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미국과 중국 친구들이 국제사회를 위해 우정을 가지고 서로 협력하길 부탁합니다.”
코로나19에 기후 위기로 세계가 힘들어 하는데 양강(G2)이라는 미국과 중국은 연일 싸움만 한다. 답답함을 참다 못한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가 두 강대국에 ‘데탕트’를 촉구했다. 마이크로네시아의 데이비드 파누엘로 대통령이 지난 25일(현지시간) 유엔 총회 화상연설에서 두 대국을 향해 국제적 협력과 연대를 호소한 것이다.
앞서 유엔 총회 개막 첫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화상 연설에서 코로나19가 세계에 퍼진 것이 중국 책임이라 비난했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코로나19를 정치화하지 말라”고 맞받았다. 파누엘로 대통령은 미·중 경쟁이 “태평양 공동체의 오랜 유대와 안정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미국과 중국은 기후변화와 코로나19에 맞서 국제사회의 연대와 협력을 이끄는 공동 챔피언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마이크로네시아는 2차 대전 이래로 미국 영향권에 있는 나라이지만, 중국이 경제협력을 늘리면서 중국의 입김도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600여개의 섬으로 이뤄진 이 나라는 총 면적 700㎢에 인구는 10만3000명 정도다. 포르투갈, 스페인, 독일, 일본 등이 점령했다가 제2차 세계대전 뒤 잠시 미국이 통치하기도 했다.
1989년 중국과 수교했고 이듬해 수도 팔리키르에 중국 대사관이 문을 열었다. 2007년에는 베이징에 마이크로네시아 대사관이 생겼다. 중국과 관계가 깊어지고 있지만 산업이라고는 어업과 관광업 정도이고 미국의 원조가 정부의 1차적인 수입원이다. 해마다 미국이 1억1000만달러씩 주고 있는데 이 원조 협정은 2023년 종료된다. 마이크로네시아로서는 어선과 상선들을 보내는 중국도 중요하고, 원조를 해주는 미국에도 밉보여선 안될 처지다. 주변 섬나라들도 대개 사정이 비슷하다.
중국은 마이크로네시아를 비롯한 태평양 소국들에 원조를 내주면서 대만과 관계를 끊고 중국과 수교하게 하는 데에 치중해왔다. 2003년 ‘퍼시픽아일랜드포럼’을 만들어 섬나라들에 파트너십을 약속했으며 2006년에는 원자바오(溫家寶) 당시 총리가 경제원조와 관세 철폐, 부채 탕감 등 경제협력을 발표했다. 말라리아 치료제를 제공해주고 지역 관리·기술진 2000명을 불러다 중국에서 교육시키는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당시 원 총리는 중국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태평양 제도를 순방했다. 이어 2009년에는 우방궈(吳邦國) 당시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피지 등 4개국을 방문했고 이듬해에는 인민해방군 해군 대표단이 호주·뉴질랜드를 찾으면서 파푸아뉴기니, 바누아투, 통가도 방문해 시선을 모았다.
현재 오세아니아 14개국 가운데 호주, 뉴질랜드를 비롯해 10개국이 중국과 수교했다. 호주와 뉴질랜드를 빼고도 이 지역에는 파푸아뉴기니 8만명, 피지 2만명 등 중국인 이민자들이 상당수 들어가 있다. 중국이 적극적인 포섭에 나서면서 지난해 9월에는 대만 편이던 솔로몬제도가 결국 타이베이와 관계를 끊고 중국의 손을 잡았다. 올 6월에는 키리바시에도 중국 대사관이 문을 열었다.
지난해 7월 CNN 보도를 보면 중국은 피지에 1억4000만달러를 들여 도로를 보수해주기로 약속했고, 사모아에는 5200만달러 규모의 정부단지 건설을 제시했다. 바누아투에는 8100만달러를 투입해 항구를 보수해준다고 했다. 이 나라 연간 예산의 3분의1에 해당하는 돈이다.
하지만 마셜제도, 나우루, 팔라우, 투발루 4개국은 여전히 대만과 수교한 상태다. 모두 해수면 상승으로 바다에 가라앉을 처지가 된 나라들이다. 지난해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호주·뉴질랜드를 제외한 태평양 섬나라 인구의 20%는 외부 원조가 없이는 기본적인 식량과 생필품을 공급받기 힘들 정도로 빈곤율이 높다.
인구 수만~수십만 명에 불과한 소국들에 중국이 진출하면서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2006년 통가와 솔로몬제도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상업을 장악한 중국계에 대한 시위로 비화됐다. 또한 괌과 가까운 태평양 제도들은 미국 영향력이 큰 지역이다. 드넓은 태평양에서 아시아와 미국의 경계선을 이루는 섬들이라 면적·인구는 작아도 군사적 함의는 작지 않다. 이 지역에서 대만 대신 중국을 택하라는 베이징의 공세는 결국 미국과의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유엔 총회에서 미·중 갈등을 경계한 것은 마이크로네시아만이 아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세계가 두 열강의 경쟁 속에 말려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도 미국과 중국이 제각기 교역과 금융과 인터넷의 룰을 만들어 세계를 편가르기하려는 것을 거론하며 “두 경제대국이 세계를 ‘대분열’로 몰고가는 그런 미래는 용납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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