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여행을 떠나다

자연 그대로에 가장 가까운 곳, 카미코치

딸기21 2012. 10. 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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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5일부터 2박3일 동안 나가노(長野)현 카미코치(上高地) 여행.

 

25일 금요일, 신주쿠에서 세 식구 만나 라면으로 저녁을 때우고, 기차를 타고 나가노현 마츠모토(松本)로.

마츠모토는 장수국가 일본에서도 장수촌으로 유명하다고 하네요. 나가노현의 산지들 시작되는 초입에 있어 날씨가 도쿄보다는 청량하더군요. 북알프스 들어가는 공기좋은 곳...

 

 

▶ 마츠모토 홈페이지 (한글로 돼 있어요)

카미코치 홈페이지 (일본어)

▶ [위키피디아] 카미코치 (영어) 

 

한밤중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세이후소(靜風莊) 여관으로 갔습니다. 유스호스텔이 아닌 B&B 여관이지만 일본에선 보기 드물게;; 글로벌화된 여관이더이다. 게스트하우스처럼 간단하게 조리를 해먹을 수 있는 시설도 있고, 안마당도 있었습니다. 주인 아주머니와 스탭 영어 잘하시고, 아주머니가 저녁엔 다도 시연도 해주는 모양이더군요. 우리는 잠만 자고 다음날 아침 식사 뒤 곧바로 출발해야 했지만...

 

 

26일 아침, 여관을 나와 택시를 타고 마츠모토 역으로 갔습니다. 일본에서 택시 타고 다니는 일은 거의 없지만 여기는 거리가 비교적 가까운데다 버스가 띄엄띄엄 오는 곳이어서요. 여관에서 자전거 대여 해주기 때문에 시간만 있었다면 근처의 마츠모토 성을 보았으련만, 아쉽게도 패스.

 

마츠모토 역에서 마츠모토전철(松本電鐵) 카미코치선 전차를 타고 신시마시마(新島島) 역으로 갔습니다. 이동 시간 30분 정도. 종점에서 종점까지라 해도 사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 하지만 전차가 워낙 천천히 달리는데다(걸어가는 수준 ^^) 촘촘히 역들이 들어서 있어서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신시마시마에서 버스로 갈아탔습니다. 어차피 교통편은 딱 정해져있는지라, 자그마한 역사에 내리면 개찰구 바로 옆에 버스 주차장이 있고 차장 언니가 안내를 해줍니다.


카미코치는 히다(飛騨) 산맥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일본 북알프스에 속하는 곳이죠. 북쪽으로는 높이 3,190 m의 호타카다케(穂高岳. '다케'는 산이라는 뜻)가 있고 남쪽으로는 활화산인 야케다케(焼岳)가 있습니다. 위키를 찾아보니 야케다케는 1915년 분출하면서 새로이 솟아오른 산이라고 하네요 ㅎㅎ 지금껏 제가 본 산 중 가장 새(new) 산일 수도 있었는데... 아쉽게도 찾아갔을 당시엔 이런 걸 몰라서 어느 방향인지 쳐다도 안 봤네요.


카미코치 초입에는 아즈사가와(梓川)라는 강이 흐르고, 다이쇼이케(大正池)라는 큰 호수가 있습니다. 이 호수 또한 야케다케가 분화할 때 생긴 거라고 합니다. 

