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딸기의 하루하루

광화문의 아랍 건축, 그리고 오만 이야기

딸기21 2021. 6. 7. 13:27
728x90

서울 광화문, 한글길을 살짝 올라가면 한국에서 보기 드문 아랍풍 건물이 보입니다. 주한 오만대사관입니다. 

아마 지나치는 분들 모두 한번씩 고개를 돌려 쳐다봤을 겁니다. 건물이 정말 이쁘거든요. 이국적인 모양새 때문에 '들어가서 구경하고 싶다'고 늘 생각했는데, 며칠 전 기회가 왔습니다!

 

그날 날씨가 정말 좋았는데 사진은 왜 이모양이야 ㅠㅠ

 

이란 전문가인 구기연 박사님 덕분에 중앙일보 채인택 선배, 한겨레 조일준 기자와 함께 오만대사관을 방문했습니다(이분들과 친하게 지내면 즐거운 일이 좀 생깁니다 ㅎㅎ).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당연히 문. 아랍/이슬람 건축에서 가장 예쁜 것은, 아니 어느 곳의 건축을 찾아가도 가장 마음에 담기는 것이 제 경우에는 문이더라고요.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지하로 내려가 대사관 건물 안으로 들어갑니다. 

 

 

실내도 이쁘죠? 넓지 않은 로비를, 작은 오만 박물관처럼 꾸며놨습니다. 서울에 있는 대사관들을 몇 군데 가봤지만 오만대사관은 특히 아기자기하고 이뻤어요.

 

한 층 올라가 대사님 집무실에서 자카리야 알사아디(Zakariya Hamed Al Saadi) 대사님을 만났습니다. 정말 맛있는 오만산 대추야자를 쟁반 가득 내주셔서 열광적으로 집어먹었습니다. 대추야자는 언제나 사랑이고 진리입니다. 터키쉬 커피와 인도식 차이를 마시며 ^^ 1시간 정도 대화를 했습니다. (영어로......... 힘들었어요 ㅠㅠ) 싱가포르에 계셨던 모양이고, 한국에 온 지는 1년 반밖에 안 되셨다고 합니다. 소탈하고 친절한 분이셨어요. 

 

이왕 방문했으니 대사님과의 인증샷도. ㅎㅎ (마스크는 사진찍느라 잠깐 벗은 겁니다!) 구기연 박사 트위터

 

2011년 지어진 대사관은 중앙일보 기사에 따르면 '793㎡ 대지에 지하 3층, 지상 5층 규모'이며 '국내 유일한 아랍풍 대사관'입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건축가 다비드 피에르 잘리콩이 설계했고, 시공은 한국 건축회사에서 했다고 합니다. 대사님께 건물에 대해 여쭤봤습니다. 건축가가 오만을 방문해 현지 건물들을 관찰하고 특색을 살렸다고 설명하면서, 오만 건축물 화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럼 말 나온 김에 오만 건축물들을 구경해볼까요.

 

술탄 카부스 그랜드 모스크.  www.makemytrip.com
내부는 이렇게 생겼군요. 정말 가보고 싶네요.  theculturetrip.com
수도 무스카트의 오페라하우스.  theculturetrip.com

 

저런 건물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래 전에 지어진 진흙 성채와 요새들도 있고, 초미래적인 건물들도 지어지고 있습니다.

 

16~17세기 포르투갈의 영향이 스며 있는 니즈와 요새(Nizwa Fort).  theculturetrip.com

 

오만은 아라비아 반도 동남쪽에 있는 나라입니다. 수도 무스카트가 있는 오만만에서 더 깊숙이 들어가면 우리에게도 익숙한 '걸프(페르시아만)'와 호르무즈 해협이 나옵니다.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나라이고, 오랫동안 인도-아랍-동아프리카의 인도양 문화권과 교역을 이끈 나라이기도 했습니다. '오만 술탄국(지금도 공식 명칭은 같습니다)'은 17세기 후반부터 19세기까지 걸프와 인도양의 상업망을 놓고 포르투갈, 영국과 경쟁하던 강력한 제국이었습니다.

 

동아프리카 해안의 교역 중심지였던 잔지바도 오만령이었습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에 술탄의 두 아들이 권력다툼을 벌이다가 무스카트 쪽과 잔지바 쪽이 나뉘는 일이 생겼고... 영국의 사실상 점령통치를 거치며 잔지바는 영국령 탕가니카로 넘어갔다가 지금은 탄자니아 땅이 됐지요. 하지만 오만이 독립국가 지위를 잃은 적은 없습니다.

 

 

면적 309,500제곱킬로미터, 인구 370만명. 걸프의 다른 나라들이 그렇듯이 아랍인들 외에 파키스탄 쪽에 뿌리를 둔 발루치족, 그리고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등 남아시아계와 아프리카계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주민 60%가 외국 국적의 이주자인데, 이 정도면 UAE나 카타르 같은 곳들보다는 자국민이 많은 편이죠.

