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아했던 소설입니다. 소설이라고 하기엔, 그냥 담담하게 들려주는 에세이같지요. 루쉰의 이름이 실명으로 나오기도 하고요. 아큐정전의 뒷부분에 같이 실려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좋아하는 글이라, 조금 길지만 실어봅니다. 차근차근 읽어주세요.
이 글을 읽으면 '달빛의 강'이 떠오릅니다. 무라카미 류의 '달빛의 강' 말고, 더 잔잔하고 아련하고 차가운 공기로 가득찬 그런 새벽의 강 말이죠. 강가에서 새벽을 맞아본 적이 있기는 합니다만, '달빛의 강'이 떠오른다고 한 것은 순전히 이미지 차원을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길'에 대한 몇가지 말들이 생각나지요. 길은, 가면 뒤에 있다. 아마도 황지우의 시에 나온 구절이 아니었나 싶고요, 또 "길은 내 뒤에서부터 시작된다"던 누군가의 말이 기억납니다.
새로 읽으며 알게된 것.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에 '꽈배기 서시'가 나와서 웃었는데, 가만히 보니 루쉰의 '두부집 서시'가 원조였군요. 잘 모르겠습니다. 중국인들이 흔히 쓰는 표현인지는. 다시 읽어도 좋은 글, 이 글이 바로 그런 글입니다. :)
루쉰, <고향>
나는 혹독한 추위를 무릅쓰고 2천여 리나 떨어진 먼 곳에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20여 년 동안이나 떠나 있었던 곳이었다.
마침 한겨울이라 그런지 고향이 가까워지면서 하늘은 잔뜩 찌푸렸고, 차가운 바람이 선창 안에까지 윙윙 소리를 내며 불어닥쳤다. 바람받이 휘장 사이로 밖을 내다보니 뿌옇게 흐린 하늘 아래 여기저기 쓸쓸하고 황폐한 마을이 누워 있었다. 아무런 생기도 느낄 수 없는 풍경이었다. 나는 마음이 슬프고 허전해졌다.
아! 여기가 내가 지난 20년 동안 늘 기억하며 그리워하던 고향이란 말인가? 내가 기억하고 있던 고향은 전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내 고향은 이보다 훨씬 더 좋았다. 그러나 내가 그 아름다움을 머리 속에 떠올리며 좋은 점을 말해보려고 하면 그 모습은 순식간에 지워져버린다.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그림자도, 형상도 모두 사라져 버리고, 해야 할 말마저 자취를 감춰 버린다.
아마 고향이란 것은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난 스스로를 위로하며 이렇게 해석해보았다. 비록 아무 발전이 없다고 해도 또한 내가 느낀 것처럼 쓸쓸하거나 허전한 것도 아니다. 단지 나의 심정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 뿐이다. 내가 이번에 고향에 돌아온 것은 사실 애당초부터 유쾌한 심정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번에 고향과 작별하기 위해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우리 가족이 함께 살던 오래된 집은 이미 성(姓)이 다른 사람에게 공동으로 팔아 버린 상태다. 집을 비우고 넘겨줘야 할 기한이 바로 금년 말까지였다. 그래서 정월 초하룻날 이전에 고향에 돌아와서 정들었던 옛집과 영원히 이별하고, 정든 고향을 멀리 떠나 내가 밥벌이를 하고 있는 다른 고장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나는 고향 집 대문 앞에 이르렀다.
기와지붕 용마루 위에는 마른풀들이 가닥가닥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그것은 이 오래된 집이 어쩔 수 없이 주인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별채에 살던 다른 친척들은 이미 거의 이사를 한 모양이어서 무척 조용했다. 내가 우리 집 방문 가까이 갔을 때 어머니께서는 벌써 마중을 나와 계셨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여덟 살 난 조카 굉이(宏兒)가 뛰어나왔다.