 

1915년(大正4年)6월 6일, 야케다케(焼岳)의 분화로 광대한 토사에 의해 빠른 속도로 아즈사가와가 막혀버렸다. 단기간 동안 강물은 '가미코치 온천'까지 이르렀고, 이것이 다이쇼이케의 탄생이다. 그 후에도 토사의 유출은 계속되었고 현재는 당시의 10%이하의 규모가 되었다. 물에 잠겨 고사한 나무는 줄기만 남아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연못은 1927년(昭和2年)부터 가스미자와(霞沢) 발전소의 저수지로서 이용되고 있다. 자욱이 안개가 낀 날의 몽환적인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맑은 날에는 야케다케(焼岳)와 호타카(穂高) 연봉이 호수 면에 아름답게 비치고 물오리가 노는 온화함을 보인다. 가미코치의 입구에 위치해 방문객을 맞이하고 보내는 다이쇼이케. 돌아가는 길 여운이 남아 뒤돌아보고 싶은 경치가 그곳에 있다. [카미코치 홈페이지에서]

 

강 위에 캇파바시(かっぱ橋. 캇파는 일본 전설에 나오는 물귀신)가 있습니다. 거기서부터 트레킹을 해서 산길을 따라 걷는 겁니다.

 

 

산이라곤 통 다니지 않는 저도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길이 잘 되어 있고 전혀 험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등산화나 운동화도 아닌 스포츠샌들 같은 걸 신고 갔지 뭡니까. (다리가 삐긋 했는지 관절이 아프긴 했어요)

트레킹 코스 전체가 16km 정도라고 하는데, 우리 식구는 1박2일 동안 10km 정도 걸은 것 같네요.

 

다이쇼이케에서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타시로이케(田代池). 여기까지는 트레킹이라 할 것도 없이 그저 조금 걸어들어간 정도입니다만, 타시로이케의 풍경은 정말 좋습니다. 저희가 갔을 때엔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흑흑 실은 추웠습니다. 낮에는 살짝 반팔 혹은 얇은 긴팔 티셔츠, 하지만 밤엔... 밤엔... 멀리 보이는 산에는 눈이 덮여 있고, 계곡의 우리는 폴라플리스 점퍼로도 한기를 가리지 못해 덜덜 떨었죠.

 

암튼 타시로이케는 봄이 완전히 오지 않았거나 이제 막 봄이 오기 시작하는 풍경이었고요. 나중에 인터넷에서 여기의 한 여름 사진을 보니 못알아보게 다르더라고요!

 


타시로이케를 포함해, 그 위편으로는 나무 데크로 길이 깔려 있습니다. 타케자와(岳沢)라 부르는 늪지대라서 길을 그렇게 올려서 깔아놨네요. 

 

캇파바시 쪽이 가장 번화한(?) 곳이고, 너나 없이 사진 박는 핫포스트입니다. 1927년에 일본의 문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 龍之介)가 <캇파>라는 소설을 발표하면서 이 곳이 일본 전역에 알려지고 캇파 붐이 일었다고 합니다. (기사를 쓰는 것도 아닌데 대체 왜 이런 건 찾아보고 있는 건지 ㅠ.ㅠ)

 

 

(영어로 번역돼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도 출판돼 나왔네요. 책표지의 '河童'가 바로 물에 사는 요괴 '캇파'를 뜻합니다.)

 

캇파바시 근처에 버스터미널이 제법 크게 자리잡고 있는데, 저희는 이미 아래쪽 다이쇼이케에서 하차해 걸어올라오던 중... 어쨌든 다른 곳이 없으니, 터미널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본격 트레킹(아무래도 '산행'이라 하기엔 너무 평탄한 길이어서;;). 강변을 떠나 산길로 올라갑니다. 여전히 길은 훌륭하지만 이제부턴 자갈길. 가다가 고사목이 늘어선 연못을 구경했습니다. 사진을 많이 찍는다고 찍었는데, 집에 와서 열어보니... 그 환상적인 경치의 100만분의 1도 안 나왔을 뿐 아니라, 뭔지 구분도 안 가는 풍경이더군요 -_- 암튼 고요하고 수상쩍은 연못에, 하얀 고사목들이 뿌리를 박고 서 있는 곳이었습니다...

