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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구스틴 푸엔테스, '크리에이티브'

딸기21 2018. 5. 24.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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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돌에서 칼날을 떠올린 순간

아구스틴 푸엔테스. 박혜원 옮김. 추수밭. 5/24


요새 이런 책을 어쩐지 연달아 보게 된다. 태영씨가 보내준 책을 회사 책상에 놓아두고 있다가 펼쳐들었는데 순식간에 읽었다.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지난 주 참석한 독서모임의 어느 분이 '간지나게 꽂아두고 읽지 않은 책'으로 첫손 꼽았던)나 크리스토퍼 보엠의 <숲속의 평등>, 제러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와 프란스 드 발의 <공감의 시대>, 그리고 넓게 보면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각기 조금씩 결이 다르긴 하지만 모두 "인간의 본성은 폭력적이다"라고 말할 수 없으며 인간은 협력을 통해 진화했다고 말하는 책들이다. 



<크리에이티브>는 주로 고인류학적 증거에 초점을 맞춰서 인류가 서로 협력하며 진화했다고 말한다. 거기에다가 '창의성'이라는 것을 결합시켰다. 누군가의 창의성이 협력을 통해 강화되고 확산되고, 그 과정에서 다시 창의성이 강화되는 피드백을 거쳐 인류가 '영장류의 조상'으로부터 지금의 모습으로 변해왔다는 것이다. 


논지에 특별히 새로울 것은 없지만 비교적 최근까지의 연구들을 망라하고 있고, 젠더 문제나 양육 문제 등에 대한 얘기는 재미있다. 


-젠더는 생물학적 성이 아닌 '스펙트럼'이며 생물학적 성과 구분되는 젠더 개념 자체가 인간이 가진 창의성의 한 단면이다 


"젠더는 이분법으로 나뉘는 인간의 특성이 아니라 하나의 스펙트럼이다. 젠더 스펙트럼의 어느 지점에 올라 있든, 인간으로서 지극히 정상범위라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자." 423쪽


"인간의 성 행동은 매우 광범위하다. 해가 되거나 강압적이 성 행동만 아니라면 인간의 일상적 경험의 범위 안에 들어간다. 어떤 방식의 섹슈얼리티 경험을 추구하든, 같은 관심을 가진 타인이 존재할 확률이 매우 높다." 424쪽


-실상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는 크지 않으며 그 차이에서 인간의 진화에 대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일(폭력적인 남성이 더 매력적이고 유전자 증식에서 승리한다는 등)은 무의미하다


-양육은 '200만년 동안 공동체가 함께 해왔던 일'이고 이를 통해 임신-출산을 한 여성들이 공동체에 기여를 할 수 있게 되고 태아의 뇌가 자라날 시간을 벌고 창의적 인간으로의 진화를 촉진시킬 수 있었다


"양육은 어렵다. 한 사람에게 맡기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만일 누군가 배우자 없이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면 가족과 친구에게 도움을 구해야 한다. 인간은 200만 년 동안 그렇게 생활했다." 424쪽


-'사냥하는 인간'이 '전쟁하는 인간'이 되고 혹은 '폭력 본성'을 격화시켰고 젠더 차이를 강화했다는 증거는 없다, '사냥하는 남성-채집하고 아이 키우는 여성'이라는 초창기 인류의 이미지는 현대인의 사고구조를 덧씌워 만든 것일뿐이다


-전쟁과 평화 혹은 폭력과 협력(조정)은 어느 한쪽을 인간 본성에 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진화해왔다


"불평등은 폭력성과 관계가 있고, 우리 생활의 일부다. 그러나 그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한결같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개인으로서, 공동체로서, 그리고 하나의 종으로서 불평등을 들추어내고 관리하는 방법에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만 한다." 426쪽


-종교와 과학 역시, 궁금해하고 답을 찾아가며 여러 압력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함께 탄생한 동전의 양면이다


결론: 고고학과 인류학과 사회학 등등을 한데 묶었는데 그럭저럭 재미나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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