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디브가 이스라엘인들의 입국을 금지하기로 했다. 전쟁범죄자로 지탄받는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미국 의회가 초청하면서 시끄러운 시점에, 인도양의 작은 섬나라는 이스라엘의 학살에 항의하는 국가적인 결정을 내렸다. 거기에 필요한 법 개정도 빨리 하겠다면서 각료 5명으로 특별위원회까지 꾸렸다.
[몰디브 Sun] Maldives decides to ban Israeli passports
2일 각료회의에서는 팔레스타인에 보낼 대통령 특사를 임명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한 모금행사도 하기로 했다. ‘팔라디나 에쿠 디베힌(Faladheenaa Eku Dhiveheen)’이라는 전국 집회와 캠페인도 한다. 현지어로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몰디브인들’이라는 뜻이다. 몰디브 힘으로 어떻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구하겠냐마는, 연대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비취색 해변, 산호초 관광과 스쿠버 다이빙으로 유명한 휴양지 몰디브. 코로나19 이전에는 170만명에 이르는 관광객이 방문하던 나라다. 이스라엘 관광객은 연간 1만5000명 정도였다. 하지만 작년 10월 전쟁을 시작한 뒤로는 많이 줄어서 올 1월부터 4월까지는 528명이 왔을 뿐이다. 몰디브 입장에선 그들 막아도 경제적 타격은 별로 없다. 하지만 이 문제로 미국의 압박을 받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용기를 냈다.
면적 300제곱킬로미터, 서울 절반에도 못 미치는 크기다. 인구는 50만명이 좀 넘는데 그중 20만명 가량이 외국인 노동자다. 몰디브 국민은 99%가 이슬람 수니파다. 이것이 반이스라엘 여론에 물론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7개월 새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4만명 가까운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망했고 다친 사람이 8만 명이 넘는다. 특히 이스라엘의 봉쇄 때문에 뼈만 앙상하게 남아 굶어 죽는 아이들의 모습이 공개되면서 세계의 비판이 거셌다. 몰디브에서도 반이스라엘 여론이 매우 높았고, 집권 여당뿐 아니라 야당도 항의 표시로 입국을 금지시켜야 한다며 법안을 냈다. 몰디브는 사실 이스라엘과 국교를 맺지도 않은 상태다. 1990년대 초에 이스라엘 관광객들도 들어올 수 있도록 입국 금지령을 풀었지만 관계 정상화는 하지 못했다.
이스라엘인들의 입국을 막는 나라는 많다. 알제리, 방글라데시, 이란, 이라크,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등 중동과 아시아,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국가들이다. 지난 3월 이스라엘 정부는 소셜미디어에 이 나라들 목록을 올리면서 보란듯이 “우리는 좋다”는 글을 올렸다. 미국이 뒤에 있으니 저 나라들이 입국금지를 하건 말건 상관 없다는 뜻이었다. 몰디브가 뒤를 잇자 이스라엘 외교부는 일단 몰디브에 체류중인 자국민들에게 되도록 현지를 떠나라고 권고했다. 아무것도 아닌 척하지만 체면을 구긴 것은 틀림없다. 이스라엘인들이 몰디브의 입국금지 결정을 소셜미디어에서 조롱하는 것을 봤다. “중요하지도 않은 나라.” “20년 안에 가라앉아버렸으면 좋겠다.” 몰디브는 기후변화로 해수면이 올라가 물에 가라앉을 처지다. 그래서 국제사회에 기후대응을 더 강력하게 해야 한다고 오래 전부터 호소해왔다. 그런 나라를 향해 이스라엘인들이 ‘가라앉아버려라’라는 댓글을 줄줄이 남긴 것을 보니 씁쓸했다.
