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메리카vs아메리카

미 '대표 외교관' 홀브루크 사망

딸기21 2010. 12. 14. 18:01
728x90

미국 외교관 리처드 홀브루크가 타계했네요. 


며칠 전 대동맥 파열로 수술을 받다가 중태에 빠졌다는 보도가 나왔었는데요. 미국시간 13일 홀브루크가 사망했다고 미국 국무부가 발표했습니다. 지난 10일부터 계속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었는데, 상태가 악화되면서 결국 숨을 거뒀습니다. 


미국 국무장관이 정치적인 자리라면, 실제로 그 밑에서 전문적인 외교관으로서 세계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죠. 홀브루크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한반도 관련 문제에도 많이 관여를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귀에 익은 이름인데요. BBC방송은 인터넷판 톱기사로 “홀브루크 미국 특사가 사망했다”고 보도했고요.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강력한 목소리가 숨졌다”고 전했습니다.



홀브루크가 사망하자 오바마는 “우리시대 최고의 외교관이었다”고 말했고, 빌 클린턴 전대통령도 “세계에 희망을 주고 평화를 정착시킨 사람”이라는 성명을 냈습니다. 클린턴 국무장관도 성명을 통해 “오늘 미국은 가장 헌신적이고 치열했던 사람을 잃었다”며 애도했습니다.






올해 69세인 홀브루크는 독일계 유대 혈통입니다. 1962년에 미 브라운대학을 졸업한 후 베트남에서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린든 존슨 행정부에서 국방부 베트남전 백서, 이른바 <펜타곤 페이퍼> 작성에도 관여해 그 중 1권을 집필했다고 합니다.

경력은 아주 다양합니다. 잡지 편집자, 저술가, 대학교수, 평화봉사단(피스코어·Peace Corps) 간부로 일했고 2년 전 무너진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에서 근무한 적도 있습니다.

저널리스트 경력을 살펴보면 시사주간지 ‘포린폴리시(여담이지만 워낙 저렴한 내용들로 채워지는지라 저는 개인적으로 이 잡지는 증말이지 좋아하지 않습니다;;)와 ‘뉴스위크’의 편집자로 일한 적이 있고요.

그러다가 지미 카터 선거캠프에서 보좌관으로 활동했고, 카터 정부 하에서 1977년부터 81년까지 국무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지냈습니다. 국무부를 나온 뒤에는 한때 월스트리트에서 컨설팅 회사를 차려, 큰 돈을 벌기도 했습니다.

유럽-아시아 아우른 외교 전문가

미국 국무부 차관보들은 지역 담당으로 나뉘는데요. 두 개 지역의 차관보를 맡았던 사람은 홀브루크 말고는 없다고 합니다. 홀브루크는 77년부터 81년까지 아태 담당 차관보, 94년부터 96년까지는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유럽 담당 차관보를 역임했습니다.

작년부터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특사를 맡아서 대테러전 뒤처리를 하고 있었죠. 최근에는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과 부패 문제로 마찰이 생겨 고생을 했습니다. 밀어붙이는 성격 때문에 별명이 불도저, 성난 황소(raging bull)였습니다.


외교관이 장관도 아니면서 홀브루크처럼 유명해지기는 쉽지 않죠. 홀브루크가 명성을 얻게 된 것은 동유럽 분쟁 때문이었습니다. 유럽 담당 차관보를 하기 직전에 93년부터 94년까지 1년 동안 독일 대사를 지냈습니다. 1992년부터 동유럽은 보스니아 내전 때문에 아수라장이었습니다.


홀브루크는 내전의 여러 파벌들과 민족 집단들을 불러 모아 한 자리에 앉히는 수완을 발휘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1995년의 데이튼 평화협정이죠. 어느 협정이나 그렇듯 데이튼 평화협정도 한계는 많았습니다만, 어쨌든 보스니아 내전은 끝났고 홀브루크는 중재자로서의 면모를 톡톡히 발휘했죠. 노벨 평화상 후보로도 거론됐고요.



한때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 후임 물망에도 올랐는데, 클린턴 대통령이 예상을 뒤집고 매들린 올브라이트 장관을 발탁했죠. 그래서 홀브루크는 그 뒤로는 유엔 대사로 근무했습니다.

민주당 대선 후보들을 도와서 외교 자문역도 많이 했습니다. 2004년 존 케리 상원의원이 대선에 나갔을 때에 외교분야 정책 자문을 해줬고, 2008년에는 민주당 내 후보 경선 때 힐러리 클린턴 캠프에서 자문역을 맡았었지요.

그런데 오바마 정부 출범 때에는 힐러리 클린턴과 함께 국무장관 후보로 경합을 벌였습니다. 묘한 인연인데, 결국 여기서도 홀브루크는 고배를 마셨습니다. 그 대신 오바마가 홀브루크를 아프간·파키스탄 특사로 임명했는데 이전 부시 행정부 시절 아프간 특사였던 잘마이 칼릴자드(나중에 아프간 대사가 됐습니다)보다 훨씬 톱클라스의 인사라서, 오바마 정부가 아프간전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었습니다.

한국과의 인연

홀브루크가 아태 담당 차관보를 지냈던 77년부터 81년 사이에 한국은 10‘26, 12·12와 광주항쟁 등 격동의 시기를 보냈습니다.

홀브루크는 10·26 사건 직후 한국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에 깊이 관여했던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시기 미국의 한반도 정책 수립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고요. 특히 신군부가 12·12 쿠데타를 일으키자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 대사를 통해 신군부에 경고 메시지를 전했던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단한 '위인'이라 할 수도 없는, 그저 외신에서 이름만 보던 홀브루크라는 사람에 대해 길게 늘어놓는 것은...

우리도 좀 '유명한 외교관'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자기 딸 외교부에 데려다 앉힌 외교장관 같은 사람들 말고...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