 

종교적으로는 무슬림이 86%이고 기독교도가 6.5%, 힌두교도 5.5% 등등인데 특이하게도 오만의 무슬림은 순니파도 쉬아파도 아닌 '이바디'라는 종파입니다.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20년, 약 650년 무렵에 형성된 이바디는 순니와 쉬아가 갈라지기 전에 형성된 종파이고 주로 오만에만 존재합니다. 이런 점이 걸프 아랍국들과 이란 사이에서 오만이 중재자 역할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된 측면도 있고요.

중동의 여러 이슈에 대해 글을 써왔지만, 사실 오만에 대해서는 별로 뉴스를 전한 적이 없습니다. 신문에 흔히 실리는 것은 시끄럽고 어수선한 소식들이지요. 분쟁이나 정치적 갈등, 혹은 중동의 경우 에너지 문제 등등. 오만은 분쟁도 없고 정치적으로도 안정돼 있는 나라여서, 상대적으로 미디어에 등장할 일이 없었습니다. 지난해 술탄 카부스가 타계했을 때 기사를 쓴 기억 정도.

 

[구정은의 '수상한 GPS']자식도 형제도 없던 술탄…오만의 왕위 승계와 미-이란 관계

 

[구정은의 '수상한 GPS']자식도 형제도 없던 술탄…오만의 왕위 승계와 미-이란 관계

반세기 동안 권좌를 지켰던 오만의 술탄이 세상을 떠났다. 자식도, 형제도 없는 술탄의 타계 뒤 권력승계가 어떻게 이뤄질 지 관심이 집중됐으나, 생전에 남긴 ‘편지’가 개봉되면서 곧바로 사

ttalgi21.khan.kr

 

1970년부터 2020년까지 50년 동안 집권한 술탄 카부스는 명실상부 현대 오만을 만든 인물입니다. 대사님 설명으로는 술탄 카부스가 집권했을 때 오만에는 "학교는 3개가 있었고 (현대식) 병원은 하나도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런 오만을 현대화하는 동시에, '걸프의 중재자'로 만든 사람이 카부스였습니다. 

 

다른 걸프국들처럼 오만도 산유국이고, 에너지 수출에 경제를 의존하고 있습니다. 추정 매장량 55억배럴, 세계 25위입니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라크, 이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처럼 막대한 양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래 전 읽은 에너지 관련 책에 따르면 걸프 산유국들 가운데 가장 먼저 산유량의 정점(피크)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에(예측대로라면 이미 지나갔습니다) 그들 가운데 가장 먼저 탈석유 경제로의 전환을 추진하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지금 오만의 상황은?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구매력 기준 1인당 GDP 47,300달러(2018년). 반면 CIA월드팩트북에는 27,300달러(2019년)로 차이가 많이 나네요. 주변 산유 부국들처럼 흥청이지는 않지만 무엇보다 안정돼 있고, 교육 수준 높고, 특히 여성 교육율 높고요. 지난해 술탄 하이삼이 즉위했고 카부스 시절처럼 정치적으로는 매우 안정돼 있습니다만 코로나19와 유가 하락에 따른 경제적 타격이 적지 않겠지요.

 

바닷가를 거니는 낙타들.  BJOERN LAUEN/GETTY

 

"둘은 바다로 향한 바람 잘 통하는 방으로 커피뿐만 아니라 대추야자와 사과, 오렌지, 그리고 카르다몸과 생강, 비스킷 맛이 나는 겉이 바삭한 수리 특산 젤리과자도 내왔다. 우아함 면에서는 오만인의 손님상에 견줄 만한 것이 없다. 정확하게 자른 과일, 장식용 냅킨을 깐 우아한 그릇에 담긴 대추야자, 맛과 향을 음미하며 적절하게 빨리 마셔야 하지만 들릴 정도로 후루룩 소리를 내서는 안 되는, 아주 작은 컵에 4분의 1만 채운 커피."

 

다시 대사관 이야기로 돌아가서.

 

위에 인용한 것은 올초에 읽은 팀 매킨토시-스미스의 <아랍>에 나온 구절입니다. 그 책에서 저는 오만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대사관 방문에서 그 기분을 약간이나마 맛본 것 같아서 정말 좋았답니다.

 

오만대사관의 전시품.

 

대사관을 나오기 전, 아랫층 미니 박물관에 전시된 것들을 대사님이 소개해주셨고, 나올 때는 선물도 주셨습니다. 정말 너무너무너무 마음에 드는 선물, 바로 frankincense! 동방방사가 선물로 가져갔다는 유향입니다. 실은 대사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유향 냄새가 가득했어요. 

 

저것이 유향!

 

언젠가는 오만에 꼭 가보고 말리라!

 

무스카트의 무트라 수크. 브로셔가 이뻐서 한번 찍어봤어요.

728x90

'이런 얘기 저런 얘기 > 딸기의 하루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 산책  (0) 2022.05.12
[근교 카페] 강화도 조양방직  (0) 2021.07.26
신문기자 일을 그만뒀습니다  (4) 2020.12.26
보스턴고사리  (0) 2019.08.04
목사님을 만나고 온 날  (0) 2019.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