 

우리 트레킹의 핵심은 묘진이케(明神池)! 트레킹 코스의 가장 높은 부분을 지나 한참을 내려왔습니다. 호타카진자(穂高神社)라는 큰 신사의 오쿠미야(奧宮. 신사에 속해 있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일종의 별당 격입니다)가 있고, 거기서 돈 내고 들어가면 묘진이케라는 연못이 있습니다. 사진으로라도 구경해보세요. 실물은 사진보다 1000만 배 감동적입니다. 넘 좋아서 실은 다음날 다시 한번 들렀답니다. ㅎㅎ

 

 

묘진이케에서 나온 뒤 원숭이 여러마리가 노닐던 묘진바시(明神橋)를 건너, 우리가 묵기로 한 '묘진관'이라는 여관으로.

 

가는 길에 꽃구경 하는 아주머니 일행을 만났습니다. 일본 사람들, 남자건 여자건 참 화초에 관심이 많아죠. 대부분 단독주택에 살면서 고양이 이마만한 것일지언정 자기 집 마당을 가꾸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쇼핑몰이나 전철역마다 꽃집도 무척 많고요. 아주머니들은 꽃 이름을 많이 알아서, 옹기종기 꽃구경하면서 이건 무슨 꽃, 저건 무슨 꽃 대화를 나누더군요. 우린 꽃 이름을 하나도 몰라여... 일본 꽃은 물론이고 한국 꽃이나 나무도 모르는 무식한 가족... ㅋㅋ 이런 곳에 갈 때마다 '꽃이름 나무이름 잘 알면 을매나 좋을까' 해보지만... 

 

묘진관은 1층에 매점 겸 식당과 프론트가 있는 휴게소 분위기의 산장입니다. 마침 이 날 묵은 분들 중에 천문동호회 아저씨들이 계셔서, 그분들 천체망원경으로 하늘 구경 잘 했습니다. 달도 보고 화성도 보고 토성도 보고... 몇해전 한국에서 중미산 천문대 갔을 때 보았던 것보다 이분들이 들고 다니는 휴대용 천체망원경이 훨씬 잘 보이더군요 -_- 달의 분화구를 생생하게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은... 너무나도 추웠습니다. 일본 집들, 홋카이도 아니면 난방이 없습니다. 하지만 여긴 넘 심했어요... 방에 올라가니 엄청 두꺼운 담요와 함께 이부자리를 깔아놓으셨더라고요. 그 담요를 보는 순간 "헉! 얼마나 춥길래!" 하는 비명이 나왔을 정도. 그날 밤 추워서 어찌나 떨었던지. 새벽에 호카타 봉우리 아침노을 멋지다 해서 일부러 깼는데 멋도 없었고.. ㅠ.ㅠ

 

하도 추워서 잠을 완전히 설쳤습니다. 그리고 7시에 사장님이 준비해주신 아침 식사를 하고 8시엔 다시 출발. 

 

 

어제 온 길의 반대편, 토쿠사와 쪽으로 산길을 걸었습니다. 토쿠사와는 원래 말이나 소를 방목하던 곳이었따는데, 1934년부터 국립공원으로 통합이 되었고 지금은 캠핑장 정도만 남아 있습니다. 여기도 그렇고 묘진관도 그렇고, 연중 거의 절반은 추워서 사람이 없을 것 같아요. 카미코치는 4~10월에만 개방한다고 들었거든요. 그 외의 겨울철엔 통행 금지. 

심지어 곰도 나타난대요. 다이쇼이케에서 올라오는 길목부터 곳곳 표지판에 '몇월 몇일 곰 목격' 안내문이 붙어있고, 어떤 이들은 곰 쫓는 방울을 등산가방이나 점퍼에 달고 다니더군요.

 

토쿠사와 캠핑장까지 갔다가 되돌아와서 묘진관 지나, 어제 걷지 않은 길 타고 캇파바시 터미널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올 때처럼 신시마시마 역에서 느릿느릿 전차를 타고 마츠모토 역으로, 다시 기차타고 신주쿠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시원한 공기 잘 마시고 잘 걸은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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