어머니께서는 나를 보고 무척 기뻐하셨지만 또 여러 가지 처량한 심정을 감추고 계신 것 같았다. 날더러 앉아서 차나 마시자고 하시면서도, 이사에 관해서는 선뜻 말씀을 꺼내지 못하셨다. 굉이는 아직 나를 본 적이 없는지라 멀찍이 떨어져서 내 얼굴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이사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했다. 나는 이미 우리가 살 고장에 거처할 셋집을 계약해 놓았고 또 가구도 몇 가지 사두었다는 말씀을 어머니께 드렸다. 그리고 이제 집안에 있는 목기(木器)들을 모조리 팔아서 필요한 가구를 몇 가지 더 장만해야겠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니께서도 좋다고 하셨다. 짐짝도 대충 정리해서 한 군데 챙겨놓았고, 목기도 운반하기 불편한 것들은 절반쯤 팔아버렸다는 말씀이었다. 다만 아직 그 판 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루 이틀 쉬고 나서 떠나기 전에 친척 어른들을 한 번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라. 그런 다음에는 바로 떠날 수 있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그리고 룬투(閏土) 얘긴데 말이다. 그 애가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네 소식을 묻곤 했단다. 너를 꼭 한 번 만나고 싶다고 하더라. 네가 집에 도착할 날짜를 그 애한테 대충 알려줬으니, 아마 곧 찾아올 거야."
그때 내 머리 속에는 갑자기 기묘한 한 폭의 그림이 번갯불처럼 퍼뜩했다. 진한 쪽빛 하늘에 둥그런 황금빛 보름달이 걸려 있다... 그 아래는 바닷가의 모래사장에 끝없이 파아란 수박밭이 펼쳐진다. 그 가운데 열 두어 살쯤 되는 소년이 목에는 은 목걸이를 걸고 손에는 쇠 작살을 들고서 어떤 오소리를 힘껏 찌른다. 그러나 오소리란 놈은 꿈틀 몸을 한 번 비틀더니 도리어 소년의 가랑이 밑으로 빠져 도망쳐버린다. 그 소년이 바로 룬투였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것은 기껏해야 열 몇 살밖에 안되던 무렵이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거의 30여 년 전의 일이었다. 그땐 나의 아버님께서도 생존해 계셨고, 집안 형편도 좋아서 나는 말하자면 어엿한 집안의 도련님이었다.
그해는 우리 집에서 조상에게 드리는 큰제사를 치러야 할 순서였다. 그 제사는 삼십여 년만에 한 번씩 차례가 돌아오는 것이어서 아주 정중하게 치러야만 했다. 정월에 조상의 조각상 앞에서 제사지낼 때에는 차려 놓는 물건도 많고 제기(祭器)도 가장 좋은 것을 특별히 골라서 썼다. 또 제사에 절하러 오는 사람도 무척 많아서 제기를 도둑맞지 않으려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했다.
그때 우리 집엔 망월(忙月)이 한 사람 있었다[우리 고향에서는 남의 집에서 일하는 사람을 세 가지로 나눈다. 1년 내내 일정한 집에 고용되어 일하는 사람이 장년(長年), 날짜를 따져서 남의 집에 가서 일하는 사람을 단공(短工), 자기 농사를 지으면서 섣달 대목이나 명절 때, 또는 도지료를 받아들일 때만 일정한 집에 가서 일하는 사람을 망월이라 한다). 그런데 그 때 어찌나 바빴던지 그 망월은 아버님께 말씀을 드려 자기 아들 룬투에게 제기를 지키도록 시켰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버님은 그렇게 하라고 승낙하셨다. 나도 대단히 기뻤다. 난 진작 룬투라는 이름을 들은 일이 있었고, 또 그 애가 나와 거의 같은 또래인데 윤달에, 그것도 오행 중에서 토가 빠진 날짜에 태어났다고 해서 그 애 아버지가 이름을 룬투로 지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애는 또 새 덫을 놓아서 새를 잘 잡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허구헌 날 새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새해가 되면 룬투도 올 테니까 말이다. 가까스로 섣달 그믐께가 되었는데, 어느 날 어머니께서 룬투가 왔다고 일러주셨다. 나는 날아갈 듯 기뻐하며 밖으로 뛰어나가 보았다.
그 애는 마침 부엌에 있었다. 발그스름한 둥근 얼굴에 머리에는 조그마한 털모자를 쓰고 목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은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이것은 그 애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애가 일찍 죽을까봐 두려워서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고 이런 목걸이를 걸게 해서 룬투를 지키도록 한 것이다. 룬투는 사람들 앞에서 무척 부끄럼을 탔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이 옆에 없을 때면 그 아이는 내게 이야기를 걸어왔다. 한나절도 못되어 우리는 금방 친해졌다.
