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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로빈후드

딸기21 2014. 11. 30.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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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로빈후드- 뉴욕에서 몬드라곤까지, 지구를 바꾸는 도시혁명가들

박용남. 서해문집. 11/28



지금 국제사회에서는 자동차 정점 이론(Peak car)을 둘러싼 논쟁이 아주 거세다. 1인당 자동차 주행거리(1년 동안의 자동차 주행거리를 인구 수로 나눈 것)가 적어도 8개 주요 선진국에서 정점에 도달했다는 가설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는 자동차 주행거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보유 대수도 급증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자동차 인프라를 계속 확대하는 방식으로 도시를 관리하고 있다.(16쪽)


투자회사 어드바이저 퍼스펙티브의 더그 쇼트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내 주행거리가 2005년 정점을 찍은 뒤 지속적으로 하락해 2013년 4월까지 약 9% 하락했다." 이는 1995년 1월 수치와 비슷한 수준이다. (17쪽) 


미국 드렉셀대학교 사회학 교수 미미 쉘러는 "우리는 지금 장기적인 문화변동을 목격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인터넷 덕에) 굳이 직접 운전을 해서 이동할 필요가 없어지고, 도심 재개발 정책에 따라 교외 지역이 점차 줄어든 것, 차를 함께 타도록 도와주는 이동전화와 카풀 앱의 출시 및 이용증가 등을 주요한 이유들로 꼽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예로 뉴욕 시가 최근 도입한 공용자전거 프로그램, 교량 및 터널 통행세 급등, 카셰어링 확대 등을 들고 있다. (19쪽) 


이런 변화를 감지한 자동차 회사들은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포드는 자동차 대신 '이동수단(Mobility)' 회사로서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있다. 이동수단을 자동차에 국한시키지 않고 시대 변화에 맞게 외연을 최대한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20쪽)


파리의 조르주 퐁피두 고속도로와 보고타의 인너링 고속도로 외에도 뉴욕 웨스트 사이드 하이웨이, 샌프란시스코 엠바카데로 프리웨이, 포틀랜드 하버드라이브 대로, 보스턴 빅디그, 독일 베를린 A-100터널, 우리나라의 청계천 등 도시 안에서 고가와 하상도로 같은 주요 간선도로가 사라지거나 변형되는 것이 일상적인 풍경처럼 자리잡고 있다. (50쪽)


엔리케 페냐로사 전 보고타 시장이 말했듯 "모든 시민들이 법 앞에 평등하다면 100명이나 150명을 태우는 버스는 나홀로 승용차보다 150배 이상의 도로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다. 도로 공간의 재분배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이므로 우리의 의지에 따라서 도시는 사회정의가 구현되는 장소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51쪽)


"수 세대가 살 환경을 창조하는 데 참가한 우리 모두의 과업은 단순히 능률적인 도시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환경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그는 그 가운데서도 특히 어린이들의 행복을 위한 이상적인 환경조성이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신은 우리를 걷는 동물, 즉 보행자로 만들었지요. 물고기가 헤엄치고, 새가 날고, 사슴이 뛸 필요가 있는 것처럼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 걸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그의 머릿속에는 자동차가 중심이 되는 도시가 아닌, 걷고 뛸 수 있는 도시가 시민들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신앙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그래서 페냐로사는 대부분의 자치단체장들이 성서처럼 받드는 비용·편익 분석보다는 경제적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들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 (62쪽)

"교통은 개발도상국 사회가 직면한 다른 문제들과는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경제발전이 되면 더 악화되기 때문이지요. 하수도 설비, 교육 등 다른 도시 문제들은 경제성장과 더불어 개선되지만 교통은 악화됩니다. 따라서 교통개혁은 선진국 도시에서보다 제3세계 도시에 적합한 도시 모델의 핵심이라 볼 수 있습니다." (63쪽)

페냐로사는 제3세계 도시들이 앞으로 경제발전을 한다 해도 유럽의 역사 깊은 도시들이 가진 위대한 건축 유산은 결코 갖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보고타의 저소득과 그 결과인 낮은 자동차 대중화, 그리고 고속도로의 부재와 빈발하는 범죄, 낮은 지가가 주변 지역의 교외개발을 촉진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토지가 잘 보존돼 있다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었다. (65쪽)

