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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엔 발리바르, '우리, 유럽의 시민들?'

딸기21 2015. 5. 26.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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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유럽의 시민들? - 세계화와 민주주의의 재발명

에티엔 발리바르. 진태원 옮김. 후마니타스



오래 전에 읽었는데, 정리해놓은 줄 알았더니 까묵고 스크랩도 안 해놨네. 갑작스럽게 필요가 생겨서 베껴놓음.


유럽은 모든 점에 있어서 다수적이다. 유럽은 항상 복수의 종교적, 문화적, 언어적, 정치적 소속들 사이의 긴장의 본고장이자 역사에 대한 복수의 독해 및 나머지 다른 세계와의 복수의 관계양상의 본고장이었다. 그것이 아메리카주의이든 오리엔탈리즘이든, '북유럽' 법체계의 소유적 개인주의이든 아니면 지중해 지역 가족 전통의 '부족주의'이든 간에 말이다. (26쪽)


유럽은 발칸의 상황을 자신의 가슴에 이식된 괴물로, 곧 저발전이나 공산주의의 병리적인 잔재로 인지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역사의 한 이미지나 효과로 인정하고, 정확히 이런 사실과 대결하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따라서 그것을 다시 문제 삼고 그것을 전환시키려고 시도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유럽은 분명 다시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한편으로 유럽은 이렇게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것을 거부할 것이고, 계속해서 이 문제를 외재적인 수단들(식민화를 포함해)을 사용해 극복해야 할 외재적인 장애물로 취급하게 될 것이다. (27쪽)


나는 세 가지 거대한 질문, 곧 국민들 및 민족주의의 역사성이라는 질문과 국민적 동일성들/정체성들이라는 질문, 구조적 폭력이라는 질문을 둘러싼 국민과 '국민 형태(또는 국민적 사회구성체)', '민족주의' 사이의 관계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볼 생각이다.

훨씬 더 중대한 것은, 이런 상황이 지니는 불확실성 자체 때문에 우리가 역사성과 동일성, 폭력, 정치적 행위 같은 범주들이 얼마나 국민의 관점에 의존하고 있는지 질문해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이 상황은 우리들 각자에게, 우리 스스로가 어느 정도까지 '사회적 동물'이나 '경제적 인간'일 뿐만 아니라 또한 '국민적 인간'이기도 한지 질문해 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39쪽)


오늘날 민주주의적이거나 자유주의적인 정치와 보수주의적이거나 반동적인 정치 사이의 경계선은 본질적으로 종족 차별과 국민성/국적의 차이에 대한 태도에, 국민의 소속과 해방의 목표들(인권과 시민권) 중 어느 것을 일차적인 것으로 간주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세계경제에서 지배적인 국민들의 경우에도 자족적인 국민성은 존재하지 않게 된 세계에서, 배제와 차별에 맞선 투쟁의 정치들이 정의되고 작동되는 양상들은 점점 더 민주주의의 시금석을 이루게 된다. (61쪽)


1989년 혁명 이후 10년 동안 유럽에서 동서 분할은 폐지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정하게 강화되어 왔습니다. 고르바초프가 소묘했던 '유럽 공동의 집'이라는 전망은 유럽 대륙의 정치구조들(체제, 동맹, 국경, 주권)의 협상을 통한 진화라는 관념 일체와 더불어 묻혀버렸습니다. 그러자마자 냉전의 결과들과 냉전이 남긴 또는 냉전 종식으로 재출현한 문제들을 결산할 '유럽 인민의회' 또는 유럽 인민정부들 의회에서 시작해 유럽을 재정초한다는 기획은 더는 사고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에는 세계적인 세력관계 및 열강, 특히 미국의 전략의 무게가 더해졌습니다. (375쪽)


유럽 주요 국가들이 자생적으로 전통적인 제국주의 자세를 다시 취하면서 중부, 동부 유럽의 피후견국들을 개척하려고 나선 데에는 이 규정요인들에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유럽연합은 새로운 번영의 공간에 가입하려는 후보자들을 암묵적으로 '가능성이 있는 나라', 의심스러운 나라', '배제해야 할 나라'로 분류했습니다. 그리하여 가능한 한 오랫동안, 불균등하게 발전한 지역들 사이의 분업의 이익을 보존하고, 유럽적인 동일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의 난점들을 '유럽적인 내전'의 연속적인 일화들에서 생겨난 사고와 행동의 틀 바깥으로 몰아내려 했습니다. (376쪽)


