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민중의 수호자’였던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독재정권의 방패로 전락하는 것일까. 헤즈볼라 지도자가 시리아 내전에 사실상 전면 개입하겠다고 선언했다. 헤즈볼라의 ‘정치적 자살’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는가 하면, 이면의 정치적 계산을 놓고 추측이 분분하다.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25일 시리아 내전이 “완전히 새로운 단계를 맞고 있다”며 “우리의 전쟁이고 우리에게 달렸다”고 말했다. 나스랄라의 이날 연설은 헤즈볼라가 운영하는 마나르TV로 중계됐다.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은 지난주부터 다마스쿠스 북쪽 쿠사이르 탈환 작전을 벌이고 있으며, 이곳 전투의 주축이 헤즈볼라 병사들이다. 레바논 일간 데일리스타는 다마스쿠스에서도 헤즈볼라가 반정부군과 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나스랄라의 연설 직후 헤즈볼라의 근거지인 베이루트 남부에 로켓포 2발이 떨어졌다. 시리아 반정부군의 공격으로 추정된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침공에 맞서 1982년 결성됐으며, 레바논 남동부 베카계곡 일대를 장악하고 있다. 2005년 ‘백향목 혁명’ 뒤 치러진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고, 이듬해에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물리쳐 아랍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헤즈볼라와 알 아사드 정권은 ‘순망치한’의 관계다. 시리아에 친미정권이 들어서면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과의 싸움에서 불리한 위치가 될 것이며, 존망 위기에 몰릴 수도 있다. 나스랄라는 시리아 반정부군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지지를 받고 있다며 개입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알자지라 월드] Lebanon: Sibling of Syria
하지만 알 아사드 정권과 운명공동체가 되겠다는 헤즈볼라의 선택은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다. 팔레스타인 편에서 이스라엘에 맞서는 아랍 민중의 투사를 자임해왔는데 ‘독재 비호세력’으로 이미지가 추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헤즈볼라(신의 당)가 헤즈볼샤이탄(악마의 당)이 됐다는 비아냥이 벌써 나온다.
레바논 내 반발도 만만찮다. 2011년까지 2년간 총리를 지낸 유력 정치인 사아드 하리리는 “헤즈볼라는 쿠사이르 전투에 개입하면서 정치적·군사적 자살을 선언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리리 측을 비롯해 레바논의 여러 정파는 알 아사드 정권에 강력 반대해왔다. 나스랄라는 시리아 반정부군에 이슬람 수니 극단세력이 들어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하리리는 “나스랄라야말로 종파주의를 부추기고 있다”고 반박했다.
반면 나스랄라의 선언을 고도의 정치술로 보는 시각도 있다. 향후 시리아 권력이양 협상에서 알 아사드 측을 유리하게 만들어주기 위한 것일 뿐, 주력부대를 보낼 리가 없다는 것이다.
나스랄라는 연설에서 친서방파 미셸 술레이만 대통령이 이끄는 레바논 정부가 “이스라엘의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반이스라엘 투쟁으로 전선을 이동시킴으로써 헤즈볼라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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