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이 나라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여행기라는 것을 (특히 인터넷에) 적어놓으면 사실 인기도 없고(남의 여행기라는 것 90%는 재미없지 않나 싶다) 느낌도 제대로 안 사는 것 같다. 이런저런 핑곗거리를 피해나가려면 느낌이 가장 생생하게 남아있는 순간, 여행 도중 짬날 때나 여행에서 다녀온 직후에 싱싱한 맛에 화르륵 올려버려야 하는 건데.
처음 시작은 타슈켄트였지만, 그저 항공기 도착지가 그곳이었을 뿐이다. 타슈켄트는 ‘중앙아시아의 수도’라고 우즈베크 사람들은 주장한다지만 사실 까자흐스탄의 알마티라던가 차라리 우즈베크의 사마르칸드가 그런 호칭에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 우즈베크에서의 이동 경로: 타슈켄트에서 무이낙으로
이번 여행의 경로는 우즈베크 동쪽 끝부분 타슈켄트에서 서쪽 끝부분 아랄해로 향하는 것이었다.
당초 목적지는 아랄해가 있는, 아니 '있었던' 무이낙이라는 곳으로 가는 것이었지만 국내선 항공기는 좋아하지 않는다. 위험하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지만(대략 1% 정도?) 자동차를 타야 '그곳'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저기는 양들이 있네, 꽤나 척박한 땅이로구나, 저기는 사람들이 물동이를 이고 가네, 여기는 소금땅이고 흙빛이 붉다, 위성안테나들 많이 달았구나, 이런 것들 보면서 가야 하는 것이 내 일이고 취향인 탓이다.
▶ 사마르칸드로 가는 침대 열차.
타슈켄트에 도착해서 밥 한끼 먹고 야간열차를 타고 사마르칸드로 바로 이동해갔다. 열차는 침대차였는데 방 한 칸에 침대 2개가 있다. 한국말을 꽤 잘하는 내 통역 벡조드군은 자리가 모자라 표 없이 그냥 타고 차장에게 뇌물을 주는 것으로 해결;;했다.
저쪽 침대 손님인 어느 아저씨와 벡조드,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6시간 걸려 천~천히, 사마르칸드로 향했다. 여자 손님이 떡하니 자리 차지하고 있으니 아저씨는 불편했던지 열차 출발하고 두 시간이 지나도록 식당칸에 버티며 객실에 들어오지를 못하다가 밤 10시 넘어 객실로 돌아와서는 그냥 나더러 편히 다리 뻗고 자라 한다. 예의바른 나는 당연히 사양했다. 첫인상에 이 사람들, 아직 자본주의 물 많이 들지 않고 인구밀도도 높지 않았던 탓인지 밀고 치대고 부대끼고 관광객들 지갑 털어내려 수 쓰고 하는 것 발달하지 않은 듯했다. 이런 좋은 느낌은 여행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타슈켄트는 1960년대 큰 지진으로 무너져 옛소련 여러 공화국들에서 지원 나와 새 건물들을 지었기 때문에 옛 모습이 많이 사라졌고 이 스타일 저 스타일 현대건축물들로 짜깁기 돼있다고 한다. 반면 사마르칸드는 옛것과 요즘것이 섞여 있는 곳이고, 더 서쪽으로 이동해 부하라로 가면 옛것들이 온전히 남아있다고 들었다.
사마르칸드에 도착해보니 새벽 2시가 다 되어 있었다. 벡조드가 자기 친구 집에 가서 묵자고 해서 사마르칸드 외곽에 있는 친구(이름을 몰라...흑흑) 집으로 갔다. 친구 할아버지가 사마르칸드의 높은 자리에 계셨던 분이고, 명문가라고 했다. 카펫 깔린 거실 가운데 커다란 초상화가 놓여있는 것과 집 생긴 모양을 보니 그렇게 보였다. 친구 부모님은 의사인데 예멘의 부유층들 상대로 일하면 돈을 많이 벌기 때문에 예멘을 오가신다고. 집은 크고 넓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지금껏 가본 집들 중에 면적으로 따지면 제일 넓은 집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소파에서 잠을 청했던 그 거실이 우리 집보다 더 크니깐...
