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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사태, 어디로 가나 [2009 07/07 위클리경향 832호]

딸기21 2009. 7. 2.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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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어디로 갈 것인가. 대선 선거 부정 의혹에서 촉발된 시위로 인해 이란에서 최소한 17명이 숨지는 등 젊은이들의 희생이 계속되고 있다. 시위는 일시 소강 국면을 맞았지만 1979년 호메이니의 이슬람혁명 이래 최대 시위라는 이번 사태가 어디로 흘러갈지 단언하기는 힘들다.

테헤란에서 유혈 사태가 벌어지자 여러 외신이 ‘이란판 톈안먼’을 언급하며 대규모 인명 피해를 우려했다. 하지만 초창기만 해도 “이란은 중국과 다르다” “대선에서 압승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정부가 초강경 진압으로 위기를 자초할 이유가 없다”는 시각이 많았다. 개혁파 대선 후보였던 미르 호세인 무사비가 이슬람혁명 지도부 출신이라는 점에서 “체제에 대한 도전을 피하려 할 것”으로 보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오히려 톈안먼사태와 비슷하게 흘러가는 듯하다. 이란 정부는 젊은이들과 지식인들의 대규모 시위를 유혈 진압했다. 물론 유혈 사태 규모는 중국과 다르다. 중국에서는 정부군이 탱크를 동원해 시위대를 짓밟았다. 당시 사망자 수는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수천 명에 이른다는 추측이 많다. 반면 테헤란에서는 군이 아직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최정예부대인 혁명수비대가 시내에 배치됐으나, 손에 피를 묻힌 것은 주로 이슬람 친정부 민병대 ‘바시지’ 대원들이었다.

고민하는 개혁파

▶A picture obtained last month shows Iranian riot police in Tehran in June 2009.  (AFP/File)


하지만 당국이 여론을 극도로 통제하고 있다는 점, 외부로부터 고립된 사회에서 벌어진 일이고 미국 등 국제사회가 개입을 꺼리고 있다는 점은 비슷하다. 중국 공산당은 톈안먼사태 이후에도 사회주의를 조금씩 수정해가면서 당근과 채찍으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란 신정(神政)도 국민들을 쥐었다 풀었다 하며 체제 유지에 성공할 것인가. 현재로서는 ‘그럴 것이다’라는 쪽에 걸어야 할 것 같다.

이란에서 벌어진 일이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톈안먼사태와 유사한 점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가 중국 같은 일당독재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국과 서방은 이란의 독재를 종종 문제삼았지만 이란은 중동에서 역설적으로 ‘가장 민주적인 국가’였다. 신정통치를 내세우고는 있으나 개혁파가 8년이나 집권했고 대의민주주의와 이견 표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느리게나마 민주주의를 향해 가던 이란에서 이런 유혈 사태가 벌어지자 세계는 이 일을 어떻게 바라볼지, 어떻게 대응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개혁파들이 체제에 도전하려 하는 것인지 가늠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무사비는 반정부 투쟁을 어디로, 어떻게 끌고갈지 갈팡질팡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그는 지난 15일 유혈 사태 뒤 결사항전을 선언했으나 23일 기자회견에서는 “진압 병력도 우리의 형제”라며 평화시위를 호소했다. 
25일 이란 언론들은 무사비가 정치인들과 만나 대화에 나서고 있다는 엇갈린 보도를 내놨다. 그러나 무사비는 곧바로 웹사이트를 통해 “비밀경찰의 감시 때문에 대중과의 접근이 완전히 막혀 있다”며 계속 항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글을 쓴 다음에 나온 소식들이지만, 무사비는 혁명수호위원회가 아마디네자드의 당선을 재확정한 뒤에도 "승복할 수 없다"며 계속 투쟁을 다짐하고 있다.)

어느 것이 무사비의 진심인지는 단언하기 힘들다. 부인 자흐라 라흐나바라드가 위협 속에서도 계속 투쟁을 외치고 있는 점으로 보아 당국의 탄압과 관영언론들 때문에 그의 입장이 왜곡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맞을 듯싶다. 하지만 무사비가 대중 앞에 나서지 못하는 한 어떻게 투쟁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무사비보다 훨씬 진보적인 것으로 알려진 또 다른 개혁파 대선 후보 메흐디 카루비는 연일 당국을 규탄하고 있으나 그의 영향력은 크지 않다. 모하마드 하타미 전 대통령도 페이스북 등을 통해 시민 저항을 촉구하고는 있으나 대중 앞에 직접 나서지는 않는다.

재선거 가능성이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 무사비 측에는 지금 마땅한 투쟁 수단이 없어 보인다. 싸움의 동력을 찾기 힘든 이유로 무사비의 허약한 지지기반을 드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이란 전문가 수전 멀로니는 “무사비는 영웅이 될 것 같지 않았던 영웅”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전직 총리에 건축가 출신인 무사비는 호메이니 혁명 지도부 ‘이너써클’ 출신이다. 그의 지지세력은 개혁을 요구하는 젊은층과 여성들, 이슬람 온건파, 아마디네자드에 반대하는 성직자 등 다양한 그룹으로 이뤄져 있어 어느 한 집단을 주력부대로 꼽기도 힘든 상황이다.

보수 신정의 균열?

