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중국의 홍콩 탄압, 그 배경엔 '광저우의 불안'

딸기21 2019. 11. 2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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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노동단체 중국노공통보(CLB)가 웹사이트에 집계해 올린 중국의 노동쟁의 지도.

 

광둥성 82건, 허난성 76건, 산둥성 46건, 저장성 36건.

지난 5월부터 6개월 동안 중국의 주요 지역에서 일어난 노동쟁의 건수다. 홍콩 이공대 봉쇄에 시선이 쏠려 있던 18일 광둥성 선전에서는 초과근로수당을 달라는 택배기사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전날엔 윈난성 쿤밍에서 건설노동자들이 체불임금을 달라고 항의했다. 12일 간쑤성 란저우 택시기사 수백명의 파업, 13일 선전 제조업체 노동자들과 건설노동자들의 연좌시위, 15일 안후이성 추저우 보온병 공장 노동자들과 16일 광저우 판위 의류공장 노동자들의 체불임금 지급요구 시위 등등 이달 들어서만 51건이 일어났다.

 

중국의 숨겨진 노동쟁의들

 

홍콩인들의 저항을 세계가 나몰라라 하고 있다지만, 진짜로 알려지지 않은 건 중국에서 일어나는 노동쟁의들이다. 중국 언론에 보도되지 않고 외부로 알려지는 것도 당국이 통제하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한 것들은 홍콩에서 활동하는 노동운동가들이 본토 상황을 집계한 ‘중국노공통신(CLB)’에 보고된 것들이다. CLB는 연락망을 통해 쟁의나 사고 소식들을 전해듣고 그때그때 지도에 기록한다. 쟁의 지도와 함께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벌어지는 사고들도 집계해 웹사이트에 공개한다. 19일의 사고지도에는 전날 샨시성 핑야오의 탄광에서 폭발이 일어나 15명이 숨진 사고 등이 기록돼 있다.

 

18일 초과근무와 임금 체불에 항의하는 광둥성 선전의 택배 노동자들 소식을 전한 웨이보 글.

 

이 쟁의지도와 사고지도에 표시된 기록들은 ‘세계의 공장’ 중국이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을 어떻게 희생시켜가며 고속성장을 해왔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달들어 일어난 대부분의 쟁의는 체불임금을 달라는 것, 사회보장 혜택을 받게 해달라는 것(13일 톈진, 6일 랴오닝성 다롄 노동자 시위), 해고하지 말라는 것(5일 후베이성 우한 병원노동자 시위) 등이었다. CLB에 집계된 건수만 이 정도이니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바깥 세계엔 알려지지 않은 채 중국의 노동쟁의는 갈수록 늘고 있다. CLB에 따르면 2017년 1200여건, 지난해 1700건이었다. 30년 가까이 이어져온 초고속 성장세가 한풀 꺾인 점이 늘어나는 쟁의들을 읽는 하나의 열쇠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2017년 6.9%에서 지난해 6.6%로 낮아졌고 올해는 6%대 초반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과잉생산으로 재고가 잔뜩 쌓인 철강과 건설자재는 ‘일대일로’ 같은 프로젝트를 통해 다른 나라들에 넘길 수 있다지만, ‘사람들’은 떠넘길수도 없앨 수도 없다. 성장이 주춤해지면서, ‘파이’를 키울 때에는 덜 두드러졌던 갈등이 터져나오는 양상이다. 쉴 틈 없이 공장들이 돌아가던 지역에서 젊은이들을 흡수할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도 문제다. 당국이나 고용주가 시키는대로 따르던 노동자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진 이유도 있다.

 

지난 4월에는 정보기술(IT)업계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996 항의’ 운동이 벌어졌다.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일하는 것에 반발한 이들은 ‘996.ICU’라는 웹페이지를 만들어 초과근무 실태를 서로 제보하며 기업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

 

테크기업들의 열악한 노동실태를 고발하는 996.icu 웹사이트.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일하는 현실을 꼬집는다.

 

광저우-홍콩 연대 걱정하는 중국

 

특히 쟁의가 많이 일어나는 곳이 중국의 경제엔진인 광둥성 일대, 홍콩과 맞붙은 지역이다. 중국이 홍콩 시위를 강도 높게 탄압하는 것은 ‘힘 없던 시절’ 어쩔 수 없이 약속한 일국양제에 불만이 있거나 민주화를 거부하고 싶기 때문만은 아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말하는 샤오캉(小康)사회로 가려면 경제성장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려면 노동자들의 요구가 분출되지 않도록 억눌러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다.

