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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수상한 GPS’]'외교전문가' 바이든, 중국선 "큰 기대는 금물"

딸기21 2020. 11. 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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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조 바이든 당시 미 부통령(오른쪽)이 워싱턴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국무부 오찬에서 건배를 하고 있다.  AP

 

정보·외교 분야에서 오래 일했던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을 제외하면, 빌 클린턴과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등 지난 30년 동안 미국 대통령을 지낸 이들 가운데 국제·외교 이슈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사람은 없었다. 이번 대선에서 당선을 확정지은 민주당의 조 바이든은 다르다. 미국의 몇몇 언론들은 아버지 부시 이후에 외교 문제를 가장 잘 아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평한다.

 

바이든은 상원의원이 된 뒤 한동안 법사위원회에서 활동하다가 1997년부터 외교관계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공화당 정부의 외교정책에 반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민주당의 ‘당론’에 반대되는 발언도 거침없이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 테면 1991년 걸프전에 반대했으나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는 찬성했다. 1990년대 보스니아 내전 때에는 맨 먼저 무기 금수조치와 군사공격을 주장했지만 2003년 이라크 침공 때에는 맨 앞에서 반대했다. 외교정책에 대한 그의 노선은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로 분류된다.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같은 보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민주국가들이 다른 주권국가의 일에 때로는 무력을 써서라도 개입할 수 있다는 것으로,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라 불리기도 한다.

외교 문제에 대한 바이든의 그런 입장은 이번 대선에서 내세운 ‘미국이 다시 이끌어야 한다(America Must Lead

 

Again)’는 구호로 요약된다. 올 1월 포린어페어스에 바이든이 직접 기고한 에세이의 제목이기도 하다.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미국 우선주의와 일방주의를 요약한 구호였던 것과 대비된다. 바이든 측이 ‘다시 세계를 주도하는 미국’을 만들기 위해 키워드로 내세운 것은 ‘도덕적 리더십’이다.

 

2011년 8월 중국을 방문한 조 바이든 당시 미 부통령(왼쪽 두번째)이 쓰촨성 두장옌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오른쪽 두번째)과 관개시설을 둘러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FP

 

무엇보다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앞으로의 미·중 관계다. 중국에 대한 바이든의 관점은 트럼프 정부와 맥을 같이하는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다. 바이든은 2001년 상원 외교관계위 의원들을 이끌고 베이징을 방문, 중국 정부와 협상하며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할 수 있도록 발판을 놔줬다. 중국에 무역 최혜국지위를 주는 것에도 찬성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중국에 대한 바이든의 발언들은 계속 강경해졌다.

 

트럼프의 선동과 미국 유권자들의 반중국 감정에 대응하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중국의 도전에 대한 미국의 위기의식이 그만큼 커졌다는 반증으로도 볼 수 있다. 로이터는 8일 “중국이 바이든에게서 ‘소프트 터치’를 기대하긴 힘들 것”이라고 썼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을 경계한다는 점에서 “바이든의 대중국 정책은 트럼프 정부의 정책과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반면 포린폴리시는 “바이든도 대중국 강경파이지만 트럼프와는 다르다”며 차별점에 주목했다. 바이든과 그 주변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중국을 견제하고 싶어하지만, 미·중 관계의 틀을 흔들 필요는 없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전통적 우방들과의 관계를 더 강화하고, 국제기구에서 기여도를 높이고, 다자 위기관리 체제를 튼튼히 하고, 인권과 기후변화 등에서 미국의 도덕적 리더십을 강화하는 것이 중국에 맞서면서 미국의 위상을 지키는 길이라고 본다.

 

트럼프 정부 4년 간 미국은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였고, 세계 경제를 불안감 속으로 몰아넣었다. 바이든은 인권과 안보에선 강경한 입장이지만 중국과의 경제적 대립은 무모하고 유해하다는 견해를 계속 밝혀왔다. 지난 2월 민주당 대선후보 토론에서 바이든은 시진핑(習近平) 정권의 위구르족 탄압 등 인권문제를 맹비난했다. 하지만 5월 연설에서는 미국의 경제문제를 모두 중국 탓으로 돌리는 트럼프를 향해 “중국이 우리 도시락을 빼앗아먹는다니, 이 사람아!”라며 일축했다.

