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정부의 중동정책을 요약하면 ‘정치를 복원하는 것’이다. 미국은 수십년간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친미국가들을 지렛대 삼아 중동을 움직여왔다. 하지만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이스라엘 편향정책과 이라크전, 일방적인 ‘중동민주화 구상’을 추진하면서 중동정책 전반이 왜곡됐다. 대테러전으로 마비된 중동의 ‘정치’를 되살리는 것이 오바마 정부의 목표다. 그 첫 단추는 교착상태에 빠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과정을 다시 궤도에 올리는 것이다.
이스라엘에 ‘2국가 해법’ 주문
“5분간 다정하게 인사, 1분 동안 커피 접대, 84분간 평화협상에 대해 심각한 토론.”
영국 가디언이 예상한 18일 오바마와 네타냐후의 정상회담 풍경이다. 오바마 정부는 전임 정부시절 만들어진 허울 뿐인 ‘콰르텟’, 즉 미·러·유엔·유럽연합의 중동평화 4자기구 틀을 벗어던지고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의 ‘이-팔 2국가 공존 해법’에 기초한 직접 협상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인 요르단강 서안에 유대인 정착촌을 계속 늘리고 있는데, 백악관이 여기에도 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하레츠지는 “이미 이-팔 관리들이 비공개로 평화협상 준비 회동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레츠는 “‘군사적 논의’는 사라지고 ‘정치의 시대’가 왔다”며 오바마의 협상 드라이브에 기대감을 보였다.
오바마는 28일에는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대통령과 만나 가자 재건방안 등을 논의한다. 오바마는 압바스에게 파타-하마스 간 내분을 끝낼 것, 자치정부의 부패를 청산하고 민주적 절차를 도입할 것 등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란을 체제 내로 끌어들여라
예루살렘포스트는 네타냐후가 이번 회담에서 미국에 ‘이란 핵 위협’을 다시 강조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의 대이란 정책은 이스라엘의 바람과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미국은 대이란 정책은 ‘봐줄 것은 봐주고 안 되는 것은 단호히 금지시킨다’는 것이다. 평화적 핵 이용을 허용해주되 국제원자력기구의 핵비확산조약(NPT) 체제 내로 끌어들여 투명성을 높이게 하고, 이를 이란이 이행하면 점진적으로 관계를 복원한다는 방침이다.
다음달 대선을 앞둔 이란에서는 보수파 후보들까지도 대미관계 개선을 바라는 듯한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 미국인 여기자를 풀어준 데에서 보이듯 이란의 반미 목소리는 한층 누그러졌다. 미국은 이스라엘이 불필요한 도발로 이란을 자극하는 것을 원치 않는 분위기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리언 파네타 미 중앙정보국장이 2주전 이스라엘에 가 “이란 핵시설을 공습해 오바마 대통령을 놀라게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시리아-이스라엘 화해 추진
미국은 중동 전체 평화구조를 만들어내려면 미-이란, 이-팔 등의 양자관계를 넘어선 다차원 동시 해법이 필요하다고 본다.
더타임스는 오바마 정부가 이집트·요르단·사우디와 걸프 국가들·터키를 망라하는 ‘온건 이슬람권 연대’를 만들어 이스라엘과의 화해를 중재하고, 더불어 이들이 이란의 근본주의를 막아내게 하는 구도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려면 시아파이면서 세속 국가인 시리아를 달래고 이스라엘과 화해하게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스라엘은 67년 중동전쟁 때 시리아의 골란고원을 빼앗았다. 몇년 동안 터키를 중재자로 내세워 반환 협상을 진행했으나 지지부진했다.
시리아에 두 차례 특사를 보낸 미국은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평화 협상을 재촉해, 평화협정으로 이으려 애쓰고 있다. 앞서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미국이 중재해준다면 이스라엘과 직접 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은 17일 요르단 압둘라2세 국왕과 만난 자리에서 “이스라엘과 시리아가 직접 협상에 나서는 편이 좋다”고 말해 진전이 있었음을 암시했다.
다음달 4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집트 카이로를 방문해 아랍·이슬람권을 향한 ‘역사적인 연설’을 한다. 지난달 터키 이스탄불에서의 연설이 “미국과 이슬람권은 적이 아니다”라는 화해의 제스처였다면, 카이로 연설은 미국의 새로운 중동정책을 발표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테러전에 밀려 한동안 중동 정치의 중심에서 벗어났던 이집트는 한껏 부풀어있다. 오바마의 방문은 이집트가 여전히 중동의 맏형이며 외교적 중심축임을 증명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오바마의 방문으로 이집트가 다시한번 아랍의 중심 무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바마 방문에 앞서, 82세 고령의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도 5년만에 미국을 방문해 중동평화협상 중재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집트는 세계 이슬람의 총본산 격인 카이로의 유서깊은 알 아즈하르 성원(聖院. 위 사진)에서 오바마가 연설하게끔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집트 관영 일간지 알 마스리 알 아윰은 그랜드 무프티(대사제) 알리 고마아가 오바마를 알 아즈하르에 초대했다고 전했고, 사우디아라비아·파키스탄 등 이슬람권 언론들은 이를 받아 17일 일제히 보도했다. 10세기에 지어진 알 아즈하르 성원은 이슬람권의 가장 권위있는 교육기관이며, 거기 딸린 모스크도 최고의 위상을 자랑한다. 무슬림이 아닌 오바마가 이 곳을 방문한다면 그 자체가 역사적인 일이 된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가 무바라크를 끌어들이는 것이 옳은 선택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오간다.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 뒤 중재역에 나섰던 이집트는 제 몫을 하지 못했다. 30년 장기집권 중인 무바라크는 중동의 대표적인 독재자다.
오바마가 이집트에 어떤 강도로 민주화를 촉구할지는 알 수 없지만, 무바라크를 내세우는 것이 득보다는 실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영국 가디언은 “카이로는 오바마의 잘못된 선택”이라며 “독재, 부패, 인권탄압을 상징하는 인물과 손잡음으로써 오바마는 중동의 민심을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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