유럽연합은 구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해서는 대륙의 동쪽과 서쪽 사이의 경제협력 및 경제발전 지원, 유럽 공동의 정치제도들로의 통합 방식들에 대한 열린 협상을 하도록 곧바로 주선함으로써 적어도 간접적으로라도 사건들을 제어하려고 시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인민들 및 그 이웃 인민들의 경우에는 그들 자신의 운명을 따르도록 내버려 두었으며, 그리하여 민족주의적 경쟁들이 전개되도록 조장했습니다. (377쪽)


유럽연합 지도자들이 사용하는 실용적 방법, 곧 '유럽의 동일성'이라는 주제에 깔려 있는 정치적 문제는 결코 제기하지 않은 가운데 경제적, 외교적 추이에 따라 포함이냐 배제냐 결정되도록 내버려두고 단지 협상의 형식적 규칙들만을 정해두는 방법은 더는 작동 불가능합니다. 

두번째, 유럽의 공간에서 러시아를 배제한 것은 장래의 역사에 극적인 위험을 미칠 수 있는 결정으로, 이것은 제1차 세계대전의 해결방식(베르사유 조약, 트리아농 조약 등)에 내포된 불의와 맹목에서 생겨난 위험과 비견될 만합니다. (380쪽)


민주주의의 첫번째 작업장은 정의의 물음과 관련돼 있습니다. 이것은 '정치적 주체'로서 개인의 지위와 관련해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헤겔 이래로 우리는 공동체에 대한 소속의 상징 중 하나가 시민으로 머물러 있으면서 범죄자로 판결받을 수 있는 가능성에 있다는 것, 또는 범죄자가 그를 재판하는 법정에서 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데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또 마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정치권력에 대한 사법부의 자율화 경향이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법 절차와 사법적 관행은 사회적 불평등이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영역이며, 전문가에 비해 대중적인 법적 교육이 부재하고 물질적 수단들이 결뎌왜 대항 권력이 거의 발달하지 못한 영역입니다. 사법체계를 민주화할 필요와 난점은 국민국가 차원만큼이나 유럽적인 차원에서도 분명히 나타납니다. (389쪽)


두번째 근본적인 작업장은 유럽 차원에서 노동시간의 재조직화 기획을 둘러싼 노동조합의 투쟁 및 사회운동의 수렴과 관련돼 있습니다. 유럽적 시민권의 전환점을 맞아 가장 넓은 의미에서 사회적 활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유럽적인 사회 모델 및 그 위기의 중심에 놓이게 됩니다. 만약 생산적 노동이 동시에 '사회성의 생산'이 된다면, 생산적 노동은 물질적 생존수단을 만드는 것일뿐 아니라 잠재적인 정치적 실천이기도 합니다. 네그리와 하트의 제안, 확장된 노동개념 속에 '영혼의 돌봄' 내지는 정서노동(care)까지 포함시키자는 것은 특히 흥미로운 것입니다. 사회적 삶 일반을 재생산 하는 것 역시 노동의 대상이 되며, 따라서 모든 노동자는 '사회적 노동자'가 됩니다. 곧 노동자들은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함과 동시에 '사회성', '사회적 유대'를 생산합니다. 

이는 행위와 헤게모니 사이의 전통적인 관계를 전도시킵니다. 생산하기 위해 노동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하기 위해, 다시 말해 기본적인 시민권을 행사하기 위해 생산하는 것입니다. '만인을 위한 노동'은 국민국가들보다 더 민주적인 유럽을 위한 또 다른 헌법적 목표가 됩니다. (392쪽)


세번째 민주주의의 작업장은 국경의 민주화입니다. 저는 국경의 민주화를 국경의 절대적 개방 내지 국경들의 제거와 같은 것으로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후자는 야만적인 자본주의의 확대를 낳을 뿐이며 이 경우 인간들은 상품들처럼, 심지어 단순 원자재처럼 생산장소로 끌려가든가 아니마녀 거기서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국경 문제가 강화된 안보 관행 및 이데올로기의 발전 곧 '요새로서의 유럽'에 지원받은 일방적 결정 대상이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지구적인 차원의 인구이동 및 인구이주에 맞춰 국경 통행문제를 협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민자들에게 열려 있는 시민권의 물질적 기초입니다. 이 시민권은 '유럽적 시민권'이 아니라 '유럽에서의 시민권'입니다. 유럽에 거주하는 다양한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여 건설하는 시민권, 인권의 역사에서 실제적인 진보를 이루는 시민권입니다. (39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