 

미국에서 조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면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벌여온 중국과의 무역전쟁은 다소 완화되겠지만, 관세 협상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중국 언론들은 내다봤다. 사진은 중국 동부 장쑤성 롄윈강의 항구에 쌓여 있는 수출용 컨테이너들이다.  AFP

 

바이든 주변에서 외교정책을 자문해온 이들의 시각도 대체로 비슷하다. 오바마 정부 때 국무부 차관을 지낸 제임스 스타인버그, 외교전문가인 앤-마리 슬로터 프린스턴대 교수, 수전 라이스 전 유엔 대사, 애브릴 헤인스 전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 제이크 설리번 전 부통령 안보보좌관, 미셸 플러노이 전 국방부 차관 등은 트럼프식 적대정책 대신에 공통의 이슈에서 중국과 협력하며 국제사회의 파트너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견해를 밝혀왔다. 라이스, 헤인스, 설리번, 플러노이 등은 바이든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들이다.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면 극으로 치닫던 미·중 무역갈등은 다소 수그러들 가능성이 높다. 바이든 승리가 굳어진 지난 6일 중국 증시는 급등했다. 인도와 중국 간 국경분쟁에서 트럼프 정부가 인도를 부추긴 것 같은 행위도 줄어들 것이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민감한 양국 관계에 숨 쉴 공간이 생기고 고위급 소통 재개와 양국 간 전략적 신뢰 재건에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라는 전문가들 분석을 실었다. 이 신문은 “생필품 등 무역 마찰로 미국 국민이 피해를 보는 분야에서는 관세 전쟁이 누그러질 수 있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장기적이고 어려운 협상이 필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막말 싸움과 극한 대립은 피해나갈지 몰라도,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라는 큰 구도가 바뀌지는 않는다. 아시아를 무대로 벌어지는 G2의 패권 다툼과 남중국해와 서태평양 방어선을 둘러싼 대립과 군비 경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면 홍콩·신장위구르 인권 이슈를 더 부각시킬 수도 있다.

 

푸단대 미국학센터의 신창 부소장은 환구시보에 “코로나19 백신 개발이나 기후변화 대응에서 중국과 미국이 실용적인 협력을 재개할 것”이라며 “몇몇 대화 메커니즘이 재가동되겠지만 신뢰를 다시 쌓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인민대 진칸룽 국제학부 부학장은 바이든 당선 이후 양국 관계에 ‘버퍼링 기간’이 있을 것이라며 “바이든은 외교 문제에서 좀 더 온건하고 성숙한 태도를 보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면서도 “바이든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걸면 안 된다”면서 “중국을 억제하는 것은 미국 양대 정당 사이의 전략적 공감대”라고 말했다.

 

지난 4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한 남성이 미국 대선 소식을 담은 신문을 팔고 있다.  타이베이 로이터연합뉴스

 

대만 문제도 변수다. 리처드 닉슨 행정부 때 중국과 수교한 뒤 미국은 대만을 독립국가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하는 태도를 취해왔다. 그러면서도 ‘대만관계법’을 만들어 대만을 배려해줬다. 또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를 중국과의 관계에서 지렛대로 써왔다. 특히 트럼프 정부는 대만에 잇달아 무기를 내주며 중국을 자극했다. 특히 지난해의 F16 전투기 판매에 중국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인민일보는 “차이잉원 총통에게는 선물이겠지만 대만인들에게는 재난이 될 것”이라고 썼다. 트럼프는 대통령 당선자 때부터 차이 총통과 통화하며 ‘대만 지도자와는 전화도 방문도 하지 않는다’는 중국과의 묵약을 깼다.

 

바이든은 1979년 대만관계법에 찬성한 의원 중 하나였고, 중국을 압박해서 국제 규범을 따르게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지난해 초 차이 총통이 재선됐을 때에는 가장 먼저 축하 인사를 보낸 미국 정치인 중에 끼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양안관계에 대한 바이든의 생각은 ‘예스도 노도 하지 않는다’는 전통적인 전략적 모호성 개념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현상유지를 선호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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