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 누가 파키스탄에 홍수를 일으켰나

딸기21 2022. 9. 1.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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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에서 큰 홍수가 났다. 6월부터 계속된 물난리로 지금까지 1200명 가량 숨졌는데 그 중 400명 가까이가 아이들이다. 피해를 입은 사람은 3300만명, 2억 4000만 인구 가운데 15%가까이가 영향을 받았다. 가라앉거나 부서진 집이 100만 채가 넘고, 30만명 이상이 지금 천막에서 이재민 생활을 하고 있다. 가축도 100만 마리 이상 죽었다고 한다. 경제적 손실은 100억달러, 약 13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셰바즈 샤리프 총리는 “파키스탄 역사상 최악의 홍수”라면서 8월 25일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Locals are aboard a boat in a flooded area in Hyderabad. — Photo by Umair Ali / DAWN



파키스탄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몬순으로 1961년 기록이 시작된 이래 가장 많은 비가 쏟아졌다. 아라비아해와 면한 신드 주와 발루치스탄 주의 피해가 특히 컸는데, 이 두 지역의 강우량은 어마어마했다. 신드에는 이번에 8월 평균 강우량의 8배, 발루치스탄은 5배에 이르는 비가 왔다. 방글라데시와 인도 쪽도 물론 강우량이 많았고.

 

[DAWN] WHO says 6.4 million in dire need of humanitarian aid

 
원래 남아시아는 열대성 강우인 몬순이 여름마다 찾아오는 지역이다. 그런데 계속 기후변화로 상황이 안 좋아지고 있었다. 미국 허리케인의 규모 커지는 것, 태평양 곳곳의 태풍 강도가 세지는 것과 같다. 바다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대기의 에너지가 비축돼, 원래 있던 자연현상도 강도가 세지는 것이다. 특히 세계 평균보다 인도양 지역은 기온 상승폭이 더 크다. 

 

The Guardian


게다가 파키스탄 위쪽 히말라야 고산지대의 빙하들이 녹고 있다. 파키스탄에는 약 7,500개의 빙하가 있는데 지구 기온이 올라가면서 녹아내리는 중이다. 그 때문에 강들의 범람이 많아졌고 홍수 빈발지역이 됐다.

 

파키스탄은 지난해 비영리단체 저먼워치가 선정한 세계 기후위험지수에서 '2000년부터 2019년까지 기후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국가' 중 8위였다. 인구가 많은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의 저지대는 기후재난이 집중되는 곳이며 2017년에도 큰 물난리를 겪었다. 남아시아 같은 핫스팟에 사는 사람들은 기후 위기의 영향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15배 더 높다는 조사도 있다. 

 

[Germanwatch] Global Climate Risk Index 2021

 

www.germanwatch.org


이번 홍수 때문에 파키스탄의 내륙에는 호수 아닌 호수가 생겨났다. 8월 28일 미 항공우주국(NASA) MODIS 위성이 촬영된 사진들이 공개됐는데, 신드 주에 폭우가 내리고 인더스 강이 범람하면서 폭 100km의 호수가 생겨난 것이 확인됐다. 원래는 농경지였는데 침수된 것이다. 빌라왈 부토 자르다리 외교장관은 신드를 방문한 뒤 “마른 땅을 찾아볼 수가 없다”고 했다. 셰리 레흐만 기후변화장관은 “이번 상황(몬순)이 끝날 즈음에는 국토의 3분의1이나 4분의 1이 물에 잠겨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는데, 근거 없는 우려가 아니다. 유엔이 “이대로 기후변화가 계속되면 파키스탄 3분의 1이 잠긴다” 경고한 바 있으니. 

 

[UN OCHA] Women and girls bearing the brunt of the Pakistan Monsoon floods

보건의료나 여성들 상황은 재난 때면 언제나 가장 큰 걱정거리다. 홍수는 특히 빈곤층에 큰 피해를 입힌다. 강둑이나 저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대개 빈곤층이고, 적절한 기반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고 주거여건도 나쁘다. 여성들은 그 중에서도 영향을 많이 받는다. 유엔 인구기금에 따르면 홍수 피해지역에 거주하던 임신부가 약 65만 명이었다. 그런데 신드 주에서는 1,000개 이상의 보건 시설이 부분적으로 또는 완전히 파괴됐으며 발루치스탄에서는 200곳이 부서졌다. 치안이 나빠지고 사회 보호 메커니즘이 재난으로 붕괴되면 여성과 소녀들은 성폭력과 폭력을 당할 위험이 더 커진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수인성 전염병도 걱정한다.

 

2021년 8월의 신드 주.
2022년 8월의 신드 주.


