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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문화] 전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딸기21 2021. 8. 5.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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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국제 전문 저널리스트)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의 시위를 진압했다. 팔레스타인 정치조직 하마스는 보복으로 로켓포를 쐈다. 이스라엘은 그에 대한 보복으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폭격했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방어권’을 강조하면서, 물밑에서 휴전을 중재했다. 휴전이 성사됐다. 하지만 그 사이에 숨진 사람들은? 그들의 생명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2021년 5월 벌어진 일이다.

 

전쟁, 분쟁, 평화. 이런 단어들을 떠올리면 항상 막막하다. 이반 일리치는 ‘평화의 근원적 의미를 생각한다’라는 강연에서 “평화는 시대와 문화영역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갖고 있고, 문화영역 내에서도 중심부와 주변부에서 서로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며 “중심부에서는 ‘평화의 유지’가 강조되지만, 주변부 사람들은 ‘평화로이 내버려두어져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말한다. “평화는 결코 수출할 수 있는 게 아니며 옮겨가면 타락한다”고, 그러니 평화를 옮겨심는 것은 실제로는 전쟁을 의미한다고. 이번 세기의 두 차례 전쟁, 미국이 일으킨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은 ‘평화와 민주주의를 이식하겠다’는 강대국의 오만이 어떤 비극을 낳는지를 보여주는 실례였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평화에 비하면 전쟁이 차라리 좀 더 이해하기 쉬운 개념일 수 있다. 대규모로, 조직적으로 살상을 저지르는 것. 그러나 이 또한 그리 단순하지 않다. 국가 간의 전쟁, 한 국가 안에서 벌어진 내전, 비국가 행위자와의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 인명 피해가 없거나 적은 시위성 무력 충돌 등등. 어떤 상황을 전쟁/내전으로 규정하느냐, 혹은 유혈사태나 분쟁이라 부르느냐, 그 전쟁/내전/분쟁에 어떤 행위자와 지역의 이름을 붙이느냐는 정치적으로 결정된다. 그 명명 자체가 전쟁/분쟁의 한 요소가 되곤 한다.

 

대체로 우리가 들어본 ‘전쟁’은 국가 간 전쟁을 가리킬 때가 많다. 1948년부터 산발적으로 벌어진 아랍과 이스라엘의 ‘중동전쟁’, 식민지 민족해방 투쟁과 내전을 거쳐 냉전 시기 강대국과의 싸움으로 확대된 베트남 전쟁, 냉전 역사의 한 국면이었고 사회주의 제국의 몰락을 가속화한 소련의 아프간 전쟁, 미국의 대리자와 냉전 구도를 거부한 이슬람 공화국 간에 벌어진 이란-이라크전쟁, 냉전의 종식과 함께 미국 단일패권이 이끄는 ‘신세계질서’의 선전장이었던 걸프전. 이 유명한 전쟁들 중에 어떤 것들은 지나간 역사가 됐지만 어떤 것들은 여전히, 혹은 모습을 조금씩 바꾸면서 지금도 세계를 들쑤신다. 

 

미국이 2001년 아프간을 공격한 것은 ‘9.11의 기획자’로 불리는 빈라덴을 탈레반 정권이 숨겨주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전쟁은 특정 국가의 국민 전체에 대한 징벌적 공격이었다. 

 

빈라덴은 아프간이 아닌 파키스탄에서 10년 뒤 사살됐다. 그러나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다시 10년이 흘렀다. 이유는 아프간 내부 상황에 있다. 미국이 군정을 거쳐서 아프간 ‘민주정부’를 출범시켰으나  취약하기 그지없었다. 무장조직들이 판친 것이 약 40년, 전쟁에 지친 국민들은 평화와 안정을 바라지만 경제는 굴러가지 않는다. 달리 먹고 살 길 없는 젊은이들, 부족주의와 이슬람 극단주의에 물든 젊은이들에게 무장조직은 가장 가까운 선택지다. 

