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부조리극의 대가' 해럴드 핀터 사망

딸기21 2008. 12. 26.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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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영국의 극작가 해럴드 핀터(사진)가 지병으로 25일 사망했다. 향년 78세.
핀터의 부인으로 유명 역사학자인 안토니아 프레이저는 후두암으로 투병해온 핀터가 이날 숨졌다고 밝혔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프레이저는 남편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그같은 위대한 작가와 함께 살아왔다는 것은 특권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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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런던에서 유대인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난 핀터는 왕립연극아카데미를 중퇴하고 배우로 활동하다 극작가 겸 연출가로 변신했다. 
부조리극의 대명사로 불리는 사뮤엘 베케트의 제자 겸 동료로서 실존적 주제를 다룬 수많은 작품들을 남겨 현대 극작계의 거두로 불린다. 27세였던 57년에 쓴 첫 희곡 <방(The Room)>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고, 60년 발표한 <관리인(The Caretaker)>이 크게 히트하면서 스타 작가로 발돋움했다. 81년에는 존 파울즈의 소설 <프랑스 중위의 여인>을 영화시나리오로 각색하는 등, 영화와 TV를 위한 작업도 많이 했다.

말년에는 영국의 이라크전 참여를 강력 비난하는 등 반전·인권운동가로도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노벨상 수상연설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를 신랄하게 비판, 세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그의 희곡 작품들은 대개 유럽의 근대가 사람들에게 강요한 부조리한 삶을 풍자하고 조소하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유대인으로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폭격을 받은 런던에서 영국인들의 반유대주의를 경험하며 정신적 상처를 받은 핀터는 일상을 파괴하는 갑작스런 위협을 작품의 소재로 자주 다뤘다. 그 스스로는 “프란츠 카프카와 베케트, 미국 갱 영화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었다. 
영국의 연극계에서는 외부의 위협에 속수무책으로 당황하는 주인공들을 다룬 그의 작품들 특유의 분위기를 가리키는 ‘핀터레스크(pinteresque)’라는 형용사가 생겨나기도 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핀터를 선정하면서 “폐쇄된 공간과 예측할 수 없는 대화라는 연극의 기본을 되살리며, 일상의 잡담 속에 묻어있는 현대인의 위기를 들추어냈다”고 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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