▶ 여기는 벡조드 친구 집
▶ 여기는 내가 묵었던 거실.
아침에 일어나 마당에서 딴 포도와 벡조드 친구가 해준 계란빵(프렌치토스트) 먹고 집을 나섰다. 기후 탓인지 견과류가 많이 보이는데 호두 땅콩 건포도 같은 군것질거리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맘에 들어할만한 식단인 듯. 특이하게도 건조기후인데 서쪽으로 갈수록 양고기보다 쇠고기가 더 많았다. 하지만 사마르칸드 넌 빵은 맛이 없었다. 넌은 그냥 걸레빵의 본질에 충실하든가, 바삭하든가 해야 제맛인 것 같다.
이 나라는 자동차 90%가 대우 차다. 아마도 르망이 아닌가 싶은 현지 브랜드의 자동차와 티코가 대세인데, 이름도 모양도 대우자동차이지만 현지법인 ‘우즈 대우(UZ DAEWOO)’는 2005년 우즈베크 정부에 넘어갔으니 한국 자동차가 아닌 우즈베크 자동차다. 벡조드 친구 집을 나서 시내로 갈 때 다마스 미니버스를 타고 갔는데 이건 버스도 아니고 뭐냐고 부르냐니까 “다마스라고 부른다”고 한다. 호치키스나 셀로판테이프처럼, 우즈베크에는 ‘다마스’라는 대중교통이 있는 셈이다.
잔뜩 광고해놓고 저렇게 시답잖은 사진만 걸쳐놓으면 실망스러울터이니...
팬서비스 차원에서, 사마르칸드에서의 첫 관광지였던 구르 아미르의 모습을 올려놓는다. 1992년에야 독립공화국으로 재출발한 우즈베크는 요즘 새로운 '민족 정체성 만들기'가 한창이다. 그래서 내세우고 있는 것이 '티무르'다. 서양 사람들이 '절름발이 태멀레인'으로 불렀다는 잔인한 칸, 티무르 칸 말이다. 우즈베크의 간단하면서 복잡한 역사는 생략하고, 아무튼 우즈베크에는 세 곳에 티무르의 동상이 있단다. 수도인 타슈켄트, 사마르칸트, 그리고 티무르의 고향이라는 카르쉬라는 곳이다.
구르 아미르는 그 티무르의 무덤이다. 구르 아미르 가는 길에 티무르의 멋진 동상이 보였다. 동상 보면서 '아 참 잘생겼다!' 하면서 좋아한건 또 처음이었다.
▶ 티무르의 동상
▶ 구르 아미르의 돔
▶ 구르 아미르를 구경온 할아버지들.
▶ 뒤편에서 본 모습.
▶ 벽타일이예요. 도장처럼 생긴 마름모 안의 글자는 '무하마드'를 쓴 거랍니다.
▶ 건물 안에서 파는 그림과 장식품들.
▶ 아기자기한 공예품들... 이런거 정말정말 좋아하는데 돈도 없고... 무거울까봐... ㅠ.ㅠ
위구르 쪽에 호자(터키식으로 셰이크 같은 이슬람 지도자들 부르는 말, 혹은 그냥 지혜로운 노인에 대한 경칭 정도로도 쓰임) 나스르 앗딘(호자 나스레딘)이라는 사람이 있다. 재치와 익살로 지배계층, 기득권자, 비겁한 졸부 따위를 놀리는 할아버지인데, 저런 조각들 중에 당나귀를 탄 인물이 있다면 그 사람이다.
오오, 역시~~ |
휴가도 잘 다녀오셨드래요? ^^ |
와나, 돈 쓰는 만큼 보이는 것이 맞아. 몇번 얘기했지만, 배낭여행 하고 돌아와서 |
저 공예품들, 할아버지 인형들, 참 귀엽고 이쁜데, 하나라도 사오지.. ㅡ.ㅜ 아쉽겠다. |
호자라는 것은 그냥 '이슬람 성직자' 혹은 '어르신' 정도를 가리키는 말이야. |
문양들 너무 예쁘다. ㅠㅠ |
거기 아는 사장님이 세개 주셔서 두개는 부서 후배들 줬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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