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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대선, 라프산자니도 '후보 탈락'

딸기21 2013. 5. 22.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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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이란 대선의 계절이 다가왔습니다... 이란 대선에 대한 기사를 쓰는 게 이번이 네번째. 이번엔 좀 현장에 가서 '보면서' 쓰고 싶은데 말입니다 ㅠ.ㅠ


다음달 대선을 앞둔 이란에서 무소불위의 최고권력기구인 혁명수호위원회가 유력후보 2명의 출마를 아예 금지시켜버렸습니다. 현대통령이 밀어주는 보수파 세속정치인과, 이미 대통령을 두 차례 지낸 중도·개혁파의 대부를 선거에 출마조차 할 수 없게 만든 겁니다.


[프레스TV] GC approves eight hopefuls for June 14 presidential vote: Report


대선후보 자격을 심사할 권한을 가진 혁명수호위는 21일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대통령(78)과 에스판디아르 라힘 마샤에이 대통령 비서실장(54)가 적합성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다며 오는 6월 14일 치러질 대선 후보에서 제외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혁명수호위가 통과시킨 후보들은 서방과의 핵협상을 맡았던 사에드 잘릴리와 하산 로하니, 전 외무장관 아크바르 벨라야티, 정예부대인 혁명수비군 사령관 출신의 모흐센 레자이 등 8명으로 보수파 일색입니다.

 

2013 이란 대선 후보 명단


골람-알리 하다드-아델, 국회의원


사에드 잘릴리, 최고국가안보위원회(SNSC) 위원장 겸 핵협상 대표

(위 사진으로 보면 인물 좋지요? 이상한 표정 지을 때도 많아여...)


모흐센 레자이, 권익위원회 위원장, 전 혁명수비군 사령관

하산 로하니, 권익위원회 전략연구소장 겸 핵협상 대표

모하마드-레자 아레프, 전 제1부통령 겸 기술부 장관

모하마드-바케르 칼리바프, 테헤란 시장

모하마드 가라지, 전 통신부 장관

알리-아크바르 벨라야티, 전 외무장관


(으으... 이 모하마드들의 행렬....)


특히 라프산자니가 탈락된 것은 이란 안팎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1989~97년 대통령을 지낸 라프산자니는 이란 현대정치사의 산 증인으로, 보-혁 갈등이 극심한 이란에서 기성권력과 개혁파 사이의 균형추 역할을 해왔습니다. 


사진 PRESS TV / 어쩐지 정형돈 같아요... 


아야툴라 호메이니의 이슬람혁명에 함께한 성직자로, 혁명 이듬해인 1980년부터 1989년까지 마즐리스(의회) 의장을 지냈고, 1989년 호메이니가 숨진 뒤 곧바로 대선에 출마해 1997년까지 8년간 집권했습니다. 2기 연임하는 동안 시장중시 경제정책을 펼쳤으며 호메이니 시절 어긋난 아랍권과의 관계를 풀려 애썼습니다. (워낙 능구렁이같은 정치인이라... 재산에 얽힌 소문도 물론 끊이지 않지요.)


[오들오들] 이란 지도자들의 물고 물리는 악연 

[오들오들] 막후의 1인자, 하메네이 


그가 퇴임한 뒤 8년간 개혁파인 모하마드 하타미가 집권하면서 이란에서는 개혁이 대세가 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2005년과 2009년 대선에서 강경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연달아 집권하면서 개혁파는 철퇴를 맞았지요. 특히 2009년 대선 부정선거 시위로 촉발된 유혈사태 이후 아마디네자드 정권의 고강도 탄압에 이란의 야당·언론 등 개혁파는 거의 뿌리가 뽑힌 상태입니다. (두달 전 이란 전문가이신 외대 유달승 교수님 모시고 세미나를 했는데, 개혁파 중에선 딱히 대선 후보로 눈에 띄는 사람이 없다고 하시더군요)


중도·온건파로 분류되는 라프산자니가 이번 대선에 출마를 선언하자 개혁을 지지하는 이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습니다. 하지만 혁명수호위는 이미 두 차례 대통령을 지낸 그마저 용인할 수 없다며 내친 겁니다.