보고타에는 1982년부터 시작된 시클로비아(Ciclovia)라는 전통이 있다. 일요일(국경일 포함)마다 7시간 동안 주요 간선도로에서 자동차 통행을 금지하고 보행자는 물론 자전거 이용자, 인라인스케이트 이용자 등에게 도로를 개방하는 프로그램이다. 현재는 시클로비아가 이전과 비교해 2배가 증가한 120km에 이르는데, 주말마다 150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나와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 타기, 달리기, 모임 등을 하면서 다른 도시에서는 맛볼 수 없는 독특한 삶을 만끽하고 있다. 이 시클로비아 사업은 세계보건기구에서 공식적으로 권고하는 주요 공중보건 사업의 하나다. (70~71쪽)

(보고타의 간선버스 체제인) 트랜스밀레니오 시스템은 고용창출과 성평등에도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 2009년에 3만9869명의 직접고용과 5만5817명의 간접고용을 창출했는데, 이 과정에서 미혼모 같은 취약 사회집단의 고용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교통 부문은 남성을 많이 고용하지만 트랜스밀레니오 시스템은 전체 노동력 가운데 24%가 여성이다. 그 중 62%가 미혼모였고, 버스요금 징수와 세차에도 여성이 각각 70%와 43% 참여하고 있다. (85쪽)

1970년대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도널드 애플야드가 수행한 유명한 연구가 있다. 연구는 도로교통이 지역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했다. 통행량이 적은 한산한 가로에서는 한 사람당 이웃 친구 3.0명, 아는 사람 6.3명과 사회적 접촉이 이루어지는 반면 통행량이 중간 정도인 가로에서는 한 사람당 1.3명의 이웃 친구, 4.1명의 아는 사람과 접촉을 하고, 통행량이 많은 복잡한 가로에서는 한 사람당 0.9명의 이웃 친구와 3.1명의 아는 사람만을 만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126쪽)

자동차가 없을 때는 마을의 길이 놀이 공간이자 사회적 교류의 장으로 기능하다가, 자동차가 한 때씩 점진적으로 증가하면서 사람들의 영향권은 서서히 집 앞 인도로 후퇴하고, 급기야는 집 안으로 들어가 나올 수 없을 정도에 이르게 된다. 결국 자동차가 야기하는 이러한 인간 소외와 공동체 해체를 개선하거나 예방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켄 리빙스턴과 베르트랑 들라노에 같이 개혁적인 자치단체장이 교통개혁을 추진한 런던과 파리의 경우 통행제한과 대중교통 육성이 도시의 거리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변화의 열쇠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127쪽)

벨루오리존치는 기아와 영양실조가 식량부족보다는 빈곤과 결부된 식량 접근의 결여 때문이라고 보고, 식량을 상품이 아니라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필요재로 인식한다. 무엇보다 벨루오리존치의 식량보장 프로그램은 시민들의 기아와 영양실조를 시장의 실패로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식량보장 프로젝트에 참여한 아드리아나 아라냐가 "사람들이 가난으로 인해 시장에서 소비자가 될 수 없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시민이다. 이에 대비해 시장 실패를 바로잡는 것은 시 정부의 의무다"라고 말한 것에도 잘 드러나고 있다. (161쪽)

민중식당(Restaurante Popular)은 벨루오리존치 시의 직영식당으로, 시민들에게 시중가격의 절반 이하에 식사를 제공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문을 여는 민중식당은 이용객 제한이 없다. 단 교육과 연계된 조건부 소득보조정책으로 (중앙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보우사 파밀리아' 수혜대상자의 경우는 50% 할인이 되고, 노숙자들에겐 무료로 제공된다. '기초식량바구니' 프로그램은 1개월분의 22개 기본적인 가구소비품목(식품, 화장용품, 가구청소용품)으로 구성된 바구니를 매주 또는 격주 간격으로 특별 방문하는 버스나 트럭을 통해 저소득 가족들에게 판매하는 사업이다. '영양실조 예방·퇴치 프로그램'은 취약계층에게 영양강화가루를 무료 배급하는 사업이다. 영양강화가루는 밀가루, 옥수수가루, 밀기울, 계란,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한 마니옥 잎가루 등을 혼합하여 만든 것으로, 주로 공중보건소를 통해서 자녀를 둔 어머니, 임산부, 간병인에게 1달에 2kg을 공급한다. 영양실조에 걸린 자녀의 어머니들에게는 매달 분유가 들어가 있는 3kg의 특별한 영양강화가루를 제공한다. (162~165쪽)


