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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그리고 '평화유지군'

딸기21 2010. 10. 2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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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늘 마음이 답답하지요. 가난한 사람들이 아프다면, 특히 어린 아이들이 고통 받고 있다면 보고 듣는 사람의 괴로움도 더 커지는 법이고요. 안타깝게도 가난한 이들이 병에 걸릴 확률이 높고, 특히 그 중에서도 어린 아이들이 희생자가 되는 경우가 많으니 ‘가난하고 아픈 어린이들’ 이야기는 지구촌 어디에서나 끊이지 않습니다.

아이티에서 콜레라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국제사회의 노력으로 일단 확산세는 주춤하고 있다”고 하지만, 지진이 일어난 지 9개월이 지나도록 복구되지 않는 아이티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Children suffering from cholera wait for medical treatment at a local hospital in the town of Saint Marc October 22, 2010. /REUTERS


로이터통신은 유엔 아이티 인도주의조정관 니겔 피셔의 말을 인용해 “다국적 의료진이 아이티 콜레라 사망자 수가 늘어나는 속도를 늦추는 데에 성공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이날까지 이미 사망자 수는 250명을 넘어섰습니다. 피셔 조정관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심각한 전염병에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아이티에서 콜레라에 걸린 사람들은 3000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콜레라가 주로 발생한 곳은 인구가 밀집해 있는 수도 포르토프랭스와 아르티보니테 강이 흐르는 중부의 아르티보니테 주(州)라고 합니다. 강물이 더러워지면서 수인성 질병이 발생했고, 병에 걸린 이들이 포르토프랭스로 들어가 전염을 시킨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염병이 처음 보고 되고 일주일 만에 사망자가 253명으로 늘었습니다. 일단 당국은 확산세가 주춤하면서 질병이 통제 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진 9개월, 아직은 '머나먼 복구'

아이티에서 대지진이 일어난 것은 지난 1월 12일. 어느 새 9개월이 지났습니다만, 이번 전염병에서 보듯 현지의 복구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아 보입니다. 환자들이 많은 아르티보니테의 병원은 환자가 넘쳐나 제대로 치료조차 못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언제라도 전염병이 다시 퍼질 수 있다는 거죠.

특히 전문가들이 걱정하는 것은 포르토프랭스 난민촌 상황입니다.

지진이 난 다음에 다시 집을 짓지 못한 난민들 130만 명이 포르토프랭스의 천막촌에서 살고 있습니다. 포르토프랭스는 곳곳에 천막과 방수포 캠프들이 쳐져 있어, 사실상 도시 전체가 난민촌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이런 조건에서 전염병이 한번 일어나면 창궐하는 것은 시간문제겠지요. 

콜레라는 일찍 발견하기만 하면 소금과 설탕을 섞은 물만으로도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지만 조금만 늦어도 설사, 탈수 등으로 몇 시간 만에 사망하기 때문에 무서운 전염병이 된다고 합니다.

Brazilian UN peacekeepers stand guard atop a building in front of the National Penitentiary during a prisoners‘ uprising in downtown Port-au-Prince, Haiti, Sunday, Oct. 17, 2010.


현재 유엔 평화유지 임무단 1만2000명이 아이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헬기와 트럭, 군용차량 등을 총동원해 방역 작업을 하고 있고 또 쿠바 정부도 의료진 수백 명을 아이티에 파견해놓고 있습니다. 전세계 의료단체들이 아이티에 사람을 보내 치료를 돕고 있고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전문가들을 보냈고, 중·남미 대륙에서의 군사작전을 담당하는 미군 남부사령부도 의료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거여건이 워낙 좋지 않고 교육수준이 낮아 구조당국은 기본적인 보건교육에 치중하고 있다고 합니다. 비누로 손 씻기, 씻지 않은 채소나 끓이지 않은 물 먹지 않기, 강물에서 목욕하지 않기 등등의 캠페인을 전국적으로 벌이고 있다고 유엔은 밝혔습니다. 이런 교육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나 라디오를 통해 하고 있는데, 인프라가 워낙 좋지 않아서 정작 정보가 필요한 이들에게 전달되기 힘들다는 것이 문제겠지요.

유엔에 따르면 현재로서는 콜레라 환자들을 치료할 항생제를 각국으로부터 공급받아 갖춰놓고는 있는데, 추가로 정맥주사제 등의 약품을 들여와야 한다고 합니다.

더 무서운 것은 2차 지진입니다. 아직도 아이티 지반이 안정되지 않은 채 추가지진 위험이 감지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과학전문지인 ‘네이처 지오사이언스’ 24일자에는 지난 1월의 아이티 지진을 분석한 논문이 실렸습니다. 이 논문에서 과학자들은 당시의 지진을 유발한 지하의 단층이 추가로 압력을 가해 지진을 다시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유엔 평화유지군=점령군?