 

홍콩 시위의 싹을 자르지 않으면 광저우를 시작으로 곳곳에서 ‘희생을 강요하는 체제’에 대한 반발이 터져나올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일이다. 전례도 있다. 영국이 홍콩을 식민통치하던 1925~1926년 광저우-홍콩 연대 파업(칸톤 봉기)은 당시 중국과 영국 모두를 긴장하게 했다. 홍콩에서 긴급정황구제조례(긴급법)가 발동됐던 1967년의 반영국 시위도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시작됐다.

 

경제성장의 버팀목이면서 정작 혜택에선 소외된 노동자들의 싸움을 돕고 알리는 일을 하는 것이 주로 홍콩 사람들이다. 영국 SOAS런던대학 중국전문가 팀 프링글은 지난해 발표한 논문에서 광둥성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홍콩 노동단체들을 ‘연대의 기계(A Solidarity Machine)’라고 표현했다. 중국의 ‘노동단체’들이나 노동연구자들이 마르크스주의 노동관에 여전히 머물고 있는 반면, 세계의 흐름과 보편적 기준을 잘 아는 홍콩인들이 중국 노동자들에게 권리를 일깨워주고 있다는 것이다.

 

광저우시 판위의 의류공장 노동자들 시위를 전하는 웨이보 글과 사진.

 

노조가 없는 중국 공장들에서 홍콩과 연결된 노동단체들은 사실상 노조 역할을 해왔다. CLB는 산발적이던 본토의 노동쟁의가 최근 노조 결성 움직임들로 이어지고 있다고 전한다. 글로벌화된 홍콩의 시스템은 광저우, 선전, 마카오를 잇는 주장(珠江)삼각주의 노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학자들은 지적한다. 광둥성 주민들은 홍콩 시위대를 냉담하게 바라보고 있다지만 주장삼각주는 노동여건과 공중보건, 인프라 문제가 갈수록 커지면서 중국 정부에 고민을 안기고 있다. 주장삼각주에서 일하는 타지역 출신 노동자, 이른바 농민공의 63.8%가 주 7일 일한다는 조사도 있었다.

 

경제성장과 중국몽의 역설

 

지난 5월 노동절에 홍콩 노조들과 노동자들은 연금을 보장하고 노동시간 법규를 준수하라며 행진을 했다. 하지만 ‘친중파’로 의회에 들어간 노조연맹(FTU) 지도자 출신 앨리스 막 의원과 와이켕궉 의원은 반중 시위가 격화되자 시위대를 테러리스트라 부르며 중국 편에 섰다. 시위대를 비난해온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17일 홍콩 경제가 침체됐다며 부양책이 필요하다는 기사를 실었다. 하지만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홍콩 출신들은 중국 테크기업들과 금융기업들이 급성장할 수 있게 해준 인력풀이었다. 이번 시위로 박살난 이공대도 그런 인재 양성소 중 하나였다.

 

공산당 지도부도 노동자들의 요구를 언제까지나 묵살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두가 편안하고 풍족한 사회’를 가리키는 샤오캉이라는 구호도 그래서 나왔다. 시 주석은 지난 2월 춘제(설)를 앞두고 관영매체들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새해 인사를 전하며 “가장 부지런한 사람들, 햇볕과 비 속에서 이러저리 다니며 일하는 가장 부지런한 꿀벌들”이라고 칭송했다.

 

지난해 10월 광둥성 칭위안의 공장을 찾아 노동자들을 격려하는 시진핑 국가주석.  신화통신

 

그러면서도 ‘차이니즈 드림(중국몽)’을 외치는 시 주석과 공산당 지도부는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며 제 몫을 달라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억누르고 있다. 지방정부는 기업들에 쟁의를 무산시키라 압박하고, 사업장들은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내쫓고, 공안(경찰)은 노동 지도자들을 구금한다. 지난해 하반기에 구금된 사람이 최소 150여명이라고 CLB는 전한다. 붙잡혀간 이들은 교사부터 택시기사, 건설노동자, 대학생까지 다양하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이 궤도에 올랐던 1989년 톈안먼 학살이 벌어지자 서방 언론들은 대학생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실제로 탄압을 받은 것은 노동자들이었다. 미국의 중국사학자 모리스 마이스너는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에서 “투옥된 사람 대부분과 사형당한 사람은 모두 노동자나 일반 시민이었고, 학생들의 경우 ‘긴급수배자’ 명단에 들어간 21명의 주모자들을 제외하면 비교적 관대한 처벌을 받았다”고 지적한다.

 

캐나다 터론토대학 중국전문가 다이애나 푸가 뉴욕타임스에 말한 것처럼, “교사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트럭 운전사들이 수송을 중단하고 건설 노동자들이 일손을 멈추면 중국몽을 쫓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홍콩 시위 뒤에 숨겨진, ‘중국몽이 중국인들의 꿈을 짓밟는’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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