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아프리카인, 신실한 기독교인, 채식주의자, 맨유 열혈 팬, 그리고 난민'

딸기21 2020. 7. 7.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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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 신실한 기독교인, 채식주의자, 맨유 열혈 팬, 그리고 난민

오마타 나오히코, 이수진 옮김, 원더박스

 

'논문에는 담지 못한 어느 인류학자의 난민 캠프 401일 체류기.' 이런 부제가 달려 있다. 글쓴이 오마타는 국제구호개발원조에 관심을 두고 은행에 들어갔다가 관련 없는 일만 하게 됐고, 2년만에 그만두고 유학을 떠났고, 구호개발 국제기구에서 일하다가 다시 공부를 하게 됐고, 영국에서 난민 연구를 하다가 박사 논문을 쓰기 위해 난민촌에 1년간 머물며 조사를 한 일본인이다. 설명을 쓰고 보니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이름은 알폰소 코디. 올해 38세로 서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 공화국 출신이다. 알폰소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단어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남편, 아버지, 연구자, 흑인, 아프리카인, 대학원 중퇴자, 신실한 기독교인, 교육자, 인권활동가, 라이베리아파, 채식주의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열혈 팬, 그리고 난민. (19쪽)

 

제목이 참 긴데, 실제 내용에 채식주의와 맨유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저 오마타가 난민촌에서 함께 살게 된 남성의 프로필을 설명하는 구절일 뿐이다. 그럼에도 참 적절한 제목이다. 난민은 그냥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머물렀던 곳은 가나 아크라 교외의 부두부람 난민촌이다. 한국에 가나 난민도 드문 판에 한국에서 그곳에 가본 사람은 더더욱 드물겠지만, 나는 거기에 가본 적이 있다. 책장을 펼친 뒤에 들어본 이름이라 확인해보니 그곳. 라이베리아인들이 모여 살던 곳. '캠프'라기보다는 그냥 아프리카의 흔한 마을 같지만 인구밀도가 매우 높았던 곳. 

 

 

부두부람은 20년 넘게 라이베리아인들이 살고 있는 '장기화된 난민' 캠프로, 부자 나라들이나 국제기구의 관심과 지원도 떨어지고 난민들의 고향 아닌 고향처럼 돼버린 곳이다. 그렇게 오래 머물면서 그곳엔 난민들의 삶이 쌓이고 하나의 사회가 만들어진다. 저자는 그곳에서 주민들의 '경제생활'을 조사한다. 연구를 하려면 거리를 둬야 하지만, 1년 넘게 살면서 그렇게 거리를 두는 게 어디 쉬울까. 친구를 사귀고, 고민을 하고, '고백'도 받고, 화를 내기도 하고, 약값을 대신 내주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책은 꽤나 재미있다. 순식간에 읽었다. 캠프의 열악함, 난민들의 고통, 갈 곳 없는 이들의 몸부림과 좌절, 그럼에도 계속되는 삶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놨다. 더불어 그 속에서 자신이 직접 겪어야 했던 크고 작은 어려움들과 느낌들을 유머러스하게 섞었다.

 

난민 문제를 '해소'할 방법은 본국 귀환, 현지 통합(수용국 사회에 받아들여지는 것), 그리고 재정착의 세 가지다. 이른바 선진국들로 떠나는 '재정착'은 부두부람 난민들의 꿈이며 미국이나 노르웨이 같은 재정착 국가들은 그들의 유토피아다. 그 어느 것도 난민들에겐 쉬운 선택지가 아니다. 이 세 가지 힘든 선택지를 둘러싼 난민들의 고민을 엿보다 보면 자연스레 난민 이슈의 여러 측면들을 훑게 된다. 

 

아이들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쓰인 책이지만 저자의 문제의식은 여러 방향으로 뻗어가 있다. 중동 난민들이 언론에 부각될 때 저자는 모두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장기화된 난민' 문제를 지적한다. "난민에 우선순위를 두자는 것은 아니다"라고 저자는 말하지만, 그가 얘기하고 싶은 게 뭔지 공감이 된다. 분쟁이나 난민에 관한 기사를 쓸 때 내게도 늘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콕콕 찌르는 고민거리 중 하나다. 

 

난민을 대하는 일본/한국의 행태야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저자는 'OO 난민' 식으로 그리 좋지 않은 상황이나 부정적인 이미지에 '난민'이라는 표현을 쓰는 문제, 이재민(참사의 피해자)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 반감으로까지 향하는 심리에 대해서도 지적을 하는데, 슬그머니 한 줄 걸치고 지나가는 듯한 문장을 읽으며 우리를 돌아보게 된다.

 

일본에서는 매년 3만 명이 넘는(2009년 기준)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한다고 말하자 팬튼과 샘은 상당히 놀란 듯 큰 눈을 더 동그랗게 떴다. 내가 "혹시 지금까지 캠프 주민 중에 자살한 사람이 있어?"라고 물어보자, 팬튼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자살하는 사람이 여기 있을 리가 없잖아. 우린 정말로 죽임을 당할 뻔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멀리 이 캠프까지 도망쳤는 걸." (288쪽)

 

인상적인 말이어서 인용해봤지만, 저자가 쓴 내용이 사실이라 해도 그건 부두부람의 상황일 뿐이다. 호주가 태평양의 섬에 몰아넣은 난민들 중에는 오도 가도 못하게 갇힌 채 고통과 절망 속에서 자해를 하고 목숨을 끊은 이들이 있다. 강제로 내몰린 사람들, 돌아갈 곳 없는 사람들, 지구를 떠도는 사람들의 문제는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지. 우리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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