홍수 전에는 폭염이 엄청 심했다. 파키스탄 남부는 5월과 6월 열파(heat wave), 극심한 더위를 겪었다. 말 그대로 기후가 널을 뛰고 있다. 고온 속에 빙하가 녹는 속도는 더 빨라진다. 북쪽 길깃 발티스탄(카슈미르) 지역에 있는 대규모 빙하들이 녹으면서 강의 수량은 점점 통제 밖으로 치닫고 재난이 가속화된다. 빙하가 녹아내려 홍수가 나면, 그 뒤에는 물 공급원이 없어지니 물 재난이 닥칠 것이다. 끔찍한 시나리오다.

당장은 피해를 복구하는 것이 큰 일이다. 일단 비는 그쳤지만 농경지와 주거지역에서 물이 빠져야 한다. 그런데 몬순이 다 끝나려면 한 달은 더 있어야 한다. 유실된 도로의 총 연장이 5000km이고 학교들도 1만8000곳 가까이 부서지거나 피해를 입었다. 결국 돈이 문제다. 정부가 운영해온 소득지원 프로그램에서 1억7000만달러를 이재민들에게 우선 나눠주기로 했다. 군 장교들, 각료들, 상원의원들은 한달치 봉급을 홍수 구호기금으로 내기로 했다. 파키스탄 최대 통신서비스업체 PTCL 그룹은 17억5000만 루피(약 100억원)의 기금을 내놨다. 

 

People cross a bridge amid flood waters, following rains and floods during the monsoon season in Puran Dhoro, Badin on Tuesday (Aug 30). — Reuters


유엔은 1억6000만 달러를 긴급지원하기로 했다. 2004년 인도양 쓰나미 뒤에 유엔 차원에서 재난 피해를 줄이고 피해자들 도우려고 만든 중앙긴급대응기금(CERF)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기금에서도 300만달러를 파키스탄에 보내주기로 했다. WHO도 긴급구호에 1000만달러 예산을 배정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파키스탄이 채무불이행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11억7000만 달러의 구제금융을 풀었다. 원래 2019년 6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내주기로 합의했다가 파키스탄이 의무사항을 지키지 않는다며 보류했는데, 사정이 다급해지니까 푼 것이다.


유럽연합은 35만유로를 내서 돕겠다고 했다. 미국은 8월 18일에 100만달러를 지원하겠다고 했다가, 피해 규모가 커지자 30일 3000만달러를 증액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30일 1억위안, 약 200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그 전에도 중국은 텐트 3000개를 실은 항공기 2대를 보내는 등 긴급구호품을 보냈고, 중국 적십자위원회는 별도로 파키스탄에 현금 30만달러를 지원해주기로 했다. 유럽국들과 일본, 호주, 카타르, 터키 등등도 지원을 발표했다. 터키와 아랍에미리트연합은 헬기도 보냈다. 한국도 30만달러를 내기로 했다.

 

Jaffarabad: Children from a flood-affected family rest on a charpoy as they await assistance in the wake of the devastation caused by heavy monsoon rains in this district of Balochistan, on Wednesday. / AFP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기후변화다.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1959년 이후 세계에 뿜어져나온 탄소 가운데 파키스탄이 내놓은 것은 0.4%에 불과하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기후에 취약한 지역이 됐다. 미국은 온실가스 배출량의 21.5%, 중국은 16.5%, 유럽연합은 15% 차지하는데 말이다. 레흐만 파키스탄 기후변화 장관은 이번 홍수를 “기후 재앙”이라 단언했다. 샤리프 총리는 "우리가 기후재앙으로 고통을 받고 있지만 이 재앙은 우리 탓이 아니다”라고 했다.

기후변화를 많이 일으킨 나라들이 책임을 더 짊어져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해수면이 올라가면서 가라앉을 위험에 처한 남태평양 섬나라 피지의 프랭크 바이니마라마 총리는 파키스탄 홍수를 보면서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분명히 하자. 파키스탄 사람들은 파키스탄에 이런 짓을 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가 한 일이지만 특히 온실가스를 많이 내뿜는 나라들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 

 


국제앰네스티도 성명을 냈다. "치명적인 홍수는 기후변화의 파괴적인 영향을 보여줬다. 기후변화에 책임이 있는 부유한 국가들은 온실가스를 덜 내뿜는 파키스탄 같은 국가들을 지원해야 한다." 앰네스티는 부국들에게 '국제적 의무'를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기후 재난이 취약한 지역의 취약층에 집중된다는 점에서, '기후 정의'는 최근 국제사회의 기후변화 대응 논의에서 중요한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유엔도 기후 정의와 부자 나라들의 책무를 강조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몬순에 스테로이드를 투입한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세계에서 점점 더 극단적인 기상현상이 늘고 있고. 그런데도 세계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늘고 있고, 기후 대응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터무니 없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그는 “오늘은 파키스탄이지만, 내일은 당신의 나라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9월 9일 파키스탄을 방문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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