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만대 리콜. 독일의 대표 기업이자 세계 2위 자동차회사인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눈속임’이 대규모 스캔들로 비화했다. 각국이 조사를 진행 중이고, 곳곳에서 소송이 이어질 조짐이다. 파장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폭스바겐의 손실이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스캔들의 시작은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폭스바겐에 차량 48만대의 리콜을 명령한 것이었다. 미국 엔지니어 존 저먼과 피터 모크는 웨스트버지니아대 대기공학 연구팀과 함께 비영리기구인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의 연구자금을 지원받아 폭스바겐 차량들의 배출가스를 조사했다. 자동차 회사들이 내놓은 배출량 자료와 실제 배출치를 비교하면서, 이들은 처음엔 자신들에게 실수가 있었던 게 아닌가 의심했을 정도였다고 했다. 폭스바겐의 파사트와 제타에서 출시전 테스트 때보다 각각 35배와 20배에 이르는 배출치가 나왔던 것이다. 두 사람이 당국에 자료를 넘긴 것은 지난해 5월이었다. 조작 사실을 줄곧 부인하던 폭스바겐은 EPA의 강력한 압박에 밀려 1100만대에 눈속임 장비가 설치됐음을 인정했다. 이 사건으로 마틴 빈터코른 회장이 날아갔고, 포르쉐 브랜드를 책임졌던 마티아스 뮐러가 새 회장에 취임했다.
독일 엠덴의 폭스바겐 공장에 9월 30일 선적을 기다리는 신차들이 줄지어 서있다. 엠덴/DPA·AP연합뉴스
“1100만대 리콜하겠다” 결국 백기
폭스바겐그룹은 29일 발표한 성명에서 소프트웨어가 설치됐던 차량 1100만대를 전부 리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뮐러 회장은 독일 당국에 사태 수습 방안을 제출한 뒤 승인을 받으면 곧바로 리콜 절차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리콜은 자동차 업계 사상 단일 업체로는 최대 규모다.
자동차 리콜은 1959~60년 미국 캐딜락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커다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것은 1978년 포드의 핀토 리콜사태였다. 1970년대 내내 포드의 핀토 자동차 뒷부분 연료탱크에 결함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으나 포드는 즉시 대응하지 않았고, 추돌당한 핀토가 폭발하는 사고가 잇따랐다. 최소한 27명이 이 결함 때문에 목숨을 잃자 포드는 150만대를 회수했다.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폭스바겐 공장. 볼프스부르크/AP연합뉴스
이번 폭스바겐 사건 이전까지 최대 규모의 리콜을 한 것은 일본 도요타자동차였다. 2009년부터 도요타 자동차 모델들의 브레이크 결함, 가스페달 결함 등이 보고되면서 도요타는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1000만대 넘는 차량을 리콜했고, 이와 별도로 결함에 대한 정보를 숨긴 죄로 소송이 진행됐다. 지난해 도요타 측은 미국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12억달러의 보상금을 내놓기로 합의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도 리콜 파동을 겪었다. 점화장치 불량이 드러난 것이다. 엔진이 갑자기 멈추거나 핸들과 브레이크, 에어백이 작동하지 않을 수 있는 중요한 결함이었지만 GM은 지난해 2월에야 리콜에 들어가겠다고 발표했다. 이미 세계 전역에서 ‘문제를 알면서도’ 결함 있는 자동차 260만대를 판매한 뒤였다. GM은 지난달 17일 이 문제에 대한 형사재판을 종료하기 위해 9억달러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리콜은 드물지 않지만 이번 폭스바겐 사건은 기술적 결함이 아닌 속임수 때문이라는 점에서 파장이 더 컸다. 폭스바겐이 이번 사건으로 입을 금전적 피해가 얼마가 될 지는 확실치 않다. 당장 발등의 불로 떨어진 것은 수리비용이다. 문제가 된 시스템을 고치는 데에는 1대 당 최소 2000달러(약 240만원)가 들어간다. 1100만대를 모두 수리한다면 산술적으로 220억달러(약 26조3000억 원)가 들어간다. 앞서 폭스바겐은 65억유로(약 8조6000억원)를 리콜 비용으로 책정해놨다고 했으나 이걸로는 턱없이 부족할 게 뻔하다.