무사비의 개혁 주장 자체도 한계를 안고 있다. 무사비는 최고지도자 아야툴라 하메네이에 맞서면서도 이슬람 신정체제에는 도전하지 않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말마따나 핵정책·대미정책 등에서도 아마디네자드와 큰 차이는 없다. 
이란인들은 1950년대 민의로 선출된 모하마드 모사데크 총리 정권을 뒤엎은 파흘라비(팔레비) 왕조의 쿠데타와 30여 년에 걸친 백색테러·억압통치를 뒤에서 지원한 미국의 행태를 잊지 않고 있다. 아마디네자드는 집권 뒤 이슬람주의자라기보다는 반미 민족주의자로 자기 자신을 스스로 부각시켰다. 이란 내에서는 그의 강경노선 덕에 국가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인식이 적지 않다. 외교정책에서 개혁파의 운신 폭은 좁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가 이란 신정에 미칠 영향은 클 것으로 보인다. 겉으로 드러난 재선거 구호 밑에는 사회문화적 억압을 걷어내고 자유화하라는 요구가 깔려 있다. 이런 요구는 이슬람 통치에 대한 반발로 이어질 수 있다. 당국은 시민들을 군홧발로 짓밟음으로써 투쟁구호의 수위를 오히려 높이는 자충수를 뒀다. 당초 선거 부정에 항의하며 녹색 띠를 두르고 나왔던 시위대는 사상자가 발생하자 “독재자(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Iranian supporters of Mir Hossein Mousavi flash the V for "victory" sign 

during a rally at Ghoba mosque in Tehran on June 28, 2009.

 (AFP/File/Sahar Jalili)


이번 사태로 하메네이를 정점으로 하는 신정 체제 내부의 권력투쟁도 겉으로 드러났다. 당국은 지난 20일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대통령의 딸 파에제(46)를 체포했다가 풀어줬다. 하메네이 측에서 라프산자니에 보내는 경고였다. 
라프산자니는 1989년 중간급 성직자에 불과했던 하메네이를 최고지도자로 올린 일등공신이었다. 그는 하메이니의 뒤를 이어 89~97년 대통령으로 재직했고, 지금은 핵심 권력기구인 전문가위원회의 수장을 맡고 있다. 이슬람 성지 쿰에 본부를 둔 전문가위원회는 최고지도자 사후 후계자를 뽑는 권한을 가진다. 라프산자니와 하메네이는 20년 동안 협력·견제하며 공생해왔지만 부패 청산을 내세운 아마디네자드가 라프산자니 일가를 집중 공격하면서 사이가 벌어졌다.

라프산자니는 대선 뒤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감춘 채 은밀히 쿰에서 성직자들을 설득, 하메네이의 권력을 제한하는 방안을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범 아랍권 신문 ‘알 샤르크 알 아우사트’는 25일 라프산자니가 쿰의 성직자들을 포함하는 ‘개혁파 동맹’을 규합해 하메네이의 의회 출석을 요구하기로 하는 등 권위에 도전할 방법을 모색한 뒤 테헤란으로 돌아왔다고 보도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하메네이의 권위는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쿰 고위성직자단이 과거 관례를 깨고 대선 뒤 2주가 지나도록 아마디네자드의 당선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다는 점도 눈에 띈다. 쿰 최대 시아학파 중 하나인 하가니학파의 수장인 바게르 라리자니는 알리 라리자니 국회의장의 동생이다. 라리자니는 하메네이의 측근이지만 역시 아마디네자드에 반대하며 시위 유혈 진압을 비판했다.

중동에서 ‘민주주의’는 가능할까

이란 사태의 파장은 간단치 않다. 이란은 30년간 국제사회에서 고립돼 있었지만, 최근 몇 년 새 지역 내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영향력을 키워왔다. 이란은 석유 매장량 세계 3위, 천연가스 매장량 2위의 자원부국이다. 
유라시아 복판에 넓은 땅덩이(면적 165만㎢)를 가진 대국이고, 중국-러시아-인도-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이라크 등과 인접한 전략적 요충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사태로 이란의 위상이 떨어져 역내 세력 균형에 변화가 올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아마디네자드는 역내에서 반미 투사로 위상을 높였다. 또 오랜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듯 레바논과 시리아, 이라크, 아프간 등지로 손을 뻗던 참이었다. 하지만 아랍 민중 사이에서 그의 이미지는 이번 사태 때문에 악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반면 이란이 민주주의의 자극제가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란은 중동에서도 ‘특별한 나라’다.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도 없는 친미국가 사우디아라비아나 걸프의 소규모 왕정국가들, 독립 이래 단 3명의 제왕적 대통령만 군림하고 있는 이집트와 달리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나마 보장돼 있다. 신정체제와 대의민주주의가 묘하게 공존하고 있는 이란의 행보는, 이 지역 여러 국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1979년 이란에서 이슬람혁명이 일어난 뒤에 미국보다 더 경악하며 문고리를 닫아건 것은 사우디 같은 아랍국들이었다. 이라크는 아예 미국의 지원을 받아 이란을 상대로 전쟁까지 일으켰다.

민주주의를 겁내며 제대로 된 선거조차 치르지 않는 이웃나라들이 이란의 이번 사태를 보며 더욱 더 반민주로 역행할지, 민의의 두려움을 깨닫고 점진적이나마 개혁에 나설지는 알 수 없다. 
전망은 밝지 않다. 바레인은 아마디네자드와 신정체제를 비판한 자국 내 신문사를 문닫았다. 사우디와 이집트의 관영 언론들도 이란 시위 보도의 비중을 낮췄다. 아랍국들은 오래전부터 이란과 대립, 견제해왔다. 미국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이번 시위를 계기로 이란에 온건파 정부가 들어설 경우 주변 국가들은 이란의 팽창주의에 대한 두려움은 덜겠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갈망이라는 새로운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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