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메리카vs아메리카

2010 미국·중남미

딸기21 2010. 12. 28.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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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바마에겐 힘겨운 한 해 

미국에서는 정치권 구도가 확 바뀌었습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집권 2년째, 힘겨운 한 해를 보냈습니다. 중남미에서는 큰 재앙과 작은 재난, 그리고 희망의 드라마가 펼쳐졌습니다. 오바마 정부는 여러 개혁입법안을 통과시키는 성과를 거뒀죠.

미국민의 숙원이었던 건강보험제도 개혁법안이 지난 3월 상하 양원에서 완전 통과됐습니다. 이로써 지금까지 의료서비스에서 사실상 배제됐던 무보험자 3200만명을 포함, 미국민 95%가 의료서비스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1912년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처음 국민건강보험제도를 제안한 이후 100년 만에 내딛게 된 첫 걸음이자, 오바마가 사활을 걸었던 정책이기도 했습니다.

금융개혁법안도 통과됐습니다. 지난 5월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금융개혁법안을 통과시켰죠. 그리고 7월 21일 오바마는 금융개혁법안에 마침내 서명했습니다. 대형 은행들의 투기성 사업을 은행 본연의 업무에서 분리시키고, 복잡하기 짝이 없는 파생상품에 대해서도 규제를 하기로 했습니다. 오바마에게는 또 하나의 승리로 기록됐죠.

오바마는 역사적인 한 획을 그었지만 정치적으로는 그만큼의 소득은 얻지 못했습니다. 중산층의 반발과 국민들 인식 전환 실패하면서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죠.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하와이 카일루아에서 가족과 휴가를 보내며 빙수를 먹고 있는 오바마. /AP



오히려 등 돌린 민심, 중간선거에서도 참패

오바마에게 집권 2년째가 몹시도 힘겨운 한 해였죠. 개혁법안을 성사시킨 가시적인 성과들이 적지 않았지만 법안들이 모두 민주-공화, 진보-보수 진영의 거센 분열 속에 통과된 것들이었습니다. 중산층의 이반이 몹시 심했고요. 특히 개혁법안들을 무색하게 한 것은 경제문제였습니다. 미국 실업률은 두자릿수 퍼센트 보이면서 경제회복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외교무대에서 분명 부시 행정부 시절보다 오바마의 미국 이미지는 좋아졌는데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오바마 지지율은 갈수록 낮아졌습니다.

오바마 업무지지도가 지난해 집권 초반 60%대에서 1년 지난 올초에는 50% 안팎으로 내려왔고 올 연말에는 45% 정도입니다. 2010년 하반기 내내 업무지지도에서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50% 안팎으로 오히려 높았습니다.

11월 2일 중간선거에서는 예상대로 공화당이 하원에서 의석수를 이전보다 60석 이상 늘리며 압승했습니다. 공화당은 4년만에 하원 다수당 지위를 탈환했습니다. 민주당으로서는 1938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민주당 행정부 시절 이후 최악의 참패였습니다. 특히 오바마의 대선 승리 기반이었던 흑인, 히스패닉, 젊은층 유권자들 지지를 크게 잃은 것으로 나타나 2012년 오바마 재선가도에도 빨간 불이 켜졌습니다.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했기 때문에 앞으로 국정 운영에서도 매번 공화당의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입니다.

오바마 최악의 패배… 미국 중간선거 민주당 하원 의석 60석 이상 잃어
‘보수 과반’ 오바마 집권 후반 ‘가시밭길’

인종 차별적인 반이민 조치들 논란

애리조나주가 지난 4월 통과시킨 새로운 이민자 단속법 ‘상원 1020호 법안’은 불법체류 자체를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불법 체류자로 의심이 들 경우 경찰관이 검문을 할 수 있도록 했고, 신분증을 소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게 했습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이민자 단속법인 셈인데, 오바마까지 나서서 비판했지만 이후 이런 강력한 반이민 조치들이 다른 주들로 퍼져나갔습니다. 나중에 연방법원이 애리조나주 이민법 일부 조항을 금지시키기는 했지만 미국 사회 전반의 우경화, 보수화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입니다. 애리조나주는 소수 인종의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는 학교 프로그램을 금지하는 법까지 통과시켰습니다.

기독교 대 무슬림 논쟁

9·11 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자리, '그라운드 제로' 부근에 모스크가 세워지는 문제를 놓고 찬반 양론이 붙어서 이슬람 탄압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죠. 그 와중에 9월에는 플로리다주의 한 교회 목사가 꾸란 버닝데이를 만들자며 이슬람 경전 꾸란을 불태우겠다고 선언을 해 물의를 빚었습니다.

꾸란이든 성경이든 
이슬람 혐오증과 인종주의 

국제적인 비난에 부딪쳐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이슬람권 여러 곳에서 반대 시위가 한동안 일어났습니다. 9·11테러 9주년을 맞아 맨해튼 모스크 문제와 꾸란 불태우기 소동이 빚어진 건데...

