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은의 '수상한 GPS']코로나19 지역사회 감염 시작…"55만~440만명 옮을 수도"

17일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내린 미국인들이 전세버스를 타고 도쿄 하네다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이 배에 탔던 미국인들은 전세기를 타고 미국으로 돌아간 뒤 다시 2주 동안 격리 감시를 받게 된다.  도쿄 AFP연합뉴스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된 것일까. 코로나19 감염증이 보건당국의 추적과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징후가 각국에서 포착되고 있다. 수십만~수백만 명이 감염될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예측도 잇따른다. 중국 감염자 확산세가 주춤하고 있다지만, 불확실한 통계 때문에 학자들이 정확한 예측에도 애를 먹고 있다.

 

감염증이 처음 시작된 중국 우한은 도시 전역이 봉쇄된 채 곳곳이 진료소로 변했다. 우한뿐 아니라 일본과 싱가포르에서도 이미 확진자와 주변 접촉자들을 넘어선 지역사회 감염(community acquired infection) 단계에 이르렀다.

 

크루즈만 막더니

 

일본은 그동안 요코하마에 정박한 대형 크루즈선만 통제하면 된다며 탑승객들이 못 내리게 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지난달 도쿄 하천에서 소형 유람선을 전세내 신년 모임을 한 사람들 11명이 무더기로 감염된 데다, 그 중 한 명의 가족들에게도 전파된 사실이 16일 알려졌다. 이달 1일 후베이성에 머물렀던 외국인 입국을 중단시키기 이전부터 도쿄에서 감염이 시작됐을 수 있다는 얘기다.

 

감염자 중에는 택시기사도 있고 의사도 있어, 추가 감염이 우려된다. 16일 도쿄 시내 총리관저에서 열린 전문가 회의에 참석한 와키타 다카지(脇田隆字) 국립감염증연구소장은 아직 여러 곳에서 동시에 지역사회 감염이 일어나는 ‘유행상태’에는 이르지 않았다면서 “국내 발생의 초기 단계”라고 평가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은 전했다.

 

대만에서도 지난 15일 당뇨와 간염을 앓던 남성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 대만 당국은 이 남성이 중국을 방문했거나 확진자와 접촉한 적 없다는 점에서, 감염 경로를 추적하기 힘든 지역사회 감염 사례로 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싱가포르에서는 16일 3명이 추가 판정을 받으면서 코로나19 확진자가 75명으로 늘었다. 이날 확인된 감염자 중 20대 남성 한 명은 확진자가 이전에 나왔던 교회의 신자다. 이 교회에서만 지금까지 18명이 감염된 것으로 드러났다. 당국이 이 교회 목사와 직원, 가족과 접촉자들을 모니터링하고 있는데도 다시 환자가 나왔다. 현지 일간 스트레이츠타임즈 17일 보도에 따르면 이날까지 확인된 감염자 중 택시기사가 2명인데, 그 중 한 명은 근래 중국을 방문한 적도 없고 당국이 파악 중인 확진자와 접촉한 적도 없다.

 

‘격리’만으로 통제 불가능한 단계

 

대만에서 코로나19로 숨진 60대 남성도 지역사회 감염으로 추정된다. 이 남성은 B형간염과 당뇨를 앓다가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지난 15일 사망했다. 천시충(陳時中) 보건복지장관은 “사망자는 외국을 방문하거나 확진자와 밀접하게 접촉한 적이 없어 지역사회 감염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망자는 2월 3일 기침 증상이 심해져 폐렴으로 입원했는데, 당시엔 코로나19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다. 하지만 사망 뒤 검사에서 양성으로 드러났다. 입원 전에도, 치료 중에도 가족과 의료진 접촉이 통제되지 않았던 것이다. 17일 타이페이타임스에 따르면 이 남성은 폐렴 증상이 심해지기 전에 택시를 운전했고, 승객에게 옮았을 가능성이 있다. 가족 1명도 감염이 확인됐다.

 

그동안 코로나19이 상륙하지 않았던 아프리카 대륙의 이집트에서도 확진자가 나오자, 이집트와 접경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도 검역소를 설치했다. 16일 가자지구 라파의 국경검문소에 있는 검역소에서 마스크를 쓴 검역요원이 지나가고 있다.  라파 AFP연합뉴스

 

현재 각국은 중국 방문자, 특히 우한 여행자들을 통제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서 풀려난 미국인들 중에는 확인된 감염자가 44명이다. 확진자와 의심환자들, 일부 가족들을 뺀 나머지 미국인들은 17일 전세기를 타고 미국으로 떠났다. 하지만 간단한 짐과 먹거리만 들고 비행기에 오른 이들은 미국에 도착하면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의 공군기지에 2주간 다시 격리된다. 크루즈 내 감염자가 3명 나온 이스라엘도 일본에 의료진을 보내 치료와 귀국 뒤 격리절차·일정을 논의할 예정이다.

