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뒤늦고 속좁은 네덜란드의 사과... "인도네시아인들 처형 사과하겠다"

딸기21 2013. 9. 1.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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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를 구성하고 있는 네 개의 주요 섬 중 하나인 술라웨시 남부에서 1946년부터 1947년 사이에 가혹한 학살이 벌어졌습니다. 일본군에 잠시 점령돼 있던 옛 식민지를 되찾은 네덜란드군이 남술라웨시의 독립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대대적인 군사작전에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네덜란드는 남술라웨시의 주요부족인 부기족의 준자치국가를 세우게 한 뒤 1816년 이래로 사실상의 식민통치를 해왔습니다. 그러다가 20세기 들어서는 아예 직접통치로 방향을 바꾸고, 네덜란드령 동인도라는 이름으로 통합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이 잠시 인도네시아를 점령했으나 1945년 일본군의 패망으로 다시 네덜란드 점령세력이 복귀하게 됩니다. 


자바 섬에서 벌어진 라와게데 학살 당시의 모습


당시 인도네시아의 정치적 중심인 자바 섬에서는 수카르노가 이끄는 공화당이 이미 혁명정부를 세우고 네덜란드 세력을 물리쳤으나 술라웨시는 여전히 네덜란드 점령 하에 있었습니다. 자바섬 공화당 정부의 지원을 속에 술라웨시에서도 독립혁명운동이 거세지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라이몬트 베스테를링 장군이 이끄는 네덜란드동인도군(KNIL)은 1946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석달 동안 무자비한 진압작전을 벌였습니다. ‘남술라웨시 작전’이라 불리는 이 군사작전에서 베스테를링은 특수부대(DST)를 동원, 게릴라 지휘관들을 붙잡는대로 처형하는 전술을 썼습니다. 이런 즉결처형 보복작전을 가리키는 ‘베스테를링 방식 Westerling Method’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였습니다. 


한 마을을 포위한 뒤 성인 남성들을 모아놓고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학살해버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11차례 학살이 벌어졌습니다. 베스테를링의 진압 작전은 네덜란드 내에서도 문제가 돼 정부가 조사에 나섰고, 1948년 11월 베스테를링은 해임됐습니다.


잠시 인도네시아에 대해... 크게 수마트라, 칼리만탄(보르네오), 자바, 술라웨시, 이리안자야의 5개 지역으로 돼 있습니다.
자바 동쪽, 티모르 섬(동쪽은 동티모르로 독립했지요) 사이에 누사 텅가라 섬들이 있고, 
술라웨시와 이리안자야 사이에 말루쿠 제도(옛날 식으로는 몰루카 제도)가 있지요.
이리안자야는 뉴기니 섬의 서부. 동쪽은 파푸아뉴기니라는 또다른 독립국입니다.


베스테를링 군대에 학살당한 사람의 숫자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습니다. 당시 인도네시아 공화당 정부는 4만명이 숨졌다고 주장했고, 남술라웨시 학살 추모비는 ‘모누멘 코르반 40000’으로 공식 명명됐습니다. 하지만 네덜란드 학자들과 후대의 조사에 따르면 3000~4000명 정도가 베스테를링 군대와 친네덜란드 경찰조직·민병대 등에 의해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네덜란드 군에 의한 참상은 술라웨시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바 서부, 오늘날의 발롱사리 부근에 있는 라와게데 마을에서도 1947년 12월 학살이 벌어졌습니다. 공화당 독립운동 지도자인 루카스 쿠스타리오의 은신처를 당국에 신고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마을 남성 431명이 한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듬해 1월 유엔은 “치밀하고 무자비한 살해극이었다”는 보고서를 내놨습니다.


라와게데에서 학살당한 사람들의 묘지.


이 학살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목소리를 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61년이 지난 2008년 9월, 라와게데 사건 피해자 유족 10명 네덜란드 정부에 공식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네덜란드 정부는 “심히 후회한다(deeply regrets)”면서도 공소시효가 지난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듬해 12월 유족들은 네덜란드 법원에 정부를 제소했습니다. 판결이 나온 것은 2011년 9월. 법원은 “이런 전쟁범죄에는 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며 네덜란드 정부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정부는 유족들과 협상해 사망자 1인에 대해 2만유로씩을 유족들에게 지급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 해 12월 인도네시아 주재 네덜란드 대사가 공식 사과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라와게데 보상금 지급은 계속 미뤄졌고, 지난달에야 라와게데가 아닌 남술라웨시 학살 피해자 유족 10명에게 2만유로씩 전달됐습니다.


2011년, 라와게데 학살 추모관을 찾은 인도네시아 주재 네덜란드 대사.


정부의 무책임한 행태에, 네덜란드 언론들도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마르크 뤼테 총리는 뒤늦게 지난달 30일에야 “1945년부터 1949년 사이에 네덜란드 군에 의해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처형들을 공식 사과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남술라웨시와 라와게데를 비롯해, 인도네시아 곳곳에서 벌어진 처형 사건들에 대해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를 하겠다는 뜻을 밝힌 겁니다.


인도네시아 주재 네덜란드 대사가 오는 12일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학살 추모행사에 참석해 사과할 예정이라고 뤼테 총리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네덜란드군이 인도네시아에서 벌인 모든 작전에 대해 사과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사과의 범위를 ‘처형’으로 한정지었습니다. AFP통신은 “60여년이 지났지만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에서 전시에 벌인 행동들은 여전히 두 나라 간 미묘한 주제로 남아 있다”고 전했습니다.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 학살에 대해 보여준 모습은 영국이 케냐 마우마우 봉기 진압 피해자들을 대한 방식과 너무나도 똑같습니다. 


하긴... 우린 광주학살조차 부정하려는 자들을 보고 있는 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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