사실 지난 9년 동안 미국 내 무슬림들은 숨죽이고 살아왔었죠. 그들이 이번 논란을 계기로 제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측면도 있고, 반대로 극우파들의 이슬람 혐오증 부추기기가 더 심해지는 측면도 있습니다. 미국 사회의 균형점은 그 사이 어디엔가에 있을 테지만, 요즘 보이는 모습들을 생각하면 ‘미국이 인종의 용광로가 되기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쪽에 더 무게가 실리는 것 같습니다.

멕시코만 원유유출 사태

4월 20일 멕시코만 딥워터호라이즌 시추시설 폭발, 인부 11명이 숨지고 엄청난 양의 원유가 바다로 흘러나갔습니다. 4월 말에는 루이지애나, 플로리다 등 4개 주에 비상사태가 선포됐습니다. 시추시설을 운영했던 영국계 석유회사 BP와 미국 정부가 서로 네 탓 공방을 벌였고, 오바마 정부의 위기대응 능력이 도마에 올라 또다른 악재가 됐습니다.

심해 시추시설이라 유정 구멍을 막는 작업에만 몇 달이 걸려서 기름 유출 피해 규모가 굉장히 컸습니다. 사실은 정확히 기름이 얼마나 바다에 새나갔는지 아직 확인되지도 않고 있는 상황이죠. 미국 최악의 해양 오염사고라던 1989년의 알래스카 엑손발데스 유조선 침몰사고의 몇 배, 몇 십 배에 이를 것으로만 추정됩니다. 이 사고로 세계 최대 에너지회사인 BP도 위기를 맞았습니다. 아직까지 배상 문제니 사고 뒤처리니 끝나지 않았고, 법적 절차가 마무리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네요.

뉴스가 많았던 중남미


엄청난 희생을 낳은 아이티 지진

"1월 12일, 세상이 흔들렸다."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를 강타한 지진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증언입니다. 
아이티는 중미 히스파니올라 섬 서부에 위치한 아주 가난한 나라죠. 아프리카에서 미주로 끌려온 해방노예들이 정착한 땅, 영국 식민통치를 거쳐 힘겹게 독립했지만 1980년대까지 독재정권의 수탈에 시달렸고, 그 뒤에는 정정불안에 시달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규모 7.0의 강진이 터져 수도가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특히 아이티 강진은 인구가 밀집해 있고 건축물이라 해봤자 대부분 판잣집인 대도시 바로 밑 지하에서 일어난 탓에 피해가 컸습니다. 최소 23만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비운의 아이티 
아이티와 미국 
아이티 지진 계기로 본 재난의 정치학 

난민들 여전히 생존의 위기

이재민이 130만명이나 됐지만 재건작업은 지지부진합니다. 허리케인 피해가 겹친 데다 최근에는 콜레라까지 퍼져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요 몇 달 동안에는 유엔 평화유지군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과 격렬한 시위로 유혈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재건작업을 제대로 도와주기는커녕 점령군처럼 군림하고 오히려 외부의 콜레라를 아이티에 전파한 유엔 평화유지군들에 주민들이 철수를 요구하는 실정이죠.

11월 28일에는 대선이 실시됐는데,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돼 미주기구(OAS) 국제전문가 패널이 대선 결과를 재검표하기로 했습니다. 원래는 이달 20일 선거결과를 발표하고, 다득표 2명이 결선투표를 치를 예정이었지만 개표 결과가 확정되지 않아서 공식 결과발표는 내년에나 나올 것 같습니다.

'재난에 대비한' 칠레

2월 27일에는 규모 8.8 지진이 칠레 서부 태평양 연안에서 발생했습니다. 지질학자들이 ‘메가스러스트(megathrust)’라 부르는 초대형 지진이었죠. 대형 쓰나미를 동반하는 메가스러스트는 지각판이 다른 지각판 밑으로 들어갈 때 일어난다고 합니다. 하지만 칠레의 피해는 지진 규모에 비해 크지 않았습니다. 칠레는 환태평양 지진대, 이른바 ‘불의 고리’에 위치하고 있어 지진이 많이 일어나는 나라입니다. 칠레 정부의 철저한 대비와 철저한 내진설계 덕에 피해규모가 작았던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사망자는 쓰나미 피해 포함해서 700여명이었습니다.

세계가 환호한 칠레 광부 구출

8월 5일, 광부 33명이 북부 코피아포의 산호세 구리광산에 갇혔습니다. 지하 700m 가까이, 깊숙한 갱도에 매몰됐기 때문에 다들 죽은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매몰 17일 만에 지상으로 생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후 세계는 광부들 구출작전에 촉각을 곤두세웠지요. 광부들의 움직임, 지하에서 벌어지는 일들, 칠레 구조당국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쏠렸습니다.