우리가 그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룬투가 성에 들어와서 무척 기뻐하던 기억이 난다. 그 아이는 그 동안 자기가 보지 못하던 것들을 성 안에서 많이 구경했다고 말했다.
그 다음날, 나는 룬투에게 새를 잡아달라고 졸랐다. 그러자 룬투는 말했다.
"그건 안돼. 먼저 큰 눈이 와야 해. 모래사장에 눈이 오면, 눈을 쓸어 빈터를 만들고, 거기에 짤막한 막대기로 대나무 소쿠리를 버티어 놓는 거야. 그 다음에 나락 쪼가리를 거기 뿌려 놓았다가 새가 와서 쪼아 먹고 있으면 내가 멀찍이 떨어져 있는 곳에서 줄을 잡아당기지. 그러면 대나무 소쿠리가 넘어지고, 새는 소쿠리 안에 갇혀 도망칠 수 없게 되지. 그렇게 무슨 새든지 다 잡을 수 있어. 참새, 꿩, 산비둘기, 파랑새..."
그래서 나는 눈이 내리기를 간절하게 기다렸다. 룬투는 또 내게 말했다.
"지금은 너무 추워. 나중에 여름이 되거든 우리 집에 놀러와. 우리는 낮엔 바다에 가서 조개껍데기를 줍는다? 붉은 것, 푸른 것, 뭣이든 다 있어. 귀신을 쫓는 조개도 있고, 부처님 손 같은 조개도 있어. 그리고 밤엔 아버지하고 수박을 지키러 간단다. 너도 함께 가자."
"네가 도둑도 지킨단 말이야?"
"아니야. 우리 동네에선 길 가던 사람이 목이 말라서 수박 한 개쯤 따먹는 거야 도둑질도 아니지. 우리가 지키는 것은 두더지, 고슴도치 그리고 오소리야. 달밤에 어디선가 사각사각 소리가 나면 그건 오소리란 놈이 수박을 깨물어먹는 거야. 그러면 쇠 작살을 들고 살금살금 다가가서..."
그때 나는 이 오소리란 놈이 어떤 짐승인지 전혀 몰랐다. 몰론 지금도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 그저 어쩐지 조그만 개처럼 생긴, 영악스러운 동물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놈이 물거나 그러지 않아?"
"쇠 작살이 있잖아. 가까이 가서 오소리를 발견하면 당장 찔러버려야 해. 그 자식은 워낙 약아빠져서 오히려 사람 쪽으로 달려들어선 가랑이 밑으로 빠져 달아나 버리거든. 털이 마치 기름칠한 것처럼 매끄러우니까..."
나는 그때까지 세상에 이렇게 신기한 일이 많은 줄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바닷가에 형형색색의 갖가지 조개껍데기가 있고, 또 수박에 그렇게 위험한 내력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수박이란 그저 과일가게에서 파는 것으로만 알았을 뿐이었다.
"우리 모래사장엔 말이야, 밀물이 들어오면 날치들이 팔딱팔딱 뛰어오른단다. 그 녀석들은 모두 청개구리처럼 두 다리가 달려 있어서..."
아아! 룬투의 가슴 속엔 그때까지 내 주변의 친구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신기한 일들이 무궁무진하게 간직되어 있었던 것이다. 룬투가 바닷가에서 그렇게 신기한 것들을 만나고 있을 때, 그 애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채 모두 나처럼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안마당에서 네모진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정월은 다 지나가 버리고 룬투는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나는 그만 어쩔 줄 모르고 큰소리로 엉엉 울었다. 룬투도 부엌에 숨어서 울면서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룬투는 아버지 손에 이끌려 가버리고 말았다.
그 애는 나중에 자기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내게 조개껍데기 한 꾸러미와 아름다운 새의 깃털 몇 개를 보내주었다. 나도 한 두 차례 뭔가 그 애에게 선물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런 뒤로는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다.
이제 어머니께서 그 애의 얘기를 꺼내시자 나는 어렸을 적의 그 기억이 갑자기 번갯불처럼 되살아나서 마치 나의 아름다운 고향을 다시 찾은 것만 같았다. 나는 대뜸 어머니께 물었다.