지진과 복구 이야기로만 넘어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늘 그렇듯이, '인도적 개입'이라는 것은 참 한마디로 잘라 설명하기 힘든 문제입니다.

아이티에서도 평화유지군 주둔이 길어지면서 ‘점령’이 아니냐는 국민들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현지 언론인 ‘아이티 리베르테’ 영문판에서 본 소식인데요.


지난 15일, 유엔 평화유지군이 포르토프랭스 공항의 유엔군 기지 밖에 모여든 시위대 100여명을 향해 공포탄을 쐈다고 합니다. 유엔 안보리는 이날 아이티안정화임무(MINUSTAH) 즉 평화유지군 주둔 기간을 연장했습니다. 시위대는 여기에 대한 항의를 했던 것이었고요. 
이미 지진이 나기 한참 전인 2004년 6월부터 유엔은 정정불안을 이유로 아이티에 군대를 파병해놓고 있습니다. 아이티 사람들 중에는 이를 ‘점령’으로 보는 이들이 적잖은 모양입니다. 

실제로 당시 유엔군은 아이티를 사실상 점령했던 미국, 프랑스, 캐나다 군대로부터 치안권을 이양 받았기 때문에 점령군이라는 이미지가 심어진 것도 무리는 아니죠.

유엔이 지금까지 아이티 평화유지 임무에 쓴 돈만 해도 6억1200만 달러(약 6800억원)에 이르는데,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서 아이티를 안정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치안을 악화시켰다고 시위대는 주장합니다. 이들은 유엔군을 평화유지군이 아닌 점령군이라 부르며 철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진이 일어나고 얼마 동안은 구호 활동이 급했기 때문에 이 문제가 물밑으로 가라앉았습니다. 

하지만 옛 식민종주국인 프랑스가 나서서 아이티 문제에 개입을 하고, 과거 아이티의 독재정권을 밀어줬던 미국이 지원 병력을 보내고, 유엔 평화유지군 주둔 기간이 더욱 연장되면서 반발이 차츰 고조되고 있습니다. 아이티 리베르테는 “최근 두어 달 사이에 유엔군 철수를 요구하는 항의시위가 빈발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Pedestrians walk past Presidential election posters in Port-au-Prince September 29, 2010. /REUTERS


특히 주민들 사이에서는 “유엔이 지진 복구를 돕는 것보다는 굶주린 사람들로부터 약탈을 막기 위한 ‘시설 경호’에만 치중한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습니다. 지진 직후의 혼란 속에서 무장 경찰들이 시민들을 돕기는커녕 여성들을 성폭행하고 약탈을 하는 일이 있었는데, 정작 유엔군은 이런 사태를 막지 못한 채 방치했다는 비난도 나옵니다.

도시 곳곳에는 “점령을 끝내라”, “유엔 도둑들 사라져라”라는 낙서들이 등장하고 포르토프랭스 주민들 사이에 유엔에 대한 반감이 퍼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현지 풀뿌리 조직 활동가 이브-피에르 루이는 아이티 리베르테 인터뷰에서 “유엔은 아이티 헌법과 유엔 헌장 모두를 어기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유엔 헌장은 국제평화와 안보가 위협받을 때에만 유엔 평화유지군이 주둔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아이티는 전쟁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핵폭탄을 만들거나 테러를 벌이거나 마약을 수출하지도 않는다. 대체 ‘위협’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또 하나의 불만은 다음달로 예정된 선거에 대한 겁니다. 유엔 안보리는 아이티 주둔기간을 연장하면서 “합법적이고 믿을만한 선거결과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붙였습니다.
 
하지만 아이티 사람들 사이에선 “유엔의 개입 때문에 벌써부터 선거 구도가 불공정해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핵심 이슈는 해외 망명중인 옛 지도자 장 베르트랑드 아리스티드 전대통령의 계파인 ‘라발라스 가족당’을 선거에서 배제할 것인지 여부인 듯합니다. 아리스티드는 2004년 미 해병대에 납치된 이래로 귀국하지 못한 채(아리스티드는 누차 그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해외를 전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이 다시 아이티에 압력을 넣어 다가올 선거에서도 아리스티드 세력을 배제하려 한다는 추측이 많습니다. 앞서 미 하원의원 45명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아리스티드 세력이 이번 선거에서 배제되면 다시 정정불안이 일어날 것”이라는 경고 서한을 보냈다 합니다. 

정작 선거가 제대로 치러질 지는 미지수입니다. 원래는 11월 28일 대선과 총선을 실시할 예정이었습니다만, 피셔 유엔 조정관은 “아이티 당국은 투표를 예정대로 실시할지, 연기할지에 대해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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