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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 이란 ‘주먹 펼까 말까’ 탐색전

딸기21 2009. 2. 13.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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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란의 해묵은 적대관계가 과연 해소될 수 있을 것인가.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 출범 뒤 양쪽 지도부 사이에 ‘대화’ 의사가 담긴 말들이 오가더니 급기야 이란 국영통신사가 오바마에게 직접 인터뷰를 제안했다. 그러나 30년에 걸친 양국의 깊은 적대관계가 ‘화해’로의 길을 쉽게 열어주지는 않을 것 같다. 당분간 양측은 탐색전을 벌이며 관계개선의 조건과 방법, 속도를 타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바마 인터뷰 성사될까

AFP통신은 이란 국영 IRNA통신사가 오바마에 인터뷰를 공식 요청했다고 11일 보도했다. 뉴욕 유엔본부에 주재하는 IRNA의 마그수드 아미리안 지국장은 인터뷰 요청 사실을 확인하면서 “아직 답변을 받지는 못했지만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IRNA는 사실상 이란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구이자 외국과 연결된 공식 창구다. 만일 인터뷰가 성사된다면 양국 지도부 간 직접 대화의 전단계로서 매우 의미있는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 이란 외교관·언론인들은 미국의 대이란 제재법들 때문에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40㎞ 이상 벗어날 수 없다. 인터뷰를 하려면 IRNA 취재진이 워싱턴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제재의 틀을 깬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큰 의미를 띠게 된다.
낙관하긴 힘들지만 오바마가 취임 이래 계속 이란에 대화 메시지를 보내왔다는 점, 그리고 첫 회견도 이슬람권 언론인 알아라비야TV와 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인터뷰가 성사될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다. 하산 가슈가비 이란 외교부 대변인도 “오바마가 대화의 기회를 놓아버리지 않기를 바란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앞서 오바마가 지난달 이란과의 대화 가능성을 시사했을 때만 해도 테헤란은 냉랭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며칠 새 이란 측의 ‘톤’이 확 바뀌었다. 강경보수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10일 이슬람혁명 30주년 기념연설에서 ‘상호존중’을 전제로 “미국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11일 경제협력 모색차 이라크를 방문한 마누셰르 모타키 이란 외무장관은 “오바마가 내세운 슬로건들을 긍정적으로 본다”, “(오바마 취임 뒤) 세계가 바뀌었다”, “미 행정부가 변화를 계속 추진한다면 행복한 소식이 될 것”이라며 전례없이 ‘따뜻한’ 말들을 쏟아냈다. 미국 CBS방송은 오바마가 취임 전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을 유럽에 보내 이란 고위층과 만나게 했다면서 “물밑 접촉은 벌써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때이른 기대는 금물

이란 최고권력자인 알리 하메네이 최고종교지도자는 ‘오바마의 미국’에 대해 지금껏 입을 열지 않았다. 로이터통신은 하메네이 지도자가 이란 정치지도부 내 컨센서스(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조율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내부 보수파의 반발에다 오는 6월 대선 등의 변수가 있어서 섣불리 대미 정책을 바꾸긴 힘들겠지만 관계 개선을 모색하기 위해 동의를 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계 개선 필요성에는 양국이 모두 공감하고 있다. 이란은 미국·유럽의 경제제재로 곤경을 겪고 있고, 최근에 유가까지 떨어져서 경제사정이 몹시 안 좋다. 미국도 이란의 막대한 에너지자원을 놓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중국·독일·러시아·이탈리아·스위스·말레이시아·베트남 등 유럽과 아시아 에너지기업들은 미국의 제재를 피해 이미 이란 에너지채굴권을 선점했다. 조급해진 미국 에너지업계은 대화 가능성이 엿보이자 벌써 이란 진출 가능성을 타진하고 나섰다.

그러나 오랜 앙숙관계인 두 나라 사이에는 풀어야 할 앙금이 너무 많다. 가장 중요한 핵 문제, 그리고 그것과 연계된 미국의 대이란 경제제재 해제 여부, 이란 인권 상황과 이라크 새 정부를 둘러싼 양국간의 물밑 힘겨루기 등 난제가 쌓여있다.
두 나라 각기 내부적으로도 컨센서스를 확보하기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이란 개혁파 정권과 관계개선을 모색했지만 워싱턴 내 이견으로 구체적인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테헤란 상황도 비슷해서, 개혁파와 보수파 간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독일 슈피겔은 미국과 이란의 화해는 아직은 ‘바램’일 뿐이라며 “두 나라는 링 외곽을 도는 권투선수들처럼 탐색전을 하는 단계”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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