총 손실 86조원 이를 수도
수리를 한 차들이 각국의 배출가스 규제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차를 고친 뒤 주행거리나 연비가 떨어질 수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리콜 이후 연비가 떨어질 경우 소비자들이 폭스바겐에 보상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차 주인이 수리 대신 엔진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할 수도 있다. CNBC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서만 문제가 된 차량을 보유한 사람이 48만명이다. 중고차 값이 떨어지게 됐다는 이유로 이들 중 상당수가 집단소송을 낼 수 있다. 이미 미국에서 지난달 말까지 제기된 집단 손해배상청구소송이 40건이 넘는다.
1954년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폭스바겐 공장에서 ‘비틀’이 생산되는 모습. AP자료사진
프랑스, 영국, 미국, 한국, 호주, 브라질 등 각국이 조사를 확대하고 있으며, 미 EPA는 청정대기법 위반 등으로 180억달러(약 21조5000억원)에 이르는 벌금을 물릴 수 있다. 주주들이 소송을 낼 가능성도 있다. 이 회사 주가는 배출가스 조작 파문이 일어난 뒤 연일 급락했고, 9월 말까지 280억유로(약 37조원)이 날아갔다.
수리비용과 벌금, 배상금 등을 감안하면 손실이 최대 86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독일 일간 빌트는 30일 폭스바겐이 최대 650억유로를 써야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영업이익 127억유로의 다섯 배가 넘는 돈이다. 독일 금융기관은 폭스바겐의 총 손실액이 470억유로(약 62조3000억원)가 될 것으로 추정했다. 어느 쪽이든 천문학적인 액수다. 폭스바겐이 이만한 돈을 마련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추측이 분분하다. 일단 쌓아둔 충당금 65억유로가 있고, 올 상반기 감사보고서 기준으로 현금 180억유로와 유가증권 150억유로를 갖고 있다. 지난 8월 일본 스즈키의 지분을 매각하고 받은 돈이 50억유로이며 이밖에 250억유로 정도를 동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칫 공장 땅이나 람보르기니, 벤틀리, 부가티 등 고급 브랜드들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9월 17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가 당시 포르쉐 최고경영자였던 마티아스 뮐러와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뮐러는 마틴 빈터콘 회장이 사임한 뒤 폭스바겐그룹의 새 회장에 취임해 ‘배출가스 조작 스캔들’의 뒤처리를 맡았다. 프랑크푸르트암마인/EPA연합뉴스
1937년 창립된 폭스바겐은 이름 자체가 ‘국민의 차’라는 뜻이다. 제2차 세계대전 뒤에는 전쟁의 폐허에서 서독의 부흥을 이끈 아이콘이었다. 2008~2009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과 유럽의 카메이커들이 줄줄이 나가떨어질 때에도 폭스바겐은 건재했다. 오히려 파산 위기에 몰린 브랜드들을 인수해 덩치를 키웠으며 세계 2위의 자동차 회사가 됐다. 폭스바겐은 독일 기술의 상징이자 자존심이었다.
게다가 폭스바겐은 GM 같은 미국 자동차회사들과 차별성을 강조하며 ‘친환경’ 브랜드임을 내세워왔다. 1996년 선도적으로 ‘환경 목표’를 설정, 기후변화 대응과 자원보호, 건강관리, 대체연료 개발, 유독성 자재 사용금지 등의 기술개발 기준을 세웠다. 하지만 이 모든 이미지가 한 순간에 산산조각났다. 당장 물어내야 할 돈도 문제이지만 폭스바겐이 입은 ‘무형의 손실’은 더 큰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주간경향 1146호ㅣ2015.1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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