“비바 칠레”… 영화처럼 지하 622m서 길어올린 기적
전세계가 가슴졸인 ‘휴먼 리얼리티 쇼’
칠레 광부들, 매몰에서 구출까지 

마침내 69일 만인 10월 12일 33명 모두가 무사히 구출됐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하나라도 더 구하기 위해 사력을 다 한 칠레 정부의 구조 노력에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지하에서 인간이 체류한 최장기 기록이었답니다. 인간승리의 극적인 드라마는 곧 영화로도 만들어질 것 같으니 기다려보죠.

브라질 대선에서 룰라의 후계자 당선

10월 31일 결선투표에서 노동자당의 여성후보 지우마 호세프가 재벌 기업가 출신인 중도우파 조제 세하 전 상파울루 주지사를 누르고 승리, 브라질 역사상 첫 여성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내년 1월 1일 취임하는 호세프는 과거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투쟁을 벌였던 역전의 용사랍니다. 하지만 사실 작년까지도 지지율에서 야당 후보에 밀리고 있었죠. 막판 지지율을 끌어올려 승리한 데에는 역시 룰라의 후광이 컸습니다.


2010년 12월 24일, 자기 자리를 물려받을 지우마 호세프 당선자와 나란히 포즈를 취한 룰라. /로이터



브라질의 노동운동가에서 세계 개도국 지도자가 된 룰라의 리더십이 다시 조명받았습니다. 일단 호재가 많았습니다. 재작년 초에 브라질 해안에서 세계적인 규모의 거대 유전이 발견돼 룰라는 정말 복받은 사람이구나, 이 정도면 하늘이 내린 지도자로구나 농담 삼아 국제부 기자들끼리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또 2014년 월드컵 유치했지요, 그리고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유치했지요. 하지만 룰라의 인기가 어디 순전히 행운이겠습니까. 이런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를 유지하기 앞서 룰라가 국제사회에서 보여준 제3세계 리더로서의 면모, 선진국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개도국들의 연대를 모색해서 국제무대에서 제 목소리 내게 하고 빈국들은 지원해주고 했던 노력들이 다 빛을 발한 거였죠.

경제도 성공적으로 운영

남미 경제전문 주간지 라틴 비즈니스 크로니클은 15일 ‘룰라의 유산’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룰라는 브라질을 신흥경제대국으로 만들었다”면서 특히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것은 “룰라의 실용적인 리더십 덕”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경제정책에 있어서는 룰라야말로 진정한 실용주의자였죠. 야당이라 할지라도 능력에 우선해 책임자를 지명했고, 사회주의적 정책에 초점을 두면서도 성장정책을 동시에 추진해 양극화 대신 중산층을 늘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입니다.

북부 페르남부쿠주의 빈민가에 사는 한 여성은 BBC방송 인터뷰에서 “브라질에 룰라 정부 이전에 정부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브라질의 빈곤율은 룰라 집권 초기 34%에서 지금은 22%로 낮아졌습니다.

중남미 국가들 마약갱 사태 갈수록 악화

미국과 국경을 맞댄 멕시코의 시우다드 후아레스 주재 미국 총영사관에 근무하던 미국인 영사관 부부 등 3명이 마약갱들에게 숨진 것을 비롯, 멕시코의 갱 사태와 인명살상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관광지인 칸쿤에서 훼손된 사체들이 발견되고, 폐광에서 시신들이 무더기로 나오는 등 마약조직들 범죄 때문에 최악의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자메이카에서는 지난 5월 악명 높은 마약조직 두목이 정부군과 실전을 방불케 하는 교전 끝에 체포됐고요.

카스트로 건재 과시

건강 때문에 국가원수직에서 물러난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83)이 지난 7월 4년 만에 공식 석상에 모습을 보였습니다. 카스트로가 아바나 시내 국립과학수사센터를 방문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관영매체 기자들의 블로그를 통해 공개됐습니다.


카스트로 건재 과시 


카스트로는 2006년 7월 장출혈로 수술을 받은 뒤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당시 국방장관)에게 권력을 넘겼죠. 2008년 2월 라울이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공식 승계했으나 카스트로는 틈틈이 외부인사들을 만나고 관영지 그란마에 기고하며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공산당 대표직도 그대로 갖고 있습니다. 지난 5월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해 “남북한 갈등을 부추기려는 미국의 음모에서 비롯된 조작극”이라는 글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쿠바 반체제 인사 옥중 사망 


7년간 감옥생활을 해온 저명한 쿠바 반체제인사 올란도 사파타 타마요(42)가 85일간의 옥중 단식투쟁 끝에 2월 23일 숨지면서 쿠바 인권 논란이 다시 벌어졌습니다. 쿠바 대주교가 공개적으로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는 당국을 비판하기도 했는데요. 라울 카스트로 체제하에서 쿠바가 점진적인 개혁을 추진하지 않을까 하는 관측이 적지 않았는데, 아직은 그런 조짐이 안 보입니다. 


다만 피델 카스트로가 석달 전 미국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쿠바의 경제모델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면서 사회주의 경제정책에 회의를 보이는 듯한 발언을 했다 해서 눈길을 끌었는데요. 앞으로 어떤 속도로든 변화가 있지 않을까 하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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