"그것 참 반갑군요! 그래, 룬투는 어떻게 지내요?"
"그 애 말이냐? 걔 살아가는 것도 무척 힘든 모양이더라."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밖을 내다보시더니 다시 말씀하셨다.
"저 사람들이 또 왔구나. 말로는 목기를 사러왔다고 그러면서 닥치는대로 아무 물건이나 손에 쥐고 가 버리니 내가 잠깐 나가봐야겠다."
어머니는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셨다. 문밖에서 여자들 몇 사람이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조카 훙얼을 불러다가 내 앞에 앉히고 글씨를 쓸 줄 아는지, 다른 고장에 가보고 싶은지 등을 물어보았다.
"우리, 기차를 타고 가요?"
"그래, 우린 기차를 타고 갈 거다."
"배는요?"
"먼저 배를 타고, 그런 다음에..."
"어머나, 세상에! 이렇게 컸네! 수염도 길게 기르고!"
갑자기 찌르는 듯 날카로운, 무척 괴퍅한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나는 깜짝 놀라서 얼른 고개를 들었다.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입술이 얇은 쉰 살 가량 되어 보이는 여자가 내 앞에 서 있었다. 두 손을 허리에 짚고 치마도 두르지 않은 채 두 다리를 벌리고 서 있는 모습은 영락없이 제도기구 가운데 하나인 콤파스가 두 발을 벌리고 있는 모습과 똑같았다.
나는 너무 놀라서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날 모르겠어? 이전에 내가 안아준 일도 있는데!"
나는 더욱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마침 다행스럽게도 어머니가 들어오시더니 옆에서 말씀하셨다.
"저 앤 너무 오랫동안 객지에 나가 있어서 아마 까맣게 잊었을 거야."
어머니는 그러더니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아마 너도 기억이 날 거야. 저 양반이 우리 집 길 건너편에 사시던 양씨네 둘째 아주머니시단다... 왜 그 두부가게를 하던..."
아, 그렇지. 이제 생각이 난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 건너편의 두부가게에서 하루 종일 앉아 있던 양씨네 둘째 아주머니였다. 사람들은 모두 이 여자를 '두부가게 서시(西施)'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때는 하얗게 분칠을 했었고, 지금처럼 광대뼈도 튀어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입술도 이렇게 얇지는 않았다. 또 그 때는 하루 종일 가게에만 앉아 있었던 탓인지 나는 이런 콤파스 같은 자세를 본 적이 없었다.
당시에 마을 사람들은 이 여자 덕분에 두부가게의 장사가 잘 된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 때만 해도 나는 나이가 어린 탓이었는지 그런 말에 아무 느낌도 받지 못하고 그 동안 그만 고스란히 잊어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 콤파스는 지금 몹시 비위가 상하는 모양이었다. 마치 업신여기는 듯한 표정으로 마치 나폴레옹도 모르는 프랑스 사람이나, 워싱턴도 모르는 미국 사람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냉소에 가득 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잊었다고? 하긴 정말 귀한 양반들은 워낙 눈이 높으시니..."
"설마 그럴 리가... 전 그저..."
"그럼 내 도련님한테 할 얘기가 있소. 도련님네는 부자가 됐고, 또 이렇게 무거운 짐들을 일일이 운반하기도 거추장스러울 테니, 내게 주지 그래요. 이런 낡고 하잘 것 없는 물건들을 어디다 쓰겠소. 우리 같은 가난뱅이에겐 그래도 이런 물건이 쓸모가 있을 테니까 말이오."
"난 부자가 아닙니다. 또 이걸 팔아야 그 돈으로..."
"아이구 참! 지사 벼슬까지 하고서도 부자가 아니라고? 당신은 지금 소실이 셋이나 되고 문밖에만 나서면 여덟 사람이 떠메는 큰 가마를 타면서도 부자가 아니란 말이야? 흥! 그런 말로 날 속일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이제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저 입을 다물고 묵묵히 서 있었다.
"원 세상에! 부자가 될수록 지갑 끈을 죄고, 지갑 끈을 죌수록 더욱더 부자가 된다더니 정말 그 말 그대롤세."
콤파스는 화가 나서 돌아서더니 투덜대면서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러나 나가면서 슬쩍 어머니의 장갑 한 켤레를 허리춤에 쑤셔 넣고 사라져버렸다.
