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오후(현지시간) 싱가포르를 떠난 홀랜드아메리카 여행사의 크루즈선 웨스터담호. 이 배는 코사무이(태국), 시아누크빌(캄보디아), 나짱·하롱베이(베트남), 홍콩(중국), 마닐라(필리핀), 카오슝(대만), 나하(일본) 등을 거쳐 11일 나가사키를 지나 12일 부산에 입항하고, 13일엔 다시 일본 사세보로 갈 예정이었다. 15일 중국 상하이에서 일정을 마치는 한 달 간의 아시아 바닷길 여행 코스다.
바다를 떠도는 여객선
하지만 승객 1450여명, 승무원 800여명 등 2200명 이상을 태운 웨스터담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바다를 떠도는 유령선으로 전락했다. 7일 요코하마 항구에 들어온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서 코로나19 무더기 감염이 확인되자 일본이 입항을 막은 것이다. 대만 지룽항을 오후에 떠나 이튿날 오키나와로 갈 예정이었는데 입항 거부를 통보받았다.
당초 경로에 있었던 일본과 한국, 중국이 거부하자 선박 운영사 측은 정박할 곳을 찾아 아시아 각국에 요청했으나 필리핀, 태국도 거부했다. 1인당 2만달러를 내고 ‘꿈의 여행’에 나섰던 승객들은 갑자기 보트피플 신세가 됐고, 아무 곳에도 내리지 못하고 배 안에 갇혔다. 배는 캄보디아의 허가를 받고 13일에야 간신히 시아누크빌에 정박했다.
코로나19가 세계를 흔들고 있다. 크루즈선은 유령선 취급을 받고, 난민섬은 격리대상자 수용소가 됐다. 감염증 발생지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은 봉쇄조치가 20일을 넘기면서 도시 전역이 병원으로 변했다. 경제적 파급력은 이미 중국을 넘어 아시아 각국에 피해를 미치고 있다.
크리스마스 섬의 ‘코로나 난민’
인도네시아와 가까운 호주령 크리스마스 섬은 난민섬으로 유명하다. 호주 정부는 배를 타고 입국하려는 난민·이주민들이 ‘본토’에 도착해 자국 난민법의 적용을 받게 되는 상황을 막으려고, 근해에 접근하는 배들을 떠밀어 보내는 것으로 악명 높다. 남태평양 작은 섬나라 나우루 등에 돈을 주고 난민을 떠넘기기도 한다.
크리스마스 섬도 그런 난민캠프들이 있는 곳 중 하나다. 호주 정부는 2003년부터 이 섬에 사실상의 강제구금센터를 만들어 난민들을 가뒀다. 인권침해로 거센 비판을 받아온 구금센터는 2018년 문을 닫았다. 지난해 다시 열기는 했으나 지금은 추방을 거부하는 스리랑카인 난민들 몇 명만 남아 있다.
호주 정부는 지난 3일 아이들 89명을 포함한 243명의 격리 대상자들을 비행기에 태워 크리스마스 섬에 보내기로 했다. 이를 위해 당국은 크리스마스 섬에 의사 24명을 보내고 천막 병원을 지었다. ABC방송 등 현지 언론들은 크리스마스 섬으로 격리되는 이들을 ‘바이러스 대피자들(Virus evacuees)’이라 불렀다.
첫 비행기가 10일 이륙했고, 며칠 내로 두 번째 비행기가 격리대상자들을 싣고 떠나게 된다. 이 이송작전에 특별기를 내준 콴타스 항공 측은 “탑승자들은 모두 마스크와 방호복을 착용하게 될 것이며, 우리 직원들과 승객의 접촉은 최소화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소셜미디어에는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 줄을 선 이들과 난데 없는 생이별을 하게 된 의심환자 가족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잇달아 올라왔다. 호주 본토에서 2700km 떨어진 외딴 섬으로 가게 된 이들은 난민정책 못잖게 강경한 정부의 격리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중국 우한에는 현재 호주인 600명 정도가 체류하고 있는데, 이들도 귀국하면 크리스마스 섬으로 가게 된다. 격리를 당하지 않기 위해 우한에 계속 머물려는 호주인들도 있다. 영국 BBC방송은 호주의 이런 정책이 자국민 감염 의심자들이나 확진자들을 받아들여 치료하는 미국, 프랑스, 일본 등과 대비된다며 “특히 중국계 호주인 격리대상자들은 ‘백인 호주인’들과 다른 차별을 당할까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호주 정부는 심지어 격리대상자들에게 1000호주달러(약 80만원)의 이송 비용을 거둬들이려 했다가 비판이 일자 취소했다.
‘오도가도 못한다’ 화물차에서 한달살이···중국판 ‘터미널’
‘우한 거실’, 도시 전체가 병원
‘600만명 검역’이라는 사상 초유의 과제를 안은 우한시는 5일부터 도시 곳곳 다중이용시설을 임시 진료소로 바꾸고 있다. 홍샨체육관 같은 체육시설과 우한국제회의장, 전시장 등 11곳을 진료소로 만들어 병상 3400개를 확보했다. 우한 시민들은 이 진료소들을 ‘우한 거실(武漢客廳)’이라 부르고 있다고 신화통신은 소개했다. ‘팡팡 병원(方艙)’이라 불리는 임시 진료소의 책임을 맡게 된 중국공정원 왕천(王辰) 부원장은 “지금은 전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열흘 새에 완공돼 세계의 눈길을 끈 훠션산 병원은 병상이 1000개이고, 이어 만든 레이션산 병원은 1600개다. 하지만 여전히 병상은 모자란다. 인구 1100만명 중 봉쇄 전에 500만명이 떠난 것으로 추정되지만, 날마다 감염자들이 확인되면서 격리 치료 시설이 부족한 형편이다. ‘우한 거실’들은 중환자들이 아닌 가벼운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 치료에 쓰이고 있다. 외신들은 이 시설들에서 진료하는 의료진들, 의료진을 따라 체조를 하며 체력관리를 하는 시민들 모습을 전하고 있다.
설 지나자마자 ‘코로나 해고’
로이터통신은 11일 광고업체 신차오미디어 등이 코로나19 사태로 불경기가 예상되자 인력을 줄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날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베이징의 방역 현장을 처음으로 방문해 “대량 감원 사태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대량해고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노래방 업체, 교육회사 등도 잇달아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002~2003년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확산 때 중국 전역에서 800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면서 이번엔 파괴력이 더 클 수 있다고 봤다. 당시엔 중국 내 서비스부문 종사자가 전체 노동자의 29%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절반이 서비스업에서 일한다는 것이다. 경기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서비스업의 특성상 대량 해고가 줄이을 수 있다.
게다가 우버 같은 플랫폼 노동과 불안정한 일자리들이 늘어나면서 고용시장이 이미 취약해진 상태다. 경기가 둔화되면서 일자리가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났다. 정부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이주노동자들의 일자리는 더 많이 줄어들 수 있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홍콩의 경우 지난해 3.3%였던 실업률이 5%로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봤다. 홍콩의 호텔 직원 10명 중 4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코로나 실직’은 중국만이 아닌 다른 나라들로도 번질 수 있다. 중국과 경제적으로 밀접한 호주에서는 올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55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ABC방송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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