우리에게 알려진 지는 상대적으로 얼마 안 됐지만 몰디브는 우리의 예상 밖으로 외부 세계에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14세기 북아프리카 출신 여행자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에도 몰디브가 등장한다. 9개월 동안 몰디브에 머물며 판관 일을 했던 이븐 바투타는 이 섬을 ‘마할 디비야트’라고 불렀다. ‘마할’은 인도의 ‘타지마할’에서 보이듯 ‘궁전’이라는 뜻이다. 바투타가 지칭한 이름은 즉 ‘디비야트의 궁전’이라는 뜻인데, 디비야트는 고전 아랍어와 페르시아어에서 몰디브를 가리키던 이름이라고 한다. 뒤에 네덜란드인들이 와서 말디비셰 섬이라고 불렀고 영국인들이 몰디브라는 지금의 이름을 굳혔다.
위치는 스리랑카와 인도의 남서쪽에 있으며 아시아 대륙 본토에서 약 750km 떨어져 있다. 적도를 가로질러 26개 환초가 뻗어있고, 그 환초들을 중심으로 1200개 가까운 산호섬들로 구성돼 있다. 면적 기준으로는 세계에서 9번째로 작은 국가이고 아시아에서는 가장 작은 나라다. 평균 해발고도가 1.5미터 밖에 안 되고 가장 높은 곳도 2.4미터에 불과한, 세계에서 가장 고도가 낮은 나라이기도 하다.
나라는 작지만 역사는 길다. 고대 인도의 인더스 문명이 남긴 유물 중에 조개껍데기가 있는데, 그것들이 몰디브에서 온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최소 2500년 이상 사람이 거주해온 것은 확실하다. 기원전 6-5세기에 몰디브에 이미 왕국이 있었다. 그러다가 스리랑카(실론 섬) 등을 거쳐 인도계가 흘러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후대에 아랍어로 기록된 책에 따르면 이 섬 주민들은 ‘데이비(Dheyvi)’라는 사람들인데 기원전 3세기 이전에 인도에서 왔다고 한다. 몰디브에 남아 있는 동판 기록물인 ‘로아마아파누’라는 역사서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4세기의 로마 기록물에는 ‘디비’라는 나라에서 율리아누스 황제에게 선물을 보냈다고 적혀 있는데 이것이 데이비 즉 몰디브를 가리킨다는 해석도 있다. 인도인들은 섬에 불교를 가져왔고, 이후 1400년 동안은 몰디브의 불교 시대였다. 이 시기에 언어와 문자, 건축, 통치제도와 관습 등이 형성됐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정교한 조각과 건축물, 고고학 유물들은 불교와 관련된 것들이 많다.
외부 세계와의 접촉이 문서로 남은 것은 아랍인들이 섬을 찾은 10세기 경부터다. 12세기에는 인도양을 오가던 아랍인과 페르샤인 무역상들이 이슬람을 전파했다. 아라비아 반도의 술탄 국가에 통합됐으며 아시아와 아프리카 양쪽과 상업적, 문화적으로 연결됐다. 인도가 이슬람 무굴제국 치하에 들어가고 인도 원주민 드라비다족이 스리랑카로 대거 이동했는데 일부는 몰디브로도 향했다. 그래서 몰디브 문화에 드라비다의 흔적이 많다.
이슬람 상인들이 인도양을 제패하고 몰디브도 이슬람화한 뒤 6개에 걸친 이슬람왕조가 이어졌다. 이븐 바투타가 14세기에 방문했을 때에는 바다 건너 아프리카 동부, 오늘날의 소말리아에서 온 사람들이 지배계급을 구성하고 있었다고 한다. 16세기 중반부터 유럽 세력이 들이닥쳤다. 잠시 포르투갈이 인도의 고아에 설치한 식민통치기구를 통해 몰디브를 관리하면서 기독교로의 개종을 강요한 적도 있었다. 몰디브인들은 반란을 일으켜 포르투갈인들을 몰아냈다. 지금도 카우미 두바스라는 국경일을 만들어 그 날을 기념한다. 그 다음에는 네덜란드의 간섭이 있었고, 1887년 영국의 보호령이 됐다. 그러나 공물을 바치는 대신에 이슬람 왕국을 유지하며 자치를 했다. 1940년 왕정 시절에 모하메드 아민 디디라는 총리가 있었는데 수산물 수출을 국유화하고 교육제도를 만들고 여성 인권을 신장한 개혁가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슬람 보수파들에 축출당했고, 시대를 앞서 갔던 개혁가는 그만 폭도들에게 살해되고 말았다.
