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크림반도 놓고 ‘지도 갈등’...구글·애플의 지도 표기는 ‘사용자 맞춤형’

딸기21 2019. 11. 28.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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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러시아로 귀속된 크림자치공화국 수도 심페로폴을 애플 날씨앱에서 검색한 화면. 러시아에서 접속하면 러시아 도시로 표기되지만(위 그림) 우크라이나에서 검색하면 ‘러시아’라는 국가명이 사라진다. 애플 앱 화면캡처

 

미국 애플과 우크라이나 사이에 ‘지도 싸움’이 벌어졌다. 러시아가 2014년 병합한 크림반도를 어느 나라 땅으로 볼 것이냐를 놓고 벌어진 갈등이다. 수십억명이 컴퓨터나 스마트폰 앱으로 세계 지리를 인식하는 현실에서, 애플이나 구글의 지도 표기는 각국 정부와 시민들이 간과할 수 없는 이슈가 되고 있다.

 

러시아 국가두마(하원)는 27일(현지시간) “애플 앱에 크림반도와 세바스토폴이 러시아 영토로 표기됐다”는 공식 성명을 냈다. 구글맵의 경우 러시아 안에서는 크림반도가 러시아 땅으로 표시되는 반면, 애플은 그동안 아예 국가 표시를 하지 않았다. 러시아 측은 지도·날씨 앱에 크림반도를 ‘러시아법에 따라 표기하라’며 애플을 압박했다. 애플은 결국 러시아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다만 러시아 밖에서는 예전처럼 크림반도가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 것으로 표시된다.

 

우크라이나는 반발했다. 바딤 프리스타이코 외교장관은 트위터에 “애플, 당신들이 오랫동안 열성을 다해 만든 디자인과 아이디어를 최악의 적들이 빼앗아가면 좋겠느냐”고 썼다. 크림반도에 해시태그(#)를 붙이면서, ‘러시아’라는 단어 자체를 피하기 위해 러시아 국기 아이콘을 표시하며 애플을 비난했다. “애플은 하이테크와 엔터테인먼트에 집중하라”며 “국제정치는 당신들이 강점을 가진 영역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우크라이나의 바딤 프리스타이코 크림반도가 러시아 내에선 러시아 영토로 표기되게 만든 애플의 설정을 비난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옛소련 내 러시아공화국에 속해 있던 크림반도는 1954년 니키타 흐루쇼프 공산당 서기장의 결정에 따라 연방 내 우크라이나공화국 소유로 바뀌었다. 1991년 우크라이나 독립 뒤 크림반도는 그대로 우크라이나 땅이 됐지만 러시아는 크림반도 남단 세바스토폴의 흑해함대 기지 등 군사시설을 유지했다. 주민 228만명 중 러시아계가 65%로 압도적이고, 우크라이나계는 15%에 불과하다. 그밖에 타타르계, 벨라루스계 등 옛소련권 소수민족들이 섞여 있다.

 

2014년 3월 우크라이나가 정정 불안에 빠져 있을 때 러시아계가 주류인 크림반도의 자치의회는 ‘우크라이나로부터 분리독립한다’고 결의했다. 이어 자치정부가 ‘러시아 귀속이냐 1992년 무산된 자치국가 헌법이냐’를 묻는 주민투표를 해서 러시아 귀속을 결정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크림 자치정부의 청원을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합병을 승인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 군대가 크림반도 곳곳에 배치됐으나 무력충돌은 없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와 미국·유럽은 러시아가 ‘강제합병’한 것이라 비난했다. ‘신냉전’ 수준으로 악화된 갈등은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27일에도 서방이 “제국주의 정책”과 경제제재를 철회해야 한다고 재차 주장했다.

 

구글지도에서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는 국경을 나타내는 실선이 아닌 점선이 그어져 있다.  구글지도 캡처

 

크림반도는 러시아로 귀속됐고 현재 우크라이나의 행정력은 전혀 미치지 않지만, 구글이나 애플은 정치적 논란이나 관련지역 사용자들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 모호한 태도를 유지해왔다. 우크라이나에서 구글지도를 띄우면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 땅으로 나오지만 러시아에서 보면 러시아 영토다. 한국 등 제3국에서 보면 우크라이나와 크림 사이 경계선은 실선(국경)이 아닌 점선으로 표시돼 있다. 하지만 다리로 이어져 있는 러시아 크라스노다르 일대와 크림반도 사이엔 선이 없기 때문에 러시아 영토처럼 보일 수도 있다. 크림자치공화국 수도인 심페로폴은 러시아 밖에선 어느 나라의 도시도 아닌 것으로 나온다.

 

구글의 지도표기 방침은 영토분쟁 지역과 관련해 ‘보는 사람 입맛에 맞게’ 보여주는 것이다. 즉 접속지역에 따라 표시가 바뀐다. 중국-인도 간 분쟁지역인 인도 북부 아루나찰프라데시(중국 주장 ‘남티베트’)의 경우도 중국에서 접속하면 대부분 중국 땅으로 표시되고, 인도에서 보면 인도 영토로 나타난다. 제3국에서 보면 실선 대신 여기에도 점선이 등장한다. 인도-파키스탄 분쟁지역인 카슈미르의 경우 인도 밖에서 보면 카슈미르에 점선이 그려지지만 인도 안에서 보면 확고한 실선이 표시된다.

 

인도-중국 간 영토분쟁이 벌어져온 아루나찰프라데시(오른쪽 원), 인도-파키스탄 간 분쟁지역인 카슈미르(왼쪽 원) 지역은 구글지도에서 국가 간 경계선이 점선으로 표시된다. 하지만 중국에서 접속하면 중국 땅, 인도에서 접속하면 인도 땅이 되는 식으로 표시가 바뀐다. 구글지도 캡처

 

중국은 댜오위다오, 일본은 센카쿠열도, 대만은 댜오위타이라 부르는 동중국해 섬들은 대부분 지역에서 봤을 때 국적 없이 섬들만 표기되며 일본명-중국명-대만명 순으로 이름이 적힌다. 하지만 중국에서 지도를 보면 대만 옆 바다 위에 국경선이 표시된다. 중국, 대만, 말레이시아, 필리핀, 브루네이가 얽힌 난사군도(영어명 스프래틀리 군도)도 부근에도 중국 접속자들이 보는 지도에는 중국 땅임을 시사하는 점선이 나오지만 다른 지역에서 보면 영어 이름만 뜰 뿐이다.

 

독도도 일본에서 접속하면 ‘다케시마(竹島)’라 표기된다. 한국에서 접속했을 때조차 독도라는 이름 대신 미국 정부 문서들처럼 ‘리앙쿠르 암초’라고만 나왔으나, 한국 사용자들이 항의하자 지난해부터 독도(Dokdo)라 적고 있다. 하지만 한국 이외 지역에선 여전히 리앙쿠르 암초다. 애플 앱에선 전체적으로 독도라 표기하고, 일본어 버전에서만 다케시마로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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