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남동부 타밀나두 주(州) 오로빌Auroville은 49개국에서 온 2300여 명의 주민이 살아가는 마을이다. ‘모든 인류가 함께 사는 공동체’를 슬로건으로 내건 오로빌은 시민들이 어떤 가치를 나누고 존중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우고 실천에 옮기는 소도시다. 국적과 인종·민족·종교·성별에 상관없이 시민들은 서로를 차별하지 않고 배려한다. 인도의 작은 행정구역이지만 이제는 세계인의 눈과 귀가 쏠린 실험장이 됐다.
1968년 세워진 이곳의 실험은 현재까지는 성공적이다. 풀 한 포기 없던 황무지는 녹색공간으로 바뀌었다. 피부색도 종교도 제각각인 아이들은 한 학교에 다니며 크리스마스 대신 타밀나두 전통 명절에 ‘트리’를 세운다. 이들이 기념하는 것은 예수의 탄생이 아닌 전통적인 ‘빛의 축제’이지만, 사실 이 곳에서 종교는 상관없다. 지역 공동체의 어른들은 여러 위원회와 워킹그룹을 구성해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다.
오로빌 주민들은 2015년 1월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풍자만화 잡지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 테러 이후 너도나도 “나는 샤를리다”를 외쳤다. 파리 테러는 서로 다른 문화의 충돌이 극단적 폭력으로 나타난 사건이었다. 오로빌 사람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오로빌은 작은 마을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실험은 거대 도시에서 뒤섞여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시사점을 던져 준다. 어떤 공동체를 만들고, 어떻게 차별 없이 다양성을 꽃피워 가며 살아낼 것인지가 세계 대부분 도시의 고민거리이기 때문이다.
2014년 유엔이 집계한 세계의 도시화 비율은 54%. 2050년에는 세계인의 3분의 2 이상이 도시에 살게 될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세기 동안 세계의 도시들은 엄청난 성장을 했다. 저개발국에서도 도시의 급팽창이 두드러진다.
영국 사회학자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는 “현대의 집단노동이 만들어낸 방대한 공유재가 곧 도시”라고 말한다. 도시가 커지면서 기본 시설이 부족해지고, 환경이 망가지고, 공동체가 해체되는 부작용을 불렀다. 거대 산업 위주로 구성된 도시공간은 사람들을 소외시켰다. 사람들이 삶을 찾아 모인 곳에서 사람다운 삶이 사라지는 ‘도시의 역설’이 생겨난 것이다.
이 책의 첫머리에서는 오로빌의 ‘문화 공존’ 실험을 소개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공동체들이 떠안고 있는 고민은 그것만이 아니다. 모든 도시들은 너나없이 질병을 앓고 있다. 도시를 재구성하려는 움직임은 이런 ‘비정한 도시’로 변해가는 데 대한 반성 때문이다. 오로빌처럼 인권과 환경, 공동체와 관용의 공간을 만들기 위한 도전에 나서는 도시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외형적인 성장이 아닌 ‘가치를 지향하는 도시’로 가기 위한 노력이다.
브라질의 포르투알레그리Porto Alegre는 시민들이 직접 예산안을 만드는 주민 참여의 모델이다. 세계 정치의 수도 미국 워싱턴은 인종과 종교, 성별과 장애, 어느 것으로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명문화한 인권도시이다. 2장에서는 ‘노숙인 대의원’까지 있는 포르투알레그리의 참여예산제 탐방기를 소개한다.
3장과 4장, 5장에서는 문화를 살려 낙후된 지역을 복원한 유럽의 도시들, 그 속에서 또다시 새롭게 던져진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는 고민을 다룬다. 이 주제의 키워드는 ‘마을’이다. 우리는 큰 도시에서 ‘얼굴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에 어느 새 익숙해졌지만, 우리가 살고 일하는 곳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 안에 마을이라는 작은 단위들이 살아 숨 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통사회의 연결고리들이 끊어진 곳에서 다시 사람들을 잇고, 그 속에서 도시를 살리려는 비정부기구들과 사회적 기업, 시민 공동체의 노력을 소개한다.
5만 명이 사는 작은 도시인 네덜란드 하우턴Houten은 자전거의 천국으로 통한다. 독일의 튀빙엔Tubingen은 환경 친화적인 건축이 유독 눈에 띄는 곳이다. 이탈리아의 볼로냐Bologna와 트렌토Trento는 협동조합을 통해 지역경제의 생태계를 다시 만들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중국은 미래 환경도시의 모델을 구축하고 있는 중이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친환경 도시를 만들려는 노력과 미래를 위한 혁신, ‘연대’를 통해 도시의 경제생태계를 만드는 이탈리아와 브라질의 모델들을 점검해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한국의 도시 인구 비율은 2011년 90%를 넘어섰다. 경향신문 기획취재팀은 외형적으로만 팽창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가치를 지향하는 삶터’로 탈바꿈하는 세계 도시의 의미 있는 실험을 현장에서 생생히 지켜볼 수 있었다. 더불어 그것이 서울에는 어떤 시사점과 과제를 던져주는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문 지면에는 분량의 한계가 있어 다 담지 못한 내용들을 덧붙여,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취재를 한 뒤에 1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그 사이에 달라진 것들이 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도시들의 변화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고, 그 변화를 일구는 것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의지와 힘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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