그 다음에는 또 근처의 친척들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들을 상대하면서 틈틈이 짐을 꾸려야 했다. 이렇게 사나흘이 지나갔다.
날씨가 몹시 춥던 어느 날 오후에 나는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며 앉아있었다. 그러다가 나는 밖에서 사람이 들어오는 인기척에 머리를 돌려 바라보았다. 그를 보고 나는 그만 놀라서 부랴부랴 몸을 일으켜 맞으러나갔다.
이번에 들어온 사람은 바로 룬투였다. 보자마자 나는 그가 룬투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고 있던 그 룬투는 아니었다.
키는 갑절이나 커졌고, 옛날 발그스름하던 둥근 얼굴은 누렇게 윤기가 없어졌다. 얼굴에 깊은 주름이 패여 있고, 눈도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언저리가 온통 벌겋게 부어 올라 있었다. 바닷가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은 하루 종일 불어닥치는 바닷바람 때문에 대개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다.
그는 너덜너덜한 털모자를 쓰고, 몸에는 얇은 솜옷을 걸치고 있었다. 초라한 온몸이 추위 때문에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손에는 종이봉지 하나와 기다란 담뱃대를 들고 있었다. 그 손 역시 내가 기억하고 있던, 통통하고 혈색이 좋은 손은 아니었다. 거칠고 금이 가고 여기저기가 터져서 마치 소나무껍질 같았다.
나는 이 때 너무 흥분하여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아, 룬투 형 이제... 오셨구료..."
이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나는 하고 싶은 많은 말들이 꿰어 놓은 구슬같이 계속 터져나올 것 같아다. 꿩이며, 날치며, 조개껍질, 오소리... 그러나 어쩐지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 그 말들은 머리 속에서만 빙빙 돌 뿐,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는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얼굴에는 기쁨과 처량함이 섞인 표정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는 뭐라고 입술을 달싹이긴 했지만 그래도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더욱 공손한 태도를 취하더니 분명히 이렇게 불렀다.
"나으리!"
나는 오싹 소름이 끼치는 것 같았다.
우리 둘 사이에는 이미 두꺼운 장벽이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 슬퍼해야 할 장벽 말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뒤를 돌아다보며 말했다.
"쉐이성(水生)아! 나으리께 인사를 드려라."
그는 자기 등뒤에 숨어 있던 어린 아이를 앞으로 끌어냈다. 그 아이야말로 20년 전의 룬투 그대로였다. 단지 안색이 나쁘고 비쩍 마른데다 목에 은 목걸이가 없을 뿐이었다.
"이놈이 다섯째 놈입니다. 아직 세상 구경을 못해서 그런지 비실비실 낯만 가리고..."
어머니와 흥얼이 이층에서 아래로 내려왔다. 아마 룬투의 말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룬투는 어머니께 말했다.
"마나님, 보내주신 편지는 벌써 받았습죠. 정말 어찌나 기뻤는지, 나으리께서 돌아오신다는 것을 알고..."
"룬투 자네 왜 이렇게 서먹서먹하게 인사치레를 하나. 자네들 옛날에는 서로 너, 너 하고 부르지 않았나? 옛날같이 그냥 쉰이라 부르게나."
어머니는 기뻐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참, 마나님두 무슨 말씀을... 그게 될 법이나 한 얘깁니까. 그땐 철없는 어린 아이여서 아무 것도 모르고..."
룬투는 이렇게 얘기하면서 또 쉐이성에게 이리 와 인사를 드리라고 했다.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부끄러하면서 저의 아버지 등뒤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그 애가 쉐이성인가? 다섯째랬지? 모두 낯선 사람뿐이니 겁을 내는 것도 당연하지. 얘 훙얼아, 네가 쉐이성이랑 같이 밖에 나가 놀아라."
훙얼은 이 말을 듣고 쉐이성에게 손짓을 했다. 쉐이성은 그제서야 한결 가벼운 걸음으로 훙얼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어머니는 룬투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권하셨다. 그는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겨우 자리에 앉았다. 그는 자리에 앉아 긴 담뱃대를 탁자 옆에 기대 놓더니 종이봉지를 앞으로 끌어당기면서 말했다.
