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

딸기21 2020. 6. 28.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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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 세계 혁명가 25인의 최후진술

한스 마그누스 옌첸스베르거 엮음. 김준서 안미라 유경덕 옮김. 이매진

 

 

자료로 쓰려고 사놨다가 책꽂이에 꽂아두고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어차피 오래 전의 글들이니 몇 년 지나서 읽은들 문제가 될 건 없지.

 

다시 자료로 참고해볼까 싶어서 꺼내들었다. 이런 책은 3~4년은 묵혀가며 읽는 게 버릇인데,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엮은이는 모든 연설을 맑스주의 관점에 투철한가 아닌가를 기준으로 평가한다. 그런데 관점이 몹시도 기계적이어서, 엮은이가 '한계가 있다'고 부족한 것들은 모두 재미있었던 반면에 엮은이가 높이 평가한 것들은 대체로 재미가 없었다. 

 

저는 이 지역에 사는 벤 터너의 '재산'으로 태어나 지난 10월 2일에 서른 한 살이 됐습니다. 

-냇 터너, 1831년 (34쪽)

 

러시아 제국이 왜 타민족에 대한 정복전쟁을 계속 확대하는지 아십니까? 그건 다른 할 일이 없기 때문이며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러시아 제국은 '러시아 민중의 나라'가 아니라 러시아 민중에게 덮어씌워진 이질적인 '추상적 원리'입니다. 그것은 그 자신만을 목적으로 하는 전제주의적인 폭력의 원리이며 신권의 이름으로 민중을 암흑 속으로 몰아넣고 짓는 원리입니다. 

-미하일 바쿠닌, 1850년 (116쪽)

 

앞쪽 프랑스 혁명 당시 혁명가들의 최후진술은 지루했는데 바쿠닌 부분은 재미있게 읽었다. 

 

여러분은 검찰보다 더 노골적으로 불합리하게 단순화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경찰이 차라리 우리 서류의 일부만을 압류하는 데 그쳤다면 검찰은 적어도 "압수하지 못한 서류 속에 증거가 제시돼 있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검찰은 무(無)에서 증거를 찾으려 했고 결과는 이렇습니다. 

-빌헬름 립크네히트, 1872년 (143쪽)

 

빵 터짐. 어느 나라 검찰 같아서.

 

사람들은 늘상 봉기와 바리케이드를 연관시키곤 합니다. 그러나 바리케이드는 일반적인 봉기에서 그다지 중요치 않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기계적 요소에 불과한 바리케이드가 상징하는 중요한 도덕적 의미를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혁명에서 그렇듯이, 바리케이드는 전장의 요새처럼 단순히 물리적인 장애물만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바리케이드는 군대의 이동을 가로막는 지점인 동시에 병사들과 민중의 접점이었습니다. 이 앞에서 병사는 처음으로 솔직하고 용기 있는 말과 형제의 외침, 민중이 외치는 양심의 소리를 들었던 것입니다. 민족적 열광 속에서 군인들과 민중이 그런 접촉을 가진 뒤에 엄격한 군율은 깨어져버립니다. 오직 이것만이 민중봉기의 승리를 보장해줍니다.

-레프 트로츠키, 1906년 (276쪽)

 

다시, 카푸시친스키의 글이 떠올랐다.

 

이란의 어느 마을에서든 처녀와 부인들이 남자들과 똑같이 일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성은 선거권이 없습니다. 이란 경제에서 남성 못지않게 중요한 몫을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생산한 가치는 모두 남성들의 경제활동으로 계산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여성들은 경제적으로 남성들에게 예속돼 있습니다. 동등한 노동에 종사하는데도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임금보다 훨씬 적습니다. 양탄자 산업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노동자가 여성이고 섬유 유리 공장에서도 많은 여성들이 일하고 있지만 국회나 상원에는 여성의원이 한 명도 없습니다. 

-코스로 루즈베흐, 1958년 (421쪽)

 

1958년의 이란. 2020년의 이란, 2020년의 한국.

 

엮은이는 피델의 그 유명한 최후진술(이 책에선 쿠바 독립혁명에 대한 피델의 기나긴 설명을 다 생략했다)에서 책의 제목을 가져왔다. 엮은이가 나름 자료를 열심히 고르고 모은 모양이다. 제3세계 좌파 혁명운동에 관한 연설이나 글도 있다. 인도네시아의 모하마드 하타, 이란의 코스로 루즈베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브람 피셔의 연설 모두 접해보지 못한 것들이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다만 표기나 번역은 좀 걸리는 게 많다. 당장 목차에 아브람 피셔를 '서아프리카'라고 해놨는데 남아공은 지구를 270도 돌리지 않는 한 남아프리카다.

 

코스로 루즈베흐 부분에 이란 모사데그 총리를 일관되게 모사데프라고 써놨다. 모사데'크'라고만 썼어도 변명의 여지가 조금은 있겠지만 이건 용서받지 못할 오류인 듯. 피델 카스트로와 레지 드브레의 볼리비아 재판 진술에서는 스페인어 표기 좀 많이 틀림. 모하마드 하타 글 앞부분 생몰연도는 그 앞 사람 연도를 그대로;; 복붙한 실수가.

 

저와 피델에게 더 모욕적인 말은 '주인'이란 표현입니다. 검사는 주인과 친구를 혼동하고 있습니다. 주인이라 불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볼리비아의 가난한 사람들의 노동을 통해서 부를 축적하고 그들을 착취하고 업신여기고 약탈하고 억압하고 볼리비아 땅에 달러를 투자한 존슨 씨입니다. 쿠바는 누구에게도 달러나 특권을 줄 수 없습니다. 쿠바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은 희생과 용기와 양보의 모범뿐입니다. 주인을 택하느냐 모범적인 친구를 택하느냐, 다시 말해 존슨을 택하느냐 피델을 택하느냐는 각자의 문제입니다. 

검사는 만일 제가 관용을 구한다면 패자를 재판하는 승자의 권리를 단념할 수도 있다는 이상한 말을 했습니다. 누가 감히 승자라고 얘기합니까? 누가 패자입니까? 체가 죽었기 때문에 체가 패자가 된 것일까요? 체는 이미 여러 해 동안 목숨을 위험에 내맡긴 채 살아왔으며 기적적으로 죽음만은 피해 왔습니다. 체는 습관처럼 말하기를, 자신의 죽음이라고 해서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며 그것은 단지 세계혁명 과정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우연한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피에서 씨앗을 움트게 하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달렸다고 했습니다. 세상에는 살아 있을 때보다 죽었을 때 더 무서운 힘을 떨치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그들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그들의 손과 몸을 갈기갈기 찢고 시체를 불태워서 그 재를 파묻는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이제 체 게바라는 우리 속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으며 혁명은 계속될 것입니다.

-레지 드브레, 1967년 (468쪽)

 

레지 드브레의 책은 딱 한 권, 그리고 모둠 속에 들어있는 짧은 글 한두 편 읽은 게 전부. 체 게바라를 만나고 돌아오다가 볼리비아에서 재판을 받을 때의 진술이 이번 책에 실려 있다. 맨 마지막 글은, 엮은이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던, 동유럽 공산주의 정권의 배반을 질타하는 글. 다 아는 내용이니 옮겨적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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