지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이 포르노를 많이 봐서? 피터 싱어에게서 시작된 1970년대 이후의 동물 권리와 육식의 윤리 문제를 짚는 듯하다가 몇 페이지 넘기면 다른 주제로 훌쩍 넘어가 있다. 


후기사육시대의 한쪽에선 폭력/섹스의 이미지를 탐닉하는 한편 한쪽에선 눈에 보이지 않는 도축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거부하며 육식 자체에 문제제기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 책의 주제다. 하지만 동물의 대량사육/대량소비가 세계적인 추세인 반면에 육식에 대한 거부는 세계적인 추세가 아니라 구미권 일각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일 뿐이다. 


인도 자이나교도 같은 걸 예외로 한다면. 대량사육의 중심인 호주, 캐나다, 미국, 뉴질랜드 같은 나라가 다 영어권임을 강조하는데, 그게 영어권인 것과 관련 있을까? 그 지역의 지리적, 환경적 요인이 경제적 요인과 어떻게 맞아떨어졌느냐에 따라 결정되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정작 영국은 대량사육의 중심지는 아니다. 그렇다 보니 저자는 '영어권 다른 나라들과 다른 영국의 (고기에 대한) 문화적 차이'를 어거지로 부각시키지 않을 수 없었나보다. 좀 황당합니다... 


책 중간부분에선 갑자기 '당나귀의 성적 상징'에 대한 고찰이 나오지를 않나... 일본의 채식 문화를 얘기하면서 <모노노케 히메>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양을 쫓는 모험>을 분석한 부분 역시 황당했다. 그런 식의 분석은 다른 맥락에서 읽는다면 재미있겠지만 이 책에선 영 뜬금없었어여... 동물과의 공존, 그걸 꿈꾸는 상상력이 서구에서는 소진됐다는 식인데, 세상엔 '미국(영어권)과 동양(오리엔탈리즘의 그 오리엔트)'만 있는 게 아니지 않나요? 


번역은 엉망이다. '고대 이집트와 초기 이집트에서는... (중략) 후기 이집트에서는...' 이러면 누가 알아듣겠나. 더군다나 모두 고대 이집트 이야기인데. 이렇게 엄벙덤벙 문장 꼬이고 내용 불분명한 부분은 셀 수 없이 많다. '이스라엘계 아랍인'이 말이 됨둥? 이스라엘에 사는 아랍인이라든가, 아랍계 이스라엘인이라면 모를까. 이슬람 희생제의라 해놓고 괄호 열고 (feast of sacrifice)라고 해놨다. 이드 알 아드하를 찾아서 집어넣든가, 그 정도 성의가 없다면 영어를 아예 빼든가. 


그래도 저 정도는 애교다. '중국어 chu는 여섯 종류의 가축을 의미한다'고? 아마도 축(畜)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싶은데, 이보시오, 댁의 눈에는 'chu'가 중국어로 보입니까? 내 눈에는 영어 알파벳으로 보이는데?? '쿠파의 이라크 도시에서는'이라는 문장도 가관이다. '이라크 도시 쿠파에서는'이겠지, 설마. 얼핏 지금 생각나는 것만 이 정도다.


이 책의 편집자는 번역본 받아서 한번 읽어보기라도 했을까? 만일 그랬는데도 이 지경으로 내놨다면...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은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피터 싱어의 <죽음의 밥상>은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사육과 육식의 전과정에 문제제기를 하면서도 '육식주의의 사회문화적 함의'에까지 추리력을 발동한 것은 아니어서, 그런 부분에 대해 뭔가를 좀 읽고 싶었다. <사육과 육식>이 그런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했는데 말만 꺼내고 만 느낌이고... 


지금 찾아보니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라는 책이 나와 있네. 이거 한번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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