자치단체가 주민참여의 제도화를 통해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자본이나 토지 이용을 규제할 수 있는 자치권을 갖는 게 필요하다. 일본 후쿠오카 야나가와 시의 수로 재생 역사는 주민의 봉사로 환경을 개선하고, 그것이 지역경제 발전을 유도한 대표적인 사례다. 

야나가와 시는 시가지 사방 2km에 60km에 달하는 수로가 있다. 그런데 고도성장으로 팽창한 사업체나 가정 폐수가 무작정 방규돼 악취가 나고 불결한 개골창이 되고 말았다. 시청에서는 수로를 콘크리트로 복개하는 하수도 계획을 수립,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담당계장이었던 히로마츠 츠다가 이 계획에 의문을 품고 연구
·조사를 한 결과, 지반 침하가 일어나기 쉬운 지질을 가진 야나가와 시가 수로를 잃으면 커다란 재해에 휩쓸릴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시장의 동의를 얻어 하수도 보조금을 돌려 수로 정화를 하기로 했으나 방대한 수로를 시 예산만으로 정화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는 100회 이상의 집회를 열어 주민들에게 수로 재생의 필요성을 호소했고, 옛날의 아름다운 수로를 기억하고 있던 노인들의 찬성을 얻어내 시민 전체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그로 인해 1년에 한 번씩 수문을 닫고 시민들이 수로 바닥을 긁어내고 해변을 청소하거나 수초를 제거하는 무상봉사가 이뤄졌다. 이러한 공동 정화작업을 통해 시민 간에 긴밀한 유대감이 생겼고, 수로를 이용한 축제가 부활하는 등 야나가와 시는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229~231쪽)


1950년대 후반 경제발전기는 이탈리아 건국 이후 환경파괴가 가장 많이 진행된 시기이면서, 최대의 환경보호단체인 '이탈리아 노스트라'가 탄생한 시기다. 그전까지 역사적 거리의 보존은 주로 문화적 관점에서 추진됐거나 관광산업 차원에서 전개됐다. 일부 도시는 관광객의 거리로 변해버리고, 시민 부재의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베네치아다. 

이와는 달리 역사적 거리의 보존 목적을 문화재·관광재 보존뿐만이 아니라, 시민의 생활환경까지 포함하는 도시 재생으로 발전시킨 곳이 볼로냐다. 볼로냐는 교외에 신도시를 만들고 시의 기능분산을 도모하려고 했으나 재정적 부담이 너무 크다고 판단, 1969년 방침을 전환해 역사적 거리의 보존·재생이라는 획기적인 원칙을 수립하기에 이르렀다. '볼로냐 방식'은 공공의 재산이어야 하는 역사 지구를 자본가로부터 주민에게 되돌려주는 혁명적인 방식으로서 역사적 거리를 보존하면서 현대 시민생활을 재생시키는 지역개발을 의미한다. (232쪽)


볼로냐 시 당국은 전체 상면적(건물의 바닥면적)의 30%에 해당하는 공간에서는 재개발 이전의 집세와 같은 수준으로 주민에게 임대해준다는 내규를 만들어, 도심이 부자들에게 점유되는 것을 제도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233쪽)


숲의 보존을 위해 사유지라도 수목을 벌채할 때는 시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고, 도심지의 80%를 오염제한 지역으로 설정해 문화유산을 보호하면서 자동차 교통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235쪽)


보존하면서 혁신한다는 방식은 산업정책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볼로냐 시는 '미래의 공장 볼로냐'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금속공업, 섬유공업 등에 존재하는 장인기업과 첨단기술을 연결하고 있다. 장인기업에서는 역사적으로 전통이 있는 장인 기능을 살리고 합리화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공장자동화를 도입하고 있다. 이 내생적 발전은 지역 특유의 정치적 혁신성이 만든 지구주민평의회에 장인이 직접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안적 개발이라 부를 수 있다. (234~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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