"겨울이라서 변변한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건 푸른 콩을 말린 것인데, 정말 변변찮지만 그래도 저희 집에서 말린 것이라서 나으리께서 맛이라도 보시라고..."
나는 그가 사는 형편이 어떤지 물었다. 그는 그저 머리를 흔들 뿐이었다.
"말이 아닙니다. 여섯째 놈까지 나서서 집안 일을 거드는데도 먹고 살 수가 없어요... 세상 공기는 온통 뒤숭숭하고... 무슨 이유도 없이 여기저기서 돈만 마구 거둬가고 ... 그러니 버는 게 형편이 없죠. 게다가 소출은 점점 나빠져요. 농사를 지어서 짊어지고 가서 팔려고 하면 세금만 몇 번씩 내야 합니다. 그러니 본전만 까먹고 말죠. 그렇다고 팔지 않고 두자니 그냥 썩혀버릴 형편이구요..."
그는 머리를 흔들어댔다. 숱한 주름살이 새겨져 있는 룬투의 얼굴은 마치 석상처럼 전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가 느끼는 감정은 오직 괴로움뿐이다. 그런데 그것을 표현하려 해도 표현할 방법이 없는 듯했다. 그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더니, 이윽고 담뱃대를 집어들고 묵묵히 빨았다.
어머니가 물어보자 그는 집안 일이 바빠서 내일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점심도 먹지 않은 것을 알고 어머니는 부엌에 가서 손수 밥을 볶아먹도록 일렀다.
그가 나간 뒤, 어머니와 나는 그가 사는 형편을 이야기하며 탄식했다. 자식들은 많고, 농사는 해마다 흉작이고 세금은 가혹하다. 군인, 강도떼, 벼슬아치들, 지방 토호 그런 따위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그를 괴롭혀 마치 장승처럼 만들어버린 것이다. 어머니는 우리가 가져가지 않아도 될 물건은 모두 그에게 주어서 그가 갖고 싶은 걸 직접 고르게 하자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오후에 그는 몇 가지 물건을 골랐다. 기다란 탁자 두 개, 의자 네 개, 향로와 촛대 한 벌씩 그리고 짐을 짊어질 대 쓰는 가로대 한 개였다 그는 또 재(우리 고향에서는 밥을 지을 때 짚을 땐다. 그리고 그 재는 모래밭에 뿌리는 비료로 쓴다)를 전부 달라고 했다. 우리가 떠날 때에 배로 실어 가겠다는 얘기였다.
밤에 룬투와 나는 또 이것저것 자질구레한 얘기를 나눴다. 그러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잡담일 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그는 쉐이성을 데리고 돌아갔다.
그로부터 아흐레가 지났다. 바로 우리가 떠나야 할 날이다. 룬투는 아침 일찍부터 우리 집에 와 있었다. 그러나 쉐이성은 데려오지 않고 그 대신 다섯 살짜리 계집애를 데리고 와서 배를 지키도록 했다.
우리는 하루 종일 정신없이 바빴다. 그래서 룬투와 나는 다시 한가하게 이야기를 나눌 틈도 없었다. 집으로 직접 찾아온 손님도 많았고, 전송하러 온 사람, 이것저것 물건을 가지러 온 사람, 전송도 할 겸 물건도 가져갈 겸 온 사람 등 가지각색의 사람들로 붐볐다. 저녁 때 우리가 배에 오를 무렵에는 이 오래된 집에 있던 낡고 오래된, 크고 작은 온갖 잡동사니들은 마치 빗자루로 쓸어버린 것처럼 깨끗이 사라져버렸다.
우리의 배는 앞으로 나아갔다. 양쪽 강기슭에 줄지어 서 있는 푸른 산들은 황혼빛에 검푸르게 물들고 있었다. 그 산들은 하나씩 하나씩 배 뒤쪽으로 사라져갔다.
훙얼은 나와 함께 선창에 몸을 의지하고 바깥의 아스라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 아이는 갑자기 이렇게 물었다.
"큰아버지! 우리 이제 언제 돌아와요?"
"돌아와? 너는 어째서 가기도 전에 돌아올 생각부터 하는 거냐?"
"하지만, 쉐이성이 자기 집으로 놀러오라고 나와 약속했는걸..."
