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사면 구글 검색엔진이 기본으로 깔려 있다. 사용자가 별도로 설정하지 않으면 구글이 ‘디폴트’로 검색엔진 기능을 한다. 안드로이드폰은 물론이고, 애플 아이폰과 사파리 브라우저에서도 마찬가지다. 소비자가 선택을 고민하기도 전에 구글의 ‘독점’이 미리부터 결정돼 있는 셈이다.
이렇게 만들기 위해 구글이 휴대전화 제조업체 등에 수십억달러를 주고 사실상 ‘매수’를 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법무부는 구글을 20일(현지시간)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제소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상대로 낸 소송 이래 20여년만에 역사적인 반독점 소송에 착수한 것이라고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워싱턴 법원에 낸 법무부의 소장에 따르면 구글은 검색엔진 독점을 유지하기 위해 경쟁을 막는 여러 불법적인 전술들을 취해왔다. 구글 지주회사 알파벳은 자사 앱이 스마트폰에 판매 전부터 탑재될 수 있도록 스마트폰 제조사와 통신회사에 수십억 달러를 줬다. 수익을 나눠주겠다며 다른 앱 탑재를 방해하기도 했다. 안드로이드폰에서는 탑재된 구글 앱을 지울수조차 없다.
통계업체 스타트카운터에 따르면 세계 검색엔진 시장점유율은 구글이 92.3%로 압도적이다. 미국 시장만 놓고 보면 88%다. 법무부는 구글이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경쟁자들의 진입을 애당초 차단하는 불법적인 수단들을 쓴 걸로 봤다. 심지어 경쟁상대로 알려진 애플도 돈으로 포섭했다. 소장에 따르면 구글은 애플 브라우저 사파리에 구글 검색엔진을 디폴트로 까는 대가로 최대 110억 달러(약 12조5000억원)를 줬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알파벳 연수익의 3분의 1에 달하는 거액이라고 전했다. 아이폰 검색 트래픽은 구글 전체 검색의 절반을 차지한다.
법무부는 지난해 7월 구글을 비롯해 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등 정보·기술(IT) ‘빅4’의 반독점 조사에 착수했다. 올 7월에는 하원 법사위 산하 반독점소위가 이들의 경쟁 위반 행위를 비판하는 보고서를 내고 기업 대표들을 불러 화상 청문회를 열었다. 법무부는 이들의 독점이 결국에는 미국 정보기술(IT) 경쟁력을 갉아먹을 것으로 보고 칼을 빼들었다. 제프리 로젠 법무차관은 “정부가 개입해 경쟁을 확보하지 않으면 다음번 혁신의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글 법무책임자 켄트 워커는 이 소송에 결함이 많다며 “사람들은 강요당하거나 대안이 없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해서 구글을 쓰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성명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시리얼 업체가 매대 앞쪽에 제품을 놓이도록 슈퍼마켓에 판촉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규제가 커지면 구글 제품값이 비싸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터넷 독재’에 가까운 구글의 독점적 지위에 대한 문제제기는 오래전부터 나왔다. 검색엔진만이 아니다. 컨설팅업체 GO글로브 등의 통계를 보면 구글의 유튜브는 세계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시장의 80%를 차지한다. 구글 브라우저 크롬의 시장 점유율은 70%에 이른다. 또한 구글의 알고리즘에는 전 세계 사용자들의 검색 행태, 웹사이트 이동, 클릭량 등 개인정보가 활용된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구글 서비스를 거부하자는 ‘디구글(DeGoogle)’ 운동까지 벌어졌다.
지역정보 검색업체 옐프와 여행서비스 트립어드바이저 등은 2015년 구글이 검색에서 구글페이지를 우선적으로 띄운다고 공개비난했다. 지난해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던 털시 개버드 하원의원은 구글이 검색결과에서 자신의 정치광고가 후순위로 밀리게 조작했다며 소송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법무부 소송에는 ‘검색편향(search bias)’, 즉 구글이 검색 결과에 개입하는 문제는 포함되지 않았고 경쟁 방해 행위에만 초점을 맞췄다.
구글이 소송을 당하거나 벌금 폭탄을 맞은 것은 여러번이다. 2015년에는 어도비, 애플, 인텔과 함께 ‘직원 스카우트 담합’ 혐의로 기소돼 4개사가 4억1500만달러의 합의금을 냈다. 2017년 6월에는 구글 광고가 검색결과 상위에 뜨게 한 것을 문제삼아 유럽연합(EU)이 벌금 24억유로를 물렸다. 2018년 7월 EU 집행위는 반독점법 위반으로 다시 43억달러 벌금을 부과했다. 이번에 미 법무부가 문제삼은 스마트폰 앱 선탑재 때문이었다. 2019년 3월에도 EU는 경쟁자들의 온라인 광고시장 진입을 막았다며 15억유로 벌금을 매겼다.
2018년 10월에는 구글이 사용자 정보를 앱 개발업체들에 내주는 것에 대해 미국에서 집단소송이 제기됐다. 소송은 올 7월 750만달러 합의금으로 종결됐으며, 구글이 원고들에게는 1인당 5~12달러를 주는 상징적인 배상에 그쳤다. 지난해 1월에는 프랑스 규제당국이 “사용자 정보를 이용해 개인 맞춤형 광고를 제시하는 것은 EU 반독점 규정 위반”이라며 5000만유로 규모의 소송을 냈다.
그럼에도 미국에서 구글이 본격적인 반독점 소송에 부딪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언론들은 구글이 창립된 해인 1998년에 벌어진 MS 반독점 소송과 비교하고 있다. 당시 문제가 된 것은 컴퓨터를 사면 자동으로 깔려 있는 운영시스템(OS)을 비롯한 MS 소프트웨어의 번들(묶음)이었다. 당시 MS가 썼던 수법도 구글과 비슷했다. 델 같은 대형 컴퓨터제조업체들과 담합해 웹브라우저 익스플로러와 미디어플레이어, 메신저 등 자사 제품들을 디폴트로 설치하게 했던 것이다. 타사 소프트에어를 탑재하는 업체들에게는 불이익을 준다며 압박하기도 했다.
2000년 4월 법원은 MS가 독점금지법을 위반했다고 판결하면서 회사를 2개로 분할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2001년 조지 W 부시 정부가 들어선 뒤 MS는 법무부와 타협해 회사 분할을 피했다. 2002년 법원이 MS에 공정한 경쟁을 보장할 조치들을 명령하면서 소송은 종결됐다.
구글 소송도 비슷한 전철을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법정 다툼과 협상이 길게 이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20일 나스닥시장에서 구글 주가는 오히려 1.4% 뛰었다. 구글은 2012년에도 반독점 제소 위기를 맞았으나 별 타격을 받지 않았고, 그후 구글 주가는 3배로 뛰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현재 구글의 시가총액은 1조 달러에 육박한다. 미 정치권에서 빅4의 독점·담합에 대한 조사와 함께 연방법규를 정비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IT 기업들의 로비를 넘어서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 언론들은 이번 소송을 대선과 연결짓고 있다. 주로 공화당 주지사들이 있는 11개 주가 법무부의 이번 소송에 동참했으나 거대기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감을 선동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더 커 보인다. 워싱턴포스트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대선을 코앞에 두고 구글 소송이라는 뉴스를 터뜨린 것으로 해석했다. 공개시장연구소(OMI)의 샐리 허바드는 이 신문에 “다음 정부를 기다리지않고서 임기가 끝나는 시점에 반독점 소송을 낸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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