 

우한에서 귀국한 독일인 100여명은 프랑크푸르트 공항 부근 군 기지에 머물다가 전원 음성 판정을 받고 17일 마침내 풀려났다. 인도도 우한에서 전세기로 싣고 온 인도인과 몰디브인 654명을 17일부터 차례로 집에 돌려보내기 시작했다.

 

통계 불확실, 예측 어려워

 

하지만 이런 격리 조치들이 무력화될 수도 있다. 우한발 귀국자들만 통제해온 각국이 이젠 일본과 싱가포르 등 도처의 감염자들을 경계해야 하는데, 완벽한 관리는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관건은 얼마나 더 퍼질 것인가다. 수학적 기법으로 전염병 확산을 예측하는 과학자들은 늘 불완전하고 불확실한 통계라는 장애물에 부딪친다. 하지만 이번엔 예측이 더욱 어렵다. 중국측 통계는 언제 어디에서 어떤 연령층이 감염됐는지 확실히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적십자병원에서 16일 의료진이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우한 AFP연합뉴스

 

이달들어 꾸준히 감염자·사망자 증가세가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었는데, 후베이성 측이 ‘임상진단’ 환자들도 포함시키면서 며칠 새 감염자와 사망자가 큰 폭으로 늘었다. 17일 현재 중국 내 확진자는 7만548명, 누적 사망자는 1770명이다. 당국은 최근 대규모로 포함된 수치를 감안하더라도 감염자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학자들은 일관성 없는 통계 때문에 확산 과정을 예측하는 모델링을 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한다.

 

미국과 캐나다 등의 연구팀 예측치를 보면 55만명~440만명이 감염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모델링 방식에 따라 예측치가 8배나 차이가 나는 것이다. 추정의 출발점은 학자들이 R0(R-노트)라 부르는 수치다. 감염자 1명이 평균 몇 명에게 퍼뜨리는지를 뜻하는 것으로, 바이러스의 전염성 자체를 가리키는 지표다. 코로나19의 R0는 2를 웃도는 정도로 추정됐다. ‘팬데믹(지구적인 전염병)이 온다’고 호들갑을 떨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다.

 

55만~440만명 감염될 수도

 

그렇다 해도 지역사회 감염이 퍼지면 대규모 확산을 피하기는 힘들다. 캐나다 라발대학 안투안 알라르는 최근 연구자들 웹사이트(medRxiv)에 “우한에서만 55만명이 감염될 수 있다”는 추정치를 올렸다. 하지만 통제에 실패할 경우 감염자가 최대 440만명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토론토대학 연구팀은 내과학연보(AIM) 기고에서 R0을 2.3으로 보고 계산해, 이달 24일까지 감염자가 30만명에 이를 수 있다고 예측했다. 미국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서는 R0을 2~5 사이에 놓고 여러 시나리오를 계산 중이다.

 

16일 중국 남서부 귀저우성 귀양의 롱동바오 국제공항에서 우한으로 지원을 떠나는 의료진들이 마스크를 쓴 채 구호를 외치고 있다.  귀양 신화연합뉴스

 

영국 랭카스터대학 조너선 리드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중국 당국이 547명의 감염자가 확인됐다고 발표한 지난달 22일 이미 감염자가 1만1090~3만3490명에 이르렀을 것으로 봤다. 광저우 지난대학 연구팀은 1월 31일 공식 감염자가 1만1200명이었을 때 실제 감염자는 8만8000명이 넘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당국이 축소·은폐하지 않는다 해도, 공식 확진을 받은 사람과 실제 감염된 사람 수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감염자 숫자가 크게 늘어난다고 해서 패닉에 빠질 필요는 없다고 학자들은 지적한다. 계절성 질환이나 온건한 감염증(mild epidemic)이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전염병 대응이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 2014년 에볼라 사태 때 미국 질병통제센터(CDC)는 서아프리카 라이베리아와 시에라리온에서만 55만~140만명이 감염될 수 있다고 추정했으나 세계에서 확인된 환자는 2만8600명이었다. 미국 의학전문매체 스타트는 “과학자들의 예측을 바탕으로 각국이 효율적 통제를 한다면 감염자를 예상보다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