혁명수호위의 아바스 알리 카드호다이 대변인은 라프산자니를 탈락시킨 구체적인 이유는 설명하지 않은 채 “78세 고령이라 대통령 직무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프레스TV는 혁명수호위가 “헌법과 선거법을 기준으로 후보자격을 정했다”는 공식입장만을 내놨다고 보도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혁명의 창시자마저 공직에서 배제돼 이란인들에게 충격을 안겼다”고 했네요. 


라프산자니가 역전노장이기는 하지만 혁명수호위의 결정을 뒤엎을 힘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란의 개혁파와 중도파는 라프산자니를 고리로 느슨한 연대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번 일로 라프산자니의 정치력이 소멸되면 정권교체를 위한 연대도 끊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선후보 8명 중 유일하게 개혁파로 분류되는 모하마드-레자 아레프는 공학자·교수 출신으로 기술장관을 지냈으나 정치적 구심이 되기엔 약해 보입니다. 하산 로하니의 경우 라프산자니와 긴밀한 사이여서 중도파로 분류되지만 '개혁' 성향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고요.


사진 PRESS TV / 외모로는 역시 이란 정치인들은 세계 최고이지 말입니다... 


이글과는 별 상관 없는... 다만 훈훈한 외모 때문에 다시 떠올린 지난 대선의 개혁파 후보 무사비.
외모로 정치하는 건 아니지만, OOO처럼 생긴 사람은 정말 싫어요... 


혁명수호위는 라프산자니 뿐 아니라, 아마디네자드 현대통령이 사실상 후계자로 지목한 마샤에이도 탈락시켰습니다. 

아마디네자드는 보수강경파이긴 하지만 최고종교지도자 아야툴라 하메네이가 이끄는 성직자들, 즉 ‘종교권력’에 맞서 자신만의 권력체제를 구축해왔습니다. 이슬람 신정(神政)의 수호자 격인 하메네이는 아마디네자드가 권력을 세속화한다며 견제해왔고요. 

프레스TV는 마샤에이가 혁명수호위에 재심을 요청할 것이라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아마디네자드 진영을 개혁파 못잖게 적대시하는 보수파 성직자들이 이를 받아들여줄지는 미지수입니다. 

혁명수호위는 최근 여성들의 대선 출마를 허용하라는 요구도 거부했습니다. (이란에서는 여성들의 활동이 제한돼있지만 1990년대에 이미 여성부통령이 나온 바 있고, 지난 대선에서도 여성 유권자들이 개혁파 바람을 주도했습니다.)


BBC는 “실용주의자인 라프산자니조차 제외시켰다는 것은 이란 체제의 취약점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리비아나 이집트에서와 같은 민중혁명이 이란에서 일어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이란의 복잡한 정치구조.- 설명을 보시려면 여기로.



이란은 신정과 세속정치가 서로 맞물리며 견제하는 복잡한 정치구조를 갖고 있으며, 최고종교지도자도 대통령도 독단으로 절대권력을 휘두르지 못하게 돼 있습니다. 미국 등등은 전제군주 국가인 사우디나 선거가 사실상 없었던 이집트의 무바라크 옛 정권은 놔둔 채 이란을 '독재국가'라 욕합니다만..  4년마다 치러지는 대선에서 과거 오랜기간 중도·개혁파가 집권했던 데에서 보이듯 나름 절차적 민주주의를 자랑합니다. 


일각에선 아마디네자드가 선거 일정 자체를 뒤집어엎고 혁명수호위와 정면대결할 것이란 얘기도 나오지만 역시 가능성은 낮아보이네요. 알자지라방송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후보심사라는 절차를 이용해 자신의 국내외 정책에 맞서는 자들을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 것”이라며 현 상황에서는 보수파 중 그나마 서방에 알려져 있는 사에드 잘릴리 핵협상 대표가 유력후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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