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감염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74)의 병세에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3일(현지시간) 백악관과 의료진은 대통령이 심각한 상태가 아니며 순조롭게 회복되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도 트위터에 동영상을 올리며 ‘건재’를 과시하려 애썼다. 일부 언론에서 ‘입원 초기 산소호흡기를 착용했다’고 보도했으나 백악관은 부인했다.
세계의 코로나19 감염자는 3500만명이 넘는다. 이 전염병에 걸린 국가 지도자도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은 아니다. 세계 정상 중 가장 먼저 감염된 사람은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56)다. 존슨 총리는 코로나19가 영국 전역에서 퍼지기 시작한 3월 확진을 받았고 상태가 악화돼 집중치료실(ICU) 신세를 졌다. 확진을 받기 전까지 그는 코로나19의 위험성을 경시했고 ‘강한 지도자’임을 과시하기 위해 의료시설 방문 때 사람들과 포옹을 하기도 했다.
존슨 총리는 완쾌했지만 영국의 코로나19 확산세는 심상찮다. 5월 이후 진정세를 보이다가 9월 중순부터 다시 감염자가 폭증하고 있고 현재 누적 감염자가 50만명에 육박한다. 특히 최근 일주일 동안은 매일 평균 6000명 이상씩 확진자가 늘었으며 4일에는 1만3000명에 이르러, 처음으로 1일 신규 확진자 수가 1만 명을 넘어섰다.
영국 정부는 6인 이상 모임을 금하고 식당 등의 영업시간을 줄였으며 일부 지역에는 록다운(봉쇄)을 실시하고 있다. 방역수칙을 소홀히했던 존슨 총리는 병을 앓고 난 뒤 크게 달라졌다. 그는 3일 “사람들이 지켜야 할 수칙을 따르지 않는 게 걱정스럽다”면서 자신은 이제 감염되기 이전의 “옛날 보리스(the old Boris)”가 아니라고 말했다. BBC방송 등은 존슨 총리가 최근 살을 빼기 위해 개인 트레이너를 불러 운동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비만은 코로나19 감염시 증세를 악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65)도 코로나19에 감염됐다. ‘트로피칼(열대지방) 트럼프’라 불리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코로나19 대응은 미국 트럼프 정부의 대응 못잖게 엉망진창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코로나19의 위험성을 무시했을뿐 아니라, 방역에 투입된 의료진에게 말라리아치료제 ‘하이드록시클로로퀸’ 처방을 강요했다. 이 갈등 때문에 팬데믹 국면에서 보건장관이 두 명이나 그만뒀으며 지금은 전직 군 장성이 보건장관을 맡고 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코로나19에 감염됐다가 회복된 뒤에도 ‘앓고 나니 별 것 아니다’라는 태도를 보였고, 전염병 대응 실패로 탄핵설까지 나오고 있다.
브라질의 누적감염자 수는 500만명, 사망자는 15만명을 향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브라질은 대통령을 비롯해 3부 요인이 모두 코로나19에 감염되는 ‘기록’을 세웠다. 3월에는 상원의장이, 7월에는 대통령이, 9월에는 연방대법원장과 하원의장이 확진을 받은 것이다. 또 장관급 각료 3분의1과 주지사 절반이 감염됐다.
온두라스의 후안 올란도 에르난데스 대통령(51)과 과테말라의 알레한드로 자마테이 대통령(64)도 감염됐다. 감염증에 강타당해 혹독한 ‘코로나 겨울’을 보낸 중남미의 확산세는 아직도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동유럽 아르메니아의 니콜 파시냔 총리(45)도 양성판정을 받았다.
러시아 하원의장은 지난달 22일 의원 50여명이 코로나19 확진을 받아 회복됐거나 치료 중이라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내 감염자가 다른 유럽국들보다 훨씬 적었던 지난 3월부터 강력한 봉쇄로 대응했고, 의료시설을 돌아볼 때에도 전신을 감싸는 방호복을 입었다. 모스크바 외곽 관저에 머물며 각료들과의 만남도 화상회의로 대체했다. ‘거리두기’를 너무 잘 지켜 오히려 감염 루머가 퍼지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감염된 사실이 알려지자 푸틴 대통령은 텔레그램에 “당신의 타고난 활력과 정신력, 낙관주의가 위험한 바이러스에 잘 대처하도록 도와줄 것이라 믿는다”는 응원글을 올렸다고 크렘린은 밝혔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도 전염병에 걸렸던 사람이 많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10대 때 당시로는 흔했던 디프테리아, 말라리아, 천연두를 모두 앓은 것으로 추정된다. 1793년 연방 수도였던 필라델피아에 황열병이 퍼지자 워싱턴 대통령은 도시를 떠나 피란을 갔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1863년 11월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연두에 걸렸다.
최근 ‘참전군인 비하발언’을 놓고 백악관과 한 판 붙었던 시사잡지 애틀랜틱은 코로나19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거짓말’을 날짜 순으로 정리하면서 “그는 자신이 걸릴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처럼 지구적인 전염병을 경시하다가 스스로 감염된 가장 유사한 사례는 우드로 윌슨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지 않은 1918년 스페인독감이 세계를 덮쳤다. 이 초대형 인플루엔자 때문에 2000만~5000만명이 숨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미국에서도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었으나 윌슨 당시 대통령은 위험을 무시했고 아무 대응도 하지 않았다고 USA투데이는 전했다.
스페인독감을 무시한 윌슨은 결국 감염됐다. 1919년 4월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지도자와 승전국 ‘4자 회담’을 하기 위해 파리를 찾은 윌슨 대통령이 인플루엔자에 걸렸으며 딸과 경호원들도 감염됐다. 그러나 대통령의 감염 사실이 대중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언론들 분위기도 ‘전쟁 뒤처리’를 위해 대통령의 건강 이상을 퍼뜨리지 않는 쪽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스페인독감에 대한 책을 낸 역사학자 존 배리는 CNN 인터뷰에서 “정부 지도자는 전염병을 과소평가하려는 경향이 있고 그것이 결국 피해를 악화시킨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스페인독감 당시에는 인플루엔자의 위험성이 지금처럼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고, 정부가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지금의 기준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고 CNN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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