훙얼은 크고 새까만 눈을 똑바로 뜨고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생각에 잠기는 것이었다.
나와 어머니는 갑자기 멍해졌다. 그리고 다시 룬투의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어머니가 말씀하시기를 그 '두부집 서시'라는 양씨네 둘째 아주머니는 우리 집이 이삿짐을 챙기면서부터 매일같이 꼭 찾아왔다고 한다. 엊그제 그 여자는 잿더미 속에서 접시와 그릇을 열 몇 개씩 찾아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룬투가 재를 나를 때 함께 가져가려고 숨겨둔 것이라고 따따부따 떠들어댔다고 한다.
양씨네 아주머니는 이 발견으로 마치 큰 공이라도 세운 것처럼 자랑하며 '구기살(狗氣殺, 우리 고장에서 닭을 기를 때 쓰는 도구이다. 나무판 위에 창살을 치고 그 속에 모이를 넣어두면 닭은 목을 길게 뽑아서 쪼아먹을 수 있지만 개는 그럴 수가 없어서 그저 바라보며 속을 태울 뿐이다)'을 집어들고 쏜살같이 달아났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전족을 한 그 여자가, 그렇게 뒤축을 높인 신발을 신고 어쩌면 그렇게 빨리 뛰어가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
옛 고향집은 내게서 점점 멀어져갔다. 그만큼 고향의 산천도 점점 멀어지며 작아졌다. 하지만 나는 아무 미련도 느끼지 않았다. 나는 단지 보이지 않는 높은 담이 나의 주위를 둘러싸여 나를 외톨이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뭔가 헤아리기 힘들게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저 수박밭에서 은 목걸이를 걸고 있는 작은 영웅의 형상은 무척 뚜렷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조차 갑자기 흐릿해졌다. 이것 역시 나를 무척 슬프게 했다.
어머니와 훙얼은 모두 잠이 들었다.
나도 자리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배 밑바닥에 부딛히는 잔잔한 물소리를 들으며, 난 내가 나의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룬투와 나는 이미 딴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어린아이들의 마음은 아직 하나로 이어져 있다. 훙얼이 바로 쉐이성을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난 그 애들이 또다시 나와 같은 단절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 마음을 잇기 위해 모두 나처럼 괴롭게 이곳저곳 떠도는 생활을 하는 것도 결코 원하지 않는다.
또 그 아이들이 모두 룬투처럼 괴롭고 힘들어서 마비된 것 같은 생활을 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또한 다른 사람들처럼 괴로워하면서 생활을 포기하고 방탕하는 것도 역시 바라지 않는다. 그 아이들은 마땅히 새로운 생활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아직 경험해본 일이 없는 그런 생활 말이다!
나는 희망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갑자기 무서워졌다. 룬투가 향로와 촛대를 달라고 했을 때, 나는 그를 속으로 우습게 여겼다. 그가 아직도 우상을 숭배하고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금 말하는 희망 역시 내가 직접 만들어낸 또 하나의 우상이 아닌가?
단지 그의 희망이 보다 현실에 가깝고 절박한 것인 반면, 나의 희망은 더 막연하고 아득하게 멀다는 차이일 뿐이다.