1965년 영국 보호령에서 벗어났고 3년 뒤인 1968년 몰디브 공화국이 공식 수립됐다. 초창기는 혼란스러웠다. 파벌 싸움 속에 초창기 정치를 주도했던 이브라힘 나시르 대통령이 국고에서 수백만 달러를 챙겨 1978년 싱가포르로 달아나버렸다. 그 뒤 집권한 마우문 압둘 가윰은 1978년부터 2008년까지 무려 30년 간 대통령으로 재임했다. 그의 통치 기간에 관광업이 커지고 경제가 성장했으나, 2004년 인도양 쓰나미의 타격과 장기집권에 대한 반발로 2008년 민주화가 이뤄졌다.
2014년 12월, 인구가 10만명이 넘는 몰디브 수도 말레의 정수공장이 고장났다. 사람들은 생수를 배급받기 위해 곳곳에 줄을 섰고 주변국들이 군함과 비행기로 물을 공수했다. 지하수가 줄고 가뜩이나 물이 부족한 나라에서 며칠 간 벌어진 소동은 ‘기후 난민 시대’에 지구 곳곳에서 어떤 위기가 닥칠 수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줬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있었다고 몰디브가 빈국이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작년에 2만 달러 좀 못 미쳤지만 구매력 기준 실질GDP는 1인당 4만 달러에 육박한다.
독립 직후에는 인구 10만명에 세계 최빈국의 하나였고 경제라 할 것이 어업 정도였으나 1980년대 관광업을 키우고 경제개혁 프로그램을 도입하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관광업이 경제의 30% 가까이를 차지하고, 정부 세입의 90%는 수입 관세와 관광 관련 세금에서 나온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국제 제재를 받게 되자, 올리가르히라 불리는 신흥부자들이 호화 요트를 비롯해 해외로 빼돌린 재산들을 몰디브에 등록해놨다는 얘기도 있다. 사실 조개껍데기 화폐가 일종의 국제통화로 쓰이던 시절 이 섬을 아랍인들은 ‘돈의 섬’이라 불렀고, 아프리카에서 몰디브 조개껍질이 돈으로 유통된 까닭에 유럽인들도 그걸 구해다 뿌리며 노예를 사들였다고 한다. 조개껍질 돈 ‘카우리(cowry)’는 몰디브 통화당국의 상징이기도 하다.
몰디브 정치가 국제 이슈로 부각되는 일은 많지 않지만 작년 대선에서 현 대통령 모하메드 무이주가 승리한 사실은 세계 언론들에 보도됐다. 아시아의 두 거인 중국과 인도의 경쟁이 심해지는 상황에 반인도 친중국을 내세운 무이주가 몰디브의 대통령이 된 것이다.
1978년생인 무이주는 영국에서 공부한 토목공학자로 주택부 장관과 수도 말레 시장을 지냈다. 대선에서 무이주는 인도의 영향력을 줄이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30년 장기집권 독재자 마우문은 집권시절 정권이 흔들릴 위기를 맞으면 인도군을 불러들여서 기사회생하곤 했다. 그러니 국민들 사이에 반인도 감정이 남아 있는 것도 이해가 된다. 무이주 정부가 이때까지 남아 있던 인도군을 철수시키고 이전 정부가 인도와 맺었던 비밀협정들도 종식시켜버리자 인도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무이주 내각이 이스라엘인 입국을 금지하기로 결정하자 이스라엘 언론들은 “이제 인도의 아름다운 해변으로 여행을 가면 된다”고들 썼다. 그 이면에는 몰디브와 이스라엘의 관계뿐 아니라, 몰디브의 현 정부와 인도의 껄끄러운 관계가 있는 것이다.
국제정치에서는 영향력이 거의 없을지 몰라도, 몰디브라는 작은 나라의 역사에는 수천년 인도양의 세계사가 새겨져 있다. 기후변화와 환경파괴, 인도와 중국의 경쟁,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의 전쟁 같은 국제사회의 온갖 이슈가 이 섬에서 만난다. 세계는 이처럼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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