 

더 이상 전쟁에 투입할 돈이 없어진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아프간의 ‘해법’으로 선택한 것은 탈레반과의 협상이었다. 골자는 아프간 정부에서 탈레반이 권한을 갖고 권력을 분점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 대신 탈레반은 미군을 공격하지 않고, 미군과 나토군이 무사히 나가게만 해주고, 아프간 정부와 국가재건 협상을 해야 한다. 탈레반을 없앤다며 20년 전쟁을 해서 결국 탈레반에 ‘다시 권력을 줄테니 싸우지 말자’고 하는 꼴이다. 

 

미국의 조 바이든 정부는 전쟁 20년인 2021년 9월 11일까지 미군 철수를 완료하겠다고 선언했다. 거기 사는 사람들에게는 평화와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문제는 탈레반의 극단주의다. 이들은 이슬람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자신들만의 극단적인 이슬람법을 주장하며 사람들을 억압한다. 특히 극악한 여성차별은 악명 높다. 그런데 다시 탈레반에 정권의 한 축을 맡긴다고 한다. 아프간 전쟁에 들어간 미국의 비용은 2조달러가 넘고, 미군과 연합군 사망자가 3500명에 이른다. 아프간군 6만명, 민간인 4만명, 탈레반 7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전쟁은 왜 했던 것일까.

 

뱅크시, #WithSyria 캠페인

 

모든 전쟁은 아프다. 또다른 내전 얘기를 해보자. 2011년, 그 전 해 겨울부터 튀니지를 시작으로 ‘아랍의 봄’ 민주화 혁명이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뒤흔들었다.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 ‘40년 정권’이 무너졌다.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도 무너졌다. 이집트에서는 군부가 재집권했지만 다행히도 내전은 없었다. 다시 권위주의 통치로 돌아갔을 뿐. 그러나 리비아에서는 카다피를 몰아낸 진영이 둘로 갈라졌고, 지금도 산발적인 교전이 이어지고 있다. 

 

정말 마음 아픈 곳은 시리아다. 이 나라에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집권한 세습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가 2020년부터 철권통치를 하고 있다. 아랍의 봄 분위기 속에 시작된 시리아의 민주화 운동은 ‘봄’을 맞지 못했다. 내전이 시작됐다. 2013년 아사드 정권은 자국민을 상대로 화학무기 공격까지 저질렀으나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에 지친 미국과 세계는 적극적으로 개입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4년부터 이슬람국가(IS)라는 극단조직이 판을 치고 세계 곳곳에서 그 추종자들이 테러를 저지르자, 서방은 시리아 ‘민주화 내전’은 외면한 채 IS 소탕에만 초점을 맞췄다. 2019년 11월 미군이 IS의 우두머리를 사살함으로써 이들과의 싸움은 끝났다.

 

그러나 시리아의 민주주의는? 내전은 아사드의 승리로 귀결됐다. 시리아 인구 2400만 명 가운데 660만 명이 나라를 떠나 난민이 됐다. 670만 명은 자국 내에서 피란길에 오른 국내유민(IDPs)이 됐다. 인권단체들은 10년 간의 내전에서 40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한다. 그런데 아사드는 건재하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지구 상의 누군가는 죽고 있다. 사하라 사막 남쪽 변경지대, 아프리카의 ‘사헬’ 지역에 있는 말리와 니제르 등 국지적인 분쟁지역은 많다. 그러나 세계의 관심은 ‘편파적’이다. 사람들이 어떤 전쟁, 분쟁에 관심을 두게 만드는 요인은 뭘까. 우리와의 관계, 심리적 친밀도, 지정학적 중요성, 경제적 이해관계. 이 모든 것들은 ‘판돈’이라고 부르면 너무 저열하게 들릴 지도 모르겠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들 한다. 평화를 생각하려면 ‘알아야’ 한다. 하지만 어떤 사안에나 그렇듯,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항상 무언가가 끼여든다. 대표적인 것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다. 지금은 이 이슈의 연원이나 이스라엘의 악행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의 극우 시위대들은 성조기와 함께 이스라엘 국기까지 서울 복판에 들고 나와 시위를 하곤 한다. 분쟁과 상관 없이, ‘유대인들은 머리가 좋다’ ‘세계를 움직이는 유대인들’ 같은 신화가 존재한다. 미국의 영향을 받은 특정 종교집단들이 퍼뜨리는 이데올로기에, 민족/인종집단을 하나의 특성으로 규정하는 인종주의적 발상이 합쳐져서 분쟁에 대한 이해를 막고 역사를 왜곡하게 만든다.