나는 거의 무의식중에 나의 눈앞에 파란 바닷가 모래사장이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 짙은 쪽빛 하늘엔 동그란 황금빛 보름달이 걸려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것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위의 길이나 마찬가지다. 원래 땅 위에는 길이란 게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으으으아악, 모니터로 이 긴 글을 읽는 동안에 본인의 두 눈들이, 읽기를 중단하지 않으면 파업을 하겠다고 건방지게 윽박질러대더군요. 두 눈이 빠질 것 같았습니다. 왼쪽 눈이 그만 좀 읽으라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좋은 글에 답글이 없음을 애석하게 생각하여 답글에 도전했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루쉰에게는 전투적 지식인의 초상,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 사회주의 혁명가, 민족주의자, 비판적 지식인, 자유인 등등. 이런 거창한 타이틀이 늘 따라다니지요. 그런 대단한 명성 때문일까요. 아니면 이 작품이 서정적이고 너무 담백해서 그럴까요. '고향'을 읽으면서 소품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딸기님의 지적대로 '다시 읽어도 좋은 글'인 것만은 틀림없다는 생각입니다. 어린 날의 친구였던 '룬투'에 대한 따뜻한 기억이 루쉰으로 하여금 이 소설을 쓰게 하지는 않았을까요. '발그스름한 둥근 얼굴에 머리에는 조그마한 털모자를 쓰고 목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은목걸이를 걸고 있던' 나의 어린 시절의 영웅이었던 룬투. 그 아이가 나를 이토록 슬프게 할 줄이야. 나의 영웅이 이런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나다니. 추억에 대한 배신의 아픔으로 나는 가슴이 에일 듯 합니다. '발그스름하던 둥근 얼굴은 누렇게 없어지고, 얼굴에 검은 주름이 패여' 나타나 나에게 '나으리'라고 불렀을 때, 그 충격이 너무나 커 '나는 오싹 소름이 끼치는 것 같았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둘 사이에는 두꺼운 장벽이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라고 고백하겠지요. 그 장벽은 다름 아닌 계급의 차이가 아니었을까요? '나으리'란 호칭은 신분이 낮은 아랫것의 입에서나 나올 수 있는 말이지요. 우정이 평등을 전제로 한 관계라면 '나으리'란 수직적인 상하관계에서나 나오는 말이니까요. 생계에 위협을 받을 정도로 곤궁한 처지에 놓여있는 룬투로서는 신분이 달라진 나에게 어릴 때처럼 마냥 허물없이 굴 수만은 없었을 터. 나의 말대로 '룬투와 나는 이미 딴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니까요. 계급을 초월하여 천진스럽게 놀 수 있었던 유년기는 그래서 그들에겐 복된 시절일 것입니다. 추억은 빛이 바래지고 때가 끼어 얼룩덜룩해졌습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룬투와 헤어질 때 엉엉 울었었지요. 그러나 아이들은 역시 애들. '훙얼'과 '쉐이성'이 바로 어린 시절의 룬투와 나처럼 헤어질 때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난 그애들이 나와 같은 단절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합니다.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내려온 고향에서 나는 룬투와 아픈 이별을 경험하지만, 그러나 나는 얻은 것이 있습니다. 미처 보지 못한 너의 현실, 바로 룬투의 절박한 현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리하여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라고 소설의 끝을 맺는 것이겠지요. 그리하여 딸기님이 나의 고향은 희망입니다, 라는 제목을 달았던 것이겠지요. ---- 루쉰은 참 좋은 사람이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 사람에 대해서 잘은 모릅니다만, 저 글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지식인. 루쉰은 지식인이죠. 그렇죠? (음...혹시 아닌가...) 짧은 글이지만, 소설같은 면모를 고루 갖추고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초반부를 읽으면서, '나'라는 사람의 처지가 과히 좋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지요. 이사가는 것이 아주 잘 되어 영전해가는 꼴 같지는 않은데, 고향에 가보니까 다들 이러구러 근근히들 살고 있군요. 잘 살았으면--하고 바랬던 어린 시절의 친구는 엉망이 되어 있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더더군다나, 속 바른 지식인인 '나'는 그런 식의 계급대립적 해후보다는 더 진솔하고, '사람 냄새나는' 만남을 원했을텐데요. 루쉰이 사회주의자였는지 공산주의자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친구를 아랫것으로 만나야 하는 상황은 원치 않았겠죠. 계급갈등 사라지고 인간이 인간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원했었겠죠. 그런데 현실은, '아니올시다'였군요. 그래서 중반까지 읽으면서 서글펐는데 후반에 반전 아닌 반전이 있네요. 희망을 찾는다는 것. 어린 아이들에게서 자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희망을 찾으려 하고, 스스로 다짐하는 것. 루쉰은 참 괜찮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루쉰에게서 영향을 받은 중국 목판화가들 전시회를 한다더군요. 가서 보신 분 얘기가, 참 좋았대요. 가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습니다만--대학교 4학년 때 주제발표하면서 케테 콜비츠에 대해서 발표를 했었거든요. 콜비츠 하면 자동으로 루쉰이랑 연결되고, 우리나라의 민중미술 목판화들까지 자연스럽게 나올 수 밖에 없지요. 그 전시회 좀 오래 한다면 가서 보면 좋을텐데, 언제 끝나는지 모르겠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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