 

케테 콜비츠, <Die Eltern>

 

세계는 이어져 있으며, 눈과 귀를 열어 좀 더 많이 보고 들을수록 인식의 폭과 함께 공감과 연대의 지평도 확장된다.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인권과 평화에 대한 관심과 연대 의식을 갖자고 하면 뜬구름잡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인식은 이미 그렇게 넓어져왔다. 무엇보다 정치사회경제적 발전이 한국사회의 관심 폭을 넓혀줬을 것이다. 또 하나의 요인은 세계화다.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때로는 아주 직접적으로 ‘우리의 일’이 된다. 교역을 통해, 파병을 통해, 혹은 난민이라는 존재를 통해. 

 

한국은 그동안 파병을 꽤 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다산부대와 자이툰부대 등을 보냈고, 레바논과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는 지금도 동명부대와 아크부대가 들어가 있다. 다만 베트남전을 제외하면 한국 파병군의 임무는 전투가 아닌 평화유지활동과 군사협력지원으로 제한돼 왔다.

 

그 중에는 1990년대 말 동티모르 독립국가 수립 당시 상록수부대의 평화유지활동처럼 매우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남의 나라에 군대를 보낸다는 것은 대단히 큰 이슈다. 사회 전반에서 전쟁과 평화를 어떻게 보느냐,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의 책무를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문제와 총체적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자연재해나 분쟁으로 위기에 빠진 이들에게 군대를 보내 돕는 것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우리가 맡아야 할 몫일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요건을 매우 면밀히 따져보고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아프간의 경우 유엔이 국제치안유지군 결성을 승인했지만 이라크는 미국의 터무니없는 침공에 한국이 군대를 보내준 것이었다. 2020년, 한국은 또다시 호르무즈에 파병을 했다. 정부는 ‘파병’이 아니라 소말리아 해적소탕 작전에 투입된 청해부대를 ‘재배치’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호르무즈에 파병하면 남·북·미관계를 푸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다. 남의 전쟁이 나의 평화의 도구가 될까. 그게 가능했다면 베트남에, 아프간에, 이라크에 군대를 보냈을 때 진작 평화라는 전리품을 받아들고 왔을 것이다. 나의 이익을 위해 남을 해쳐선 안된다. 행위의 주체가 개인이 아닌 민족과 국가라 해도 윤리의 잣대는 같아야 한다. 남에게 총부리를 들이대도 되는 이익 따위는 없다.

 

전쟁과 범죄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그 사회의 이후의 방향을 정하는 중요한 준거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베트남전조차 아직까지 제대로 대면하지 못하고 있다. 베트남전은 파병을 국익과 연결짓는 논리의 출발점이었다. 전쟁의 금전적 이득이 윤리를 누르게 만들었고, 전쟁의 동기와 전쟁범죄에 대해 한국인들이 제대로 인식하고 사회적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하게 막아왔다. 

 

한국사회에서 전쟁에 대한 인식은 이중적이다. 한국전쟁을 겪은 나라로서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 공식적인 논리이지만, ‘반전평화’는 좌파들의 주장으로 치부된다. 전쟁을 막아야 한다고 말하면, 비현실적인 몽상이라고 반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인류 역사상 전쟁이 없는 때는 없었다’고들 한다. 하지만 세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쟁을 겪지 않고 평생을 살아간다. 특히 2차 대전, 한국전쟁 등을 겪지 않은 세대가 이 지구상에 훨씬 더 많다. 

 

시민들이 나서면 전쟁을 막을 수 있을까? 최소한 전쟁의 모습을 바꿀 수는 있다. 전쟁범죄 등 국제법을 어기는 행위가 일어나는지 감시하고, 지나치게 파괴적인 무기를 쓰지 못하게 하고, 전쟁 기간을 줄이게 할 수는 있다. 세계인이 나서면 전쟁의 모습은 